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로펌 대표와의 '솔직토크'] "한국적 로펌 모델 새 지평 열겠다"

⑫조용환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br>실력으로 승부… 고문직 안둬<br>중국·러시아·베트남팀 이미 구성<br>아시아 네트워크 구축도 추진<br>'임수경 방북'등 인권변론 앞장<br>"기업 국민신뢰 받도록 자문 최선"


조용환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는 88년 첫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강구진 서울대 법대 교수소개로 당시 법무법인 세종의 신영무 대표와 인연이 닿아 군 법무관 제대 후 곧바로 세종에 들어갔다. 신 대표는 조 대표를 일찌감치 점 찍어 두고 영입에 애착을 보였다. 조 대표는 그러나 세종에서 1년을 채 머물지 못했다. 89년부터 터진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 리영희 교수 사건, 임수경씨 방북사건, 전교조 결성 등 대형 공안 사건들 때문이다. 세종에 눌러 앉아 평생 편한 삶을 보장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세종을 나온 후 덕수 법률사무소로 들어가 공안이나 인권사건 변론에 나서며 ‘시대와의 불화’를 택했다. ◇의협심 강한 인권변호사=조 대표는 대구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누구나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한번쯤은 갖게 마련이지만, 조 대표는 그런 ‘큰 꿈’과는 거리가 먼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것도 어떤 인생의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것도 공부를 잘하는 형과 누나들 틈에서 공부에 맛을 들여 시작한 때문이다. 그는 “어려서 수재소리는 못들었는데, 형과 누나들 어깨너머로 배운 게 도움이 많이 됐다”며 “정말 별 생각없이 (서울대) 법학과를 결정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제 적성에 맞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첫 직장인 세종에서 근무하던 당시, 뜨겁게 달아오르던 민주화 열기를 조 대표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의협심이 강하기로 소문난 조 대표는 “변호사도 사회에 일정한 역할을 해야 된다”며 스스로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섰다. 이때 만나 인연을 맺고 있는 변호사들이 한승헌, 박원순 변호사,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 등이다. 당시 조 대표는 한ㆍ박 변호사와 함께 문 목사 변론에 참여했다. 나중에는 천 전 장관과 함께 임수경씨와 문규현 신부의 방북 사건의 변론을 맡기도 했다. 특히 간첩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함주명씨에 대해 2005년 7월 무죄판결을 받아내 주목을 끌기도 했다. 조 대표는 “내가 천당을 가게 되면 이(함씨 무죄판결) 때문일 것”이라며 내심 뿌듯해 했다. 그가 ‘인권변호사’로 확실히 굳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지평이 가진 건 오로지 실력뿐= 조 대표는 인권변호사라는 딱지가 즐겁지만은 않다. 시대상이 많이 변했는데도, 아직 자신을 인권변호사로만 알려진 게 핸디캡이다. 그는 “로펌이 기업고객을 많이 상대해야 되는데 여전히 인권변호사 이미지가 강해 영업에 지장이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실제 지난 해 사법연수원에서 연수원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했던 때 그는 연수원생중 한명으로부터 황당한 질문을 받았다. “왜 갑자기 인권변호사를 그만두고, 변절했느냐”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충격을 받았지만, “시대가 바뀌었는데, 과거를 고집하라는 것은 오히려 미래를 열지 못하는 것”이라며 지금 처한 현실에서 새로운 변호사 상을 찾도록 하는 게 후배들의 임무가 아니겠냐”고 자신의 생각을 설명해 준 적도 있다. 지평이 2000년 4월 첫 문을 열 때, 다른 로펌에서는 “2~3년 가겠냐”는 비아냥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로펌들이 지평의 성장에 촉각을 곤두세울 정도로 위상이 크게 올랐다. 심지어 한 대형 로펌은 지평과의 수임경쟁에서 고전하자, “운동권이 만든 로펌이어서 실력이 형편없다”며 악성 루머를 퍼뜨리고 다니는 상식이하의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조 대표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래도 창립 최기에 우려됐던 2~3년만 간다는 얘기는 쏙 들어갔다”며 “지평은 실력으로만 승부하려고 한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국적 로펌 모델 만드는 게 꿈”= 조 대표는 국내 로펌들의 현실에 실망을 많이 한다고 한다. 조 대표는 “일부 로펌들이 전직 고위 판ㆍ검사나 공무원들을 영입해 수임경쟁을 벌이는 것이 당연시 되는 법조계 분위기가 아쉽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기업들의 이익대변을 위한 법률자문이라는 로펌의 임무를 망각하고 있진 않다. 다만 수익에만 매달려 물불 안가리는 일부 로펌들의 행태를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의 문제의식은 ‘야성(野性)’때문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잘 나가는 로펌의 뒷자리를 잡기 위한 것은 더욱 아니다. 로펌이 당장의 이익을 위해 공익과 배치되는 편법 자문을 문제의식 없이 해 나가면 결국 로펌의 설자리를 잃게 된다고 조 대표는 믿고 있다. 그래서 그는 지평 만큼은 당장의 금전적 손해를 입더라도 기업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법률조언에 나서도록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조 대표는 “로펌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자문하는 것은 당연한 임무지만, 만약 공익과 충돌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공익을 먼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의식을 현실에서 실천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조 대표는 지평 운영도 좀더 민주적으로 하고, 실력도 더 키우려고 노력중이다. 지평에는 흔한 고문변호사도 한명 없다. 의사구조도 민주적이다. 창립 초기부터 젊은 변호사들이 주축이 돼 만들었기 때문에 의사구조가 매우 유연하다는 평가다. 기존 로펌이 파트너 중심으로 의사가 결정된다면, 지평은 후배들에게도 전면 개방돼 있다. 조 대표는 “한국적 로펌의 모델을 지평이 열어갈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실력으로 인정받아, 더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며 손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되, 기존에 내려오는 관습이나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창의적인 분이라면 지평으로 오라”며 “소속 변호사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돕고, 이를 통해 고객(기업)들이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최대한 힘을 쏟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아시아 네트워크 구축도 추진= 지평은 다른 중소형 로펌과 같이 해외진출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설립 초기부터 최정식 변호사를 위신한 중국팀을 만들어 철저히 준비했다. 베트남팀과 러시아팀도 활약하고 있다. 조 대표는 “사무실을 내거나 법인을 설립하는 등 외형적인 면보다는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실익없이 해외에 진출하는 것은 반대다. 조 대표는 외국 로펌과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아시아 지역 변호사들과 손을 잡는 등 아시아 네트워크 구축을 강화하고 있다. 수익모델 개발을 위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 보겠다는 복안이다. ◇야생화에 빠지다= 조 대표의 취미는 사진찍기다. 경력도 무려 8년 가까워 전문가 뺨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주제는 야생화다. 주로 산속 오지를 다니며 야생화를 즐겨 찍는다. “돈이 적게 들고 운동도 할 수 있는 데다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일석삼조”라며 그는 사진에 대해 강한 애착을 보였다. 아직은 여건이 안되지만 언젠가 자신의 이름을 단 사진 전시회를 여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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