“Cabaret Performance(카바레 퍼포먼스) VIP시연회에 초청합니다.”
두 주 전 공연 초청 메일을 하나 받았다. 공연 관람 가기 딱 좋은 선선한 가을 날이었지만 두발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진득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곰팡이 냄새가 살짝 날 것만 같은 ‘카바레’와 행위 예술 중심인 ‘퍼포먼스’의 조화라니…. 공연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딩 입맛’ 초심자로서는 말 없는 예술을 감상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터다. 하지만 로맨틱한 결혼식을 짜릿한 파티로 바꿔준다는 포스터 카피에 이끌려 카바레 퍼포먼스 ‘뮤직쇼 웨딩’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에 앞서 극의 연출을 맡은 송승환 대표가 무대에 올라 공연 소개를 했다. 송 대표의 말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1,000만 외국인 관광객 중 110만이 국내 공연을 관람했다고 한다. 그 중 70만이 그가 처음으로 연출한 ‘난타’를 봤다고 하니 적잖은 숫자다. 이날의 공연은 그가 두 번째로 기획한 ‘넌버벌(대사가 없는) 뮤지컬’로, 카바레에서 하는 공연이 아닌 카바레처럼 자유롭게 공연장에서 ‘술과 음식을 먹으며 관람할 수 있는’ 퍼포먼스란다. 2013 에딘버러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외국인 관객들의 인기와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며 송 대표가 미소 지었다. 보통 공연장에서는 음식물 반입이 절대 불가하지만 내 손에 들려 입장한 커피잔을 보며 ‘마시고 먹을 수 있는’ 카바레 풍 공연에 대한 편견이 사그라들었다. 공연장 곳곳에 앉아 있는 많은 외국인 관객들을 발견하곤 ‘넌버벌’에 대한 의심이 수그러들었다.
공연이 시작됐다. 무대 위엔 단 한 명의 아이돌 스타도 없었다. 9명의 신인 배우들은 초연 때부터 지금까지 공연을 함께 꾸려왔다. 국내 대다수의 뮤지컬들은 아이돌이나 유명 뮤지컬 스타를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됐기 때문에 이날 공연은 더욱 신선했다. 작품성을 떠나 뮤지컬 스타와 아이돌의 캐스팅만 보고 공연을 관람하는 외국인 관람객이 많다. 얼마 전 일본에서 성공리에 막을 내린 뮤지컬 ‘삼총사’의 경우, 2PM 준케이 덕에 전석 매진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샤이니 키의 ‘보니앤클라이드’공연 표는 진작에 완판됐고, 공연 당일 해외 팬들도 다수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돌을 제외하거나 인지도가 비교적 낮은 아이돌을 캐스팅했을 경우엔 작품 흥행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뮤직쇼 웨딩’을 통해 아이돌 없어도 외국인 관객이 찾아와서 볼 수 있는 흥행 공연이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봤다.
공연이 진행됐다. 단 한마디의 말도 없었다. 간간이 들을 수 있는 ‘Oh!’, ‘Yeah!’ 혹은 의성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노래와 행동으로 극이 채워졌다. 언어는 없었지만 남녀노소, 외국인 모두 들어봤을 노래 23곡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존재했다. 함께 부를 수 있는 곡들로 구성함으로써 관객 호응을 유도했고, 애초에 언어가 없기에 해석 차이 등이 존재하지 않아 외국인들도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K-POP 강남스타일 등이 흘러나오며 배우들이 관객을 무대로 참여시키는 부분에서 극은 절정에 달한다. 무대 위에서 결혼식을 마친 배우들이 내려와 하객 역할이었던 관객들과 춤을 춘다. 무대 위로 올라간 관객과 무대 아래로 내려온 배우들이 한껏 춤추며 누가 배우인지 관객인지 누가 외국인이고 한국인인지 모를 만큼 어우러진다. 관객을 결혼식 하객으로 이용한 점, 관객들의 동적인 힘을 한 장면의 요소로 활용한 것이 새로웠다.
90분의 공연이 끝났다. 커튼콜 무대가 이어졌다.‘카바레라니? 대사가 없다니?’등의 생각이 가득했던 걱정쟁이 기자는 커튼콜 때 이미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흥겹게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1,000만 외국인 관광객 시대가 열리고 한류의 기운이 더욱 강해지면서 그 영향이 공연계에도 미치고 있다. 음원, 드라마에 이어 이제 공연이 새로운 한류로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때다. 아이돌로 관객을 모으는 것도, 해외로 공연가는 것도 좋은 전략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성과 외국인도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의 힘일 것이다. K뮤지컬의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공연을 말하라면 바로 이날의 공연을 말할 것이다. “뮤직쇼 웨딩!”이라고. (사진 =PMC 프러덕션)
/이지윤 기자zhiru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