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3·1정신의 재발견

박유철 광복회장


세상에는 이기고도 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지고도 이기는 것이 있다. 최근 폐막된 러시아 소치올림픽에서 활약한 김연아 선수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95년 전 이 땅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일어났던 3·1독립운동이 그랬다. 표면적으로는 독립에 실패했지만 각계각층이 참여해 민족의 독립의지를 보여주며 이후 국내외로 독립운동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는 계기가 됐다. 특히 3·1독립운동의 성과로 태어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당시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됐고 오늘날 헌법에도 대한민국의 법통과 정통성으로 인정받고 있다.

임정 수립·아시아 민족운동 촉발시켜

당시 해외에도 3·1독립운동의 실상이 알려지며 중국의 5·4 운동과 인도의 무저항 배영(排英)운동, 베트남과 필리핀의 독립운동, 이집트의 반영 자주운동, 터키의 민족운동 등 아시아·중동 지역의 민족운동을 촉진한 계기가 됐다.


특히 일제의 폭정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의와 인도, 세계평화 구현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문화민족의 자질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줬다. 1943년 11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 미국과 중국·영국의 거두들이 이집트 카이로에 모여 국제회의 최초로 한국 독립을 거론한 것도 3·1독립운동의 세계사적 가치와 자주독립을 지상명제로 삼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인정한 것과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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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운동은 수개월동안 국내외 211곳에서 1,542회가 넘는 집회가 열렸는데 목숨을 걸고 참가한 인원이 200만명이 넘었다. 무려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만5,961명, 체포당한 인원 4만6,948여명의 숭고한 희생이 따랐다. 그것도 남녀노소·빈부귀천·도시농촌 할 것 없이 종교와 이념을 뛰어넘어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로 뭉친 위대한 투쟁이었다.

3·1독립운동은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일본이 극우 군국주의로 치달으며 역사왜곡을 일삼는 것에 대응할 수 있는 정신적 토대가 될 수 있다. 각계각층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참여해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며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선조들의 애국정신을 함께 되살린다면 일본과의 역사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로 우기고 동해와 일본해 병기를 극력 반대하고 강제종군위안부를 부인하는 등 끊임없이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 아베 자민당 정권은 일본의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대놓고 참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예 개헌을 통해 자위대가 전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동북아 평화를 깨뜨리는 아주 위험한 시도다. 이런 때에 정부는 물론 민간에서도 3·1독립정신을 되새기며 다 같이 적극 나서 일본의 역사왜곡 침탈에 대해 적극 맞서야 한다.

일 극우화 맞서 민족정신 되살려야

3·1독립운동은 남북관계의 방향에도 시사점이 크다. 3·1 독립정신의 저력을 되새기면 남북한이 서로 다른 사상과 이념이 빚어낸 대립과 앙금을 뛰어넘어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20~25일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이산가족 상봉에서 보여준 '한편의 드라마'는 60년 이상 떨어져 살았던 세월이 무색하리만치 남북이 하나임을 보여줬다. 물론 남북 간 대치상태가 여전하긴 하지만 3·1독립정신을 통해 한민족이 서로 협력해 통일을 성취하고 세계 속에 웅비하는 시대적 과제를 되새겨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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