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공기업 변하고있다] 대한송유관공사

『최근의 경영상태는 이른바 죽음의 악순환(DEATH SPIRAL) 상태입니다. 이 고리를 빨리 끊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지난 19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대한송유관공사(대송) 강당 안은 무거운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마치 전운이 감돌듯 강당 안은 숙연했으며, 자리를 메운 직원들의 표정은 출정을 앞둔 전사들과 같았다. 연단에 선 노영욱 사장은 경영상태의 절박함과 경영혁신의 필요성을 비장한 어조로 연신 강조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대송은 앞으로도 각고의 노력을 해야합니다』 盧사장은 직원들의 변함없는 동참을 호소했다. 이날은 9번째를 맞는 창립기념일. 盧사장과 직원들은 경영혁신의 성공적 마무리를 다짐하며 각자 맡은 업무로 돌아갔다. 이날의 분위기는 대송에게 경영혁신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죽음의 악순환」 경영현실= 대송의 경영혁신은 경영정상화 작업과 맞물려 있다. 대부분 다른 공기업들은 적어도 대규모 적자를 걱정해야 할 형편은 아니다. 그러나 대송은 형편이 남들 같지 못하다. 대송은 지난 90년 석유류를 지하송유관으로 수송하기 위해 설립된 공기업이다. 육지수송에 따른 물류비 부담을 줄이고 대기오염, 교통난도 해소시켜보자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전국을 잇는 석유송유관망은 회사 설립후 만 7년이 넘은 지난 97년 6월에야 끝났고 본격적인 상업운영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 송유관망이 확대되면서 대송의 매출은 해마다 급증했다. 지난 95년 94억원에 그쳤던 매출은 이듬해 190억원으로 2배이상 뛰었고 전국망이 갖춰진 97년에는 다시 2배가 뛰어 405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매출은 426억원. 그런데도 매출증가와 달리 적자는 거꾸로 늘기만 했다. 95년 162억원이던 적자폭은 지난해 770억원으로 급증했다. 누적 당기손실은 1,678억원에 이른다. 외형은 성장하는 데 적자의 골이 깊어만 가는 원인은 다름아닌 시설투자비 때문이다. 대송은 송유관망을 설치하는 데 무려 9,146억원의 돈을 쏟아부었다. 외부차입금만 6,741억원에 달한다. 지난해의 경우 매출액을 통털어도 이자비용(599억원)을 지급할 수 없었다. 누적적자에 따른 자본잠식으로 부채비율은 지난해말 현재 1,200%로 높아진 상태다. 경영상태가 죽음의 악순환에 빠졌다는 비명이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그런데도 대송의 주요 매출원인 정유회사들의 송유관 이용율은 고작 34%에 불과하다. 계열 선박회사들을 보유한 정유회사들이 해안에 가까운 지역은 지하 송유관대신 배로 석유를 실어 나르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없이는 이자가 매출보다 더 큰 악순환은 계속될 게 뻔하다. ◇개혁과 자구노력= 대송의 경영혁신은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전개됐다. 허리띠는 졸라맬 데까지 졸라매고 이제 뼈를 깎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기본 전제였다. 대송은 지난해 초부터 위기상황에 처한 경영여건을 타개하기 위해 자체 경영혁신 20개 과제를 선정하고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송은 정부의 전국송유관 일원화 방침에 따라 지난해 7월 한국석유공사(舊 유개공) 자회사인 한국송유관(한송)을 흡수통합했다. 외형상 나타난 중복 관리비 절감액만 연간 17억원에 이르렀다. 악조건속에서 조직 슬림화작업도 진행됐다. 사실 대송의 현실상 인원감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송과의 통합으로 복수노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경영진과 두 노조사이의 협상이 얽혀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매우 힘들었던 것은 물론이다. 이런 여건에서도 대송은 3본부 6처 3실 6지사 523명으로 짜여졌던 조직을 2본부 2실 4팀 6지사 426명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결과를 놓고 볼 때 정부 요구수준보다 1개기구 19명을 추가 감축한 것이다. 경영정상화에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 경비절감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경비 10%이상 절감운동을 통해 지난 98년 한해 동안 순수 비용예산 356억원의 15%인 54억원을 줄였다. 이와함께 급여 10% 자진반납운동이 펼쳐졌고 10%이상 추가 저축운동도 전개됐다. 과거의 경영방식은 과감히 고쳐지고 있다. 책임경영체제 구축을 목표로 내세운 신경영제도가 핵심이다. 본부장급 임원들은 1년 단위로 회사와 경영계약을 다시 맺어야 한다. 연공서열식의 월급체계도 일거에 무너졌다. 대송은 1급간부에 대해 연봉제를, 2급이하 직원에는 성과급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악순환 고리를 끊기위해= 개혁과 경영정상화를 위한 노력은 경영 전반에 걸쳐 전방위체제로 진행되고 있다. 대송은 지난해부터 북미 최대의 송유관운영 전문회사인 캐나다 엔브리지(ENBRIDGE)사와 외자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계약규모는 줄잡아 5,000만달러로 전해지고 있다. 대송은 또 통신설비 임대사업 자회사인 지앤지텔레콤을 연내 매각할 계획이다. 지앤지텔레콤과 사옥 처분으로 3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인원감축도 계속해 올해에만 39명의 인원을 축소할 예정이다. 이제 대송의 거듭나기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지 여부는 정부의 정책선택에 맡겨진 거나 다름없다. 대송의 경영정상화를 위해서는 부채탕감 조치가 불가피하다. 이와함께 선진국처럼 송유관사업에 장기수송계약(TAKE OR PAY)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장기수송계약은 송유관사업자와 정유사간에 석유수송계약을 체결하면 사용여부에 관계없이 수수료를 지불하는 제도다. 이 두가지 조치가 선행되지 않으면 대송의 경영정상화는 벽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미국의 컨설팅업체인 SRI(STANFORD RESEARCH INSSTITUTE)사도 대송의 경영정상화 전제조건으로 이 두가지 조치를 제시하고 있다. 관계부처의 결단이 없이는 외자유치에도 차질이 우려된다는 의미다. 【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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