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정적자에 대한 도그마를 깨고 적자예산을 편성한 것은 2년 만의 일로 경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했음을 의미한다. 아울러 재정이란 풀(pool)의 경기조절 역할을 인식한 것이기도 하다.
내년 적자국채 발행규모가 지난 99년 10조4,000억원 이후 최대 규모인 6조~7조원대로 정해졌다. 정부와 여당이 재정지출 확대와 감세정책을 내놓으면서 돈 쓸 곳이 더 많아진 만큼 ‘빚’을 더 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당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적자국채 발행규모가 8조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당초 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편성하며 ‘일반회계 130조원, 적자국채 3조원’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등이 당정협의를 통해 ‘일반회계 134조, 적자국채 7조원’을 요구해오자 관계부처는 세수부족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해왔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당정은 ‘일반회계 132조5,000억원대, 적자국채 5조원’으로 내년 예산안을 잠정 합의했다.
하지만 김병일 기획예산처 장관은 2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적자국채 규모가 6조~7조원으로 확대될 것임을 시사했다. 돈 쓸 곳이 변함없이 132조원대임을 감안한다면 결국 예상보다 세수가 더 부족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소득세율 인하, 특소세 폐지 등 연이어 발표된 감세안으로 인한 세수부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당정은 침체된 경기를 진작하기 위해 ‘균형재정’이란 틀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행정수도 이전, 주한미군 철수에 따른 국방예산 증가 등 앞으로 돈 쓸 곳이 더 늘어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전망이다.
내년 세수추계가 7%대 경제성장률을 가정했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성장률이 예상보다 밑돌 경우 세수부족 현상이 더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일부에서는 내년 GDP 성장률이 3%대에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제기됐다.
내년 예산 증가율도 12%(일반회계 기준)를 기록한 지난 2002년 이후 처음으로 10%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여기에 내년에도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된다면 증가율은 12%를 훌쩍 넘어선다. 90년대 후반 들어 예산 증가율이 10%를 넘긴 경우는 외환위기 직후와 2002년 두번밖에 없다. ‘빚(부채)도 자산’이라는 논리가 나라살림에도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