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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부총장)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목표와 내용’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목표는 남북 사이에 신뢰를 쌓아 남북 사이의 비정상적 관계를 정상적으로 만드는 데 있다. 그동안 남북관계는 상호협력하면서 상생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제로섬 게임 양상을 극복하지 못한 채 다음을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을 만들어내 왔다. 그래서 남북 사이의 행사도 지속성과 일관성을 지니지 못한 채,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예가 많았으며, 다음을 기약하고도 그 약속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남북교류협력은 남북관계의 구조적 특성에 종속되는 양상을 빚어왔다.
히 북한은 도발로 위기 상황을 조성한 후 타협과 보상을 끌어내는 패턴을 보이면서, 남북관계는 도발→위기→타협/제재→보상→도발로 이어지는 악순환 양상을 거듭하곤 했다. 그로 인해 남북관계는 정상적 행보를 이어가지 못하고 선순환이 아닌 악순환을 반복하는 양상을 보여 왔다. 요컨대, ‘적대적 공존’이 초래할 수 있는 다양한 양상의 연속이 바로 남북관계의 역사였다. 그래서 남북관계는 연속극이 아닌 단막극의 연속이며, ‘미리보기’가 어려운 특성을 지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바로 이 악순환과 비정상을 바로 잡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 구상의 핵심 개념이다. 남북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도발에는 강한 대응과 압박으로 맞서는 대신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바른 선택에는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구상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정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를 비정상이 아닌 정상적으로 이어가야 남북 사이에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나가면서 통일로 가는 길을 모색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 이제부터라도 통일로 가는 상생이 길을 찾기 위해서라도 남북의 관계만은 정상적으로 만들어가자는 북한에 보내는 ‘단순한 메시지’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만이라도 원칙과 약속을 지키면서 신뢰를 지킬 터이니 북한도 같이 동참해 달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는 중이다. 북한이 호응을 하지 않는 한 의미 있는 진전을 기대할 수 없지만, 일관성을 가지고 기다릴 터이니 호응해 달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보내는 중이다. 아직은 북한이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의미 있는 진전 없이 예전 행태를 반복, 답습하고 있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지만, 북한이 호응만 하면 남북관계는 정상적 관계로 접어들게 되며, 그렇게 되면 평화통일로의 길을 서로 모색해 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바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담긴 구상이다. 요컨대, 평화통일로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프로세스’라고 한 것이다.
북한의 호응을 기다리면서도 할 건 하자는 것이 2014년 3월, 독일에서 발표한 ‘드레스덴 선언’이다.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남북 사이가 비정상적일지라도 할 수 있는 것은 해 나가자는 내용을 담은 선언이다. 인도적 지원, 민생 인프라 구축, 민족동질성을 찾아가는 노력을 강조한 선언으로서 통일이 되면 어떤 좋은 점이 있으며, 통일로 가는 방안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통일은 반드시 ‘Korean People’이 해 나간다는 것을 국내외 천명한 선언이다.
특히 돕되 제대로 돕자는 취지를 이때부터 강조하고 있다. 통일준비를 하면서 전략적으로 돕는 준비를 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아울러 통일시대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쉬운 것부터 시작하면서 신뢰를 쌓고 보다 큰 통일을 이뤄가자는 통일로 가는 접근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이외에 통일 친화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하며, 통일 공감대 형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통일을 위한 국제협력에도 주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의미를 가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개념은 현재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3대 전략’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튼튼한 안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신뢰외교를 통해 국민이 함께 하는 통일, 남북한 주민이 모두 행복한 통일, 아시아,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통일을 만들어가는 것이 지금 정부의 생각이며,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기본 구상이다.
‘북한의 반응’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북한 당국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흡수통일의 생각이며, 무슨 일을 꾸미는지 정체가 모호하다는 반응이다.
그런데 예전과 같이 구체적인 정책을 들고 나오면 이에 대한 문제점과 약한 고리를 집중 공격하면서, 북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전략과 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대북정책이 아니라 남북이 이렇게 나아가자는 제안이기 때문에 북한도 더 이상 구체적인 대응을 하기보다는 남한 정부와 지도자를 싸잡아 비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다리면 북한이 호응을 해 올 것이라고 보는 남한 정부에 대해 절대로 호응하지 않겠다는 단순한 반응만 보이고 있다. 이것이 현재 남북관계의 현주소이다. 남한 정부가 깔아놓은 길에 발을 들이기만 하면 그때부터 남한 정부의 페이스에 말려든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우리 정부는 호응을 해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번만 프로세스에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정상적인 남북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을 하고 있다.
‘남북 사이의 관계에 담긴 숫자’
통일부에 따르면 남과 북은 1972년 7.4공동성명 이후 지금까지 회담만 640여 회 진행해 왔다. 1970년대 초반부터 진행한 640여 차례의 정치, 군사, 경제, 인도, 사회문화 분야의 남북회담을 통해 합의한 합의서만 250여개 이상 된다. ‘자유왕래’까지 합의서에 명시한 적도 있지만, 현재 남북관계는 이산가족 상봉마저 힘들게 이어가는 형국이다.
남북교역이 가능했던 1989년부터 지금까지 북→남 반입 건수 총 823건, 남→북 반출 건수 총 1,101건으로 도합 1,924건이며, 남북협력사업 승인은 1991년부터 지금까지 623건으로 나타나 있다. 교역 건수는 반입·반출을 합해 총 61만 건을 상회하고 있다. 교역 액수는 반입·반출 합해 총 195억 달러에 이른다.
남북 관광협력사업 현황을 보면, 금강산 관광객 약 193만 명, 개성관광객 11만2,000 명, 평양 관광객 2,300명으로 총 205만 명 정도로 나타나 있다.
대북지원 현황은 정부와 민간 영역의 유·무상 지원을 합해 총 3조 2,485억 원으로 나타나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정부차원의 무상지원(당국 차원+민간단체 지원+국제기구 지원) 1조4,954억 원, 식량차관 8,728억 원, 민간차원 무상지원 8,803억 원이다.
이산가족 교류 현황은 민간차원과 당국차원으로 구분해서 보면, 민간차원의 생사확인 3,860건, 서신교환 11,458건, 상봉 1,745건(3,392명)이며, 당국차원의 생사확인 7,653건(55,412명), 서신교환 679건, 방남 상봉 331건(2,700명), 방북 상봉 3,368건(16,256명), 화상 상봉 557건(3,748명) 등으로 나타난다.
‘남북교류협력의 평가 : 교류협력의 비대칭성’
분단 이후 우리 모두는 다시 하나가 되기를 매일 기다려왔다. 그리고 그 날은 머지않아 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지내다보니 벌써 70년 이상이 훌쩍 지나고 있다. 철저한 단절 속에 가족조차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이산가족도 셀 수 없이 많다. 무엇이 가족조차 만나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으면, 더 악착같이 만나려고 애쓰지 않았을까? 조만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에, 기다리다 그만 한 생을 다 보내고 말았다.
한민족, 한핏줄이었던 우리가 이제 다시 만나면 옛날 같이 합쳐질 수 있을까? 말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살아가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져 버렸다. 다시 만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생각하는 방식도 많이 다르고, 자주 쓰는 말투도 생소하고, 살아가는 품새도 딴판인 경우가 많아 아무래도 옛날 같이 살기는 힘들 것 같다. 북에서 내려 온 ‘탈북민’이 정착하는 과정을 봐도 그렇다.
동서독도 통합 이후 서로 교차 결혼한 쌍이 전체 결혼 숫자의 4%밖에 안 된다는 통계를 보면, 우리도 ‘남남북녀’의 만남이 생각보단 어려울 듯싶다.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하나로 동화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떨어져 살아온 후유증은 생각보다 위력적이다. ‘동질성 회복’을 위해 노력하면서도 ‘이질성의 공존’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면 만나서도 진정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는 양상을 초래할 가능성 또한 높다. 서로 모르면서 살아오면서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적대적 공존’ 이것이 바로 현재 남북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해주는 단어다. 서로 미워하며 지내다 서로 욕하다 지내다 지금은 한반도에 두 개의 정치공동체를 수립해 놓고, 주도권을 쥐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분단의 벽을 뚫는 행사도 몇 차례 치렀다. 이산가족 상봉행사, 각종 회담, 문화교류 행사 등을 통해 ‘통일’의 희망을 겉으로는 표방하면서 내심 자신의 강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정치’가 다른 모든 것을 구속하는 남북관계 구조의 특성으로 인해 행사는 일회성, 이벤트성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회로 끝나는 행사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때, 남북 사이의 화합과 협력이 얼마나 어려운 가를 잘 알 수 있다.
분단 이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상호 교류와 협력의 끈은 이어져 오기도 했다. 특히 198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는 다양한 회담이 개최되기도 하고, 인적 교류도 간간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남북교류 및 협력의 양상은 늘 ‘비대칭’의 모양새를 그려왔다. 남북한 인적 교류 현황을 보면 비대칭의 양상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1989년부터 2013년까지의 남북 인원 왕래 현황을 보면, 남→북 인원은 약 118만 명에 달하는 데 반해, 북→남 인원은 8,000명이 안된다. 무려 약 150배의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여기에서 북한 인력을 남한으로 보내지 않으려는 북한 당국의 의도를 잘 읽을 수 있다. 여기에 금강산 관광객과 개성공단 방문 인원까지 포함하면 비대칭의 양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북한체제 유지를 위해 북한 인력이 남한으로 방문하는 기회와 규모를 철저하게 통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대신 정해진 장소와 경로에 한 해 남한 인력의 방북을 허용한 결과 인적 교류 현황은 교류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비대칭 양상을 빚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도 처음에는 서로 교차 방문하는 형식을 취해 오다가, 북한의 강력한 요구로 인해 북한 지역인 금강산에서만 상봉 행사를 이어올 수밖에 없었다. 폐쇄성을 체제의 주요 특성으로 하는 북한체제 작동원리로 인해 남북교류의 불균형 양상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 외에도 종교 교류, 문화유산 및 예술 교류, 체육 교류도 간간이 이어지고 있고, 2014년 가을에는 제17회 하계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들이 참가하고, 폐막식에 북한 당국이 보낸 고위층이 전격 방문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는가라는 기대도 가졌으나 남북관계의 구조적 특성을 이완시키는 결과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2014년 10월 4일, 오전 10시 북한의 황병서(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총정치국장), 최룡해(국가체육지도위원장, 전 총정치국장), 김양건(대남 담당비서)이 인천아시안게임폐막식 참가 명목으로 인천공항을 전격 방문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자아냈으나, 이후 남북관계는 여전히 ‘적대적 공존관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분단의 길을 걷고 있다.
한 번의 이벤트로 의미 있는 변화가 초래될 남북관계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인지하는 시금석이 되었다.
남북관계가 ‘적대적 공존’이라는 구조적 특성이 있음에도 ‘할 것은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인도적 지원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으며, 국제기구를 통한 우회적 지원의 통로를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이것이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결정적 지렛대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
‘통일시대 준비를 위한 남북교류협력 준비과제’
<너무 서로 모르고 있다>
그동안 북한을 방문한 사람이 관광객 제외하고도 약 120만 명에 가깝다면, 우리는 북한을 그만큼 잘 알게 되었는가? 최근 평양을 방문하고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북한은 몰라보게 변하고 있다. 살기가 훨씬 좋아졌다. 교통체증이 일어날 정도로 차가 많아졌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럴까? 북한말로 ‘손전화’라고 하는 휴대폰이 300만 대가 넘게 통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북한사회 변화의 척도로 볼 수 있는가? 북한에도 초고층 아파트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는데 그들의 살림살이는 어느 정도일까? 한 달 공식 급여가 북한돈으로 3∽4천 원이라면서 평양에 새로 문을 연 문수물놀이장 입장료가 북한돈 2만원인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달걀 한 개 값이 1,100원 이상 하는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건가?
우리가 오징어라고 부르는 것을 북한사람들은 낙지라고 부르고 우리가 낙지라고 하는 걸 북한에선 오징어라고 부르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담배 1보루라고 할 때 북한에서도 똑같이 10갑으로 통용될까? 땅 한 평이라고 할 때 재는 척도는 우리와 같을까?
‘이신작칙’, ‘아글타글’은 무슨 뜻일까? ‘인차’라는 부사는 어떨 때 쓰는 걸까? “일 없어요.”라는 표현이 “괜찮아요.”라는 의미인줄은 알겠는데, 직접 현장에서 들을 땐 왜 그렇게도 낯설고 못내 섭섭할까?
삭주군에서 왔다고 소개하는 탈북민을 보고서도 어디라고 되묻지도 못하는 북한 자연지리 감각은 왜 늘 이 모양일까? 통일하자고 하면서도 북한 땅에 대한 친숙도조차 갖추지 못한 배경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칠보산 송이버섯이라고 할 때 왜 지리적 상상력이 떠오르지 않을까?
최근 들어 ‘통일대박’의 기치 아래 통일에 대한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우리만 통일 통일한다고 해서 통일이 이루어질까? 북한사람들은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통일 구상에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따라와 줄까? 지금부터 통일이 잘 되어간다면 2050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8만 달러 상회한다는데 정말 그럴까? 2014년 10월 20일,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통일대박 가능하다’를 주제로 첫 공개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통준위 김병연 경제분과 전문위원(서울대 교수)은 2050년 통일한국의 1인당 GDP 추정치로 7만3,747달러(남한 8만2421달러, 북한 5만7,396달러)를, 연간 성장률로 4.51%(남한 2.63%, 북한 9.55%)를 제시했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국민 소득도 상상외로 크게 향상되는 등 ‘통일 대박론’이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인데, 2050년 통일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만 달러에 달하고,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2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다.
8만 달러 되면 뭐가 그리 달라지고 삶의 만족도가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가? 국민소득이 높아지는 것만 내세우지 말고 그 속에서 해결해야 할 소득 불평등 문제는 어떻게 해소해 나갈지에 대한 고민은 왜 같이 하지 않는가? 그리고 모든 것이 ‘잘 되어간다면’이란 전제가 너무 비현실적인 구호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는 있는데, 왜 통일 이후 소원을 그리는 노래와 영화, 드라마는 눈에 잘 안 보이는 걸까? 통일이 되면 군 복무는 안 하는 걸까? 하게 된다면 복무연한은 어떻게 될까? 확 줄어들까 아니면 통일된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고 더 늘어날 건가? 통일 되면 어떤 전공이 인기 전공으로 부상할까? 어떤 새로운 비즈니스가 블루오션으로 등장하게 될까?
북한 땅에 있는 수 만개의 김일성 동상은 어떤 운명을 걷게 될까? 온전하게 모아서 황해도 연백평야에 동상공원을 만들면 어떨까? 명산 바위마다 새겨져 있는 수많은 바위글씨를 지워야 할까 아니면 그대로 두고 봐야 하는가. ‘김일성 종합대학’. ‘김책공대’ 등의 학교명을 통일 이후에 온전하게 쓰지 못할 터인데, 어떤 이름으로 바꿔야 하나. 이름 바꾼다고 할 때 그 대학 나온 북한졸업생들이 가만히 있을까? 통일 이후 우리의 국립현충원과 같은 ‘애국열사릉’, ‘혁명열사릉’은 어떻게 관리하고 유지할 것인가?
북한만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찬찬히 짚어보면 우리는 통일의 미래에 대해서 높아질 국민소득 숫자만 외칠 뿐이지 그 모든 것을 무로 돌리 정도로 강력한 파급효과를 가진 ‘사람의 통일’, ‘마음의 통일’ 문제는 거의 무시하고 있다. 분단을 극복하고 새로 만들 ‘사회문화공동체’ 형성이 얼마나 어려운 과업인가를 깨닫지 못한 채, 지도층이나 전문가들 모두 통일성취 분위기에 ‘붕붕’ 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사람들도 ‘대한민국’을 모르고 있다. 북한 내부에 이른바 ‘한류’가 분다고 할 정도로 남한 물건에 대한 인기가 높고 영상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고 하지만, 막상 북한사람들이 ‘남한’을 얼마나 잘 아는지에 대한 분석 결과는 우리가 ‘북한’을 아는 것보다 더 모른다는 것으로 귀결될 것 같다.
‘이남’, ‘남조선’은 알아도 북한주민 대부분이 ‘대한민국’, ‘한국’이란 용어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아랫동네’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을 뿐, 대한민국의 특성과 실상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다. 북한 당국이 철저하게 교양시켜온 결과이다. 그만큼 북한사회는 외부 정보를 입수하기도 어렵고, 이를 통용시키기도 어려운 사회이며 체제이다. 대한민국 소식을 퍼뜨리거나 선전했다가는 자신뿐 아니라 가족, 친지까지도 연대 책임을 지는 ‘연좌제’가 ‘남한’을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걸림돌로 작동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사회 구성원 대부분은 ‘남한’에 대한 이중성을 갖고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일제 물건을 선호하면서도, 때마다 반일 감정을 표출시켰던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즉, 양가감정을 가지고 ‘아랫동네’를 선호하다가도 ‘남조선’을 때려 부수는 궐기대회에 앞장서기도 하는 것이다.
북한주민의 생각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은 참 어렵다. 설문조사도 할 수 없고, 인터뷰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이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물어도 책임질 대답을 소신껏 하지 않는 북한 특유의 정치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북한사람들의 생각을 끌어내는 작업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대신 추론이 가능한데, 이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바가 반영된 ‘희망적 추론’(wishful thinking)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북한엔 민심이 있어도 그 실체를 잡아낼 수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는 ‘민심’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위로부터 만들어지고 강요된 ‘획일화된 민심’이 북한전체를 채우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의 과제와 역할이 시작된다. 우리가 노력해서 북한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을 만들어내고 그 ‘민심’을 우리 쪽으로 돌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통일 및 통합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북한주민들의 ‘민족자결권’(right of self-determination)을 중시하면서, 그들이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게끔 미리미리 준비하고 통일 및 통합과정에서 우리를 거부하고 중국을 택하는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제부터라도 북한 사회구성원의 마음을 우리 쪽으로 오게 하는 의미 있는 준비와 실천을 해 나가야 한다.
<통일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과제>
‘통일’(unification)은 발생하는 시점(예: 역사적 사건)을 중시하는 개념인 반면, ‘통합’(integration)은 발생 이후 진행되는 상황에 비중을 둔 개념이다. 요컨대, 통합은 제도, 땅의 통일과 함께 ‘사람의 통일’, ‘마음의 통일’에 비중 둔 개념이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및 ‘사회구성원’에 초점을 둔 개념이다. 누가 먹고 먹히는 상황, 즉 ‘이기고 지는 통일’이 아닌 ‘함께 사는 통일’이 통합의 궁극적 목표이다.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지 않은 동서독과는 달리 남북한은 6.25의 유산을 가진 채, 70년 가까운 분단 상태로 ‘적대적 공존관계’를 유지해 왔을 뿐 아니라 철저한 단절 속에서 서로를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는 구조를 지녀 왔기 때문에, 동서독 양상과 비교할 수 없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각자의 정통성 창출에 상대방을 향한 적대적 감정(적개심)을 활용해 왔기 때문에, 체제와 사회 구석구석에 미움과 원한이 내재화되어 있어 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한다. 분단 이후 상호 교류와 접촉이 거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체제 간 이질성이 동질성보다 압도적으로 커진 상황에서의 ‘통합’이 상당기간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 요컨대, 동서독 통합이 [바닷물+민물]의 합침이라고 가정한다면, 남북한 통합은 [물+기름]의 합침일 정도로 ‘합침’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형국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남북한 통합의 과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남북교류협력은 어디에 비중을 두고 새롭게 추진해야 하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특히 통일준비를 염두에 두고 어떤 준비를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가. “북한을 알아야 통일이 보인다.”
현재 상태의 북한 이해력 갖고는 통일의 길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통일을 하려는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통일을 추진해 보았자, 통일의 목표는 성취하지 못한 채 다시 분열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통일을 하고자 하는 우리의 반쪽인 ‘북한’이 어떤 상태로 작동하고 있는 체제인지, 또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2,500만명에 가까운 ‘북한주민’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통일을 희구하고 미래를 생각하는지를 모른다면, 통일의 길은 매우 어려운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제부터라도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고 북한 상황을 정확히 읽을 줄 아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보지 않고 살아보지 않고서도 북한 상황을 제대로 느끼고 읽을 줄 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토록 원하던 통일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우리 중심적으로 북한을 재단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결론을 내리고 일방적으로 끌고 가려는 경직된 통합 방식을 버리지 않으면, 통합이 안고 있는 난제를 풀어가기 어렵다. 이제부터라도 통일을 하려는 상대방인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고 통합의 미래를 고민하는 보다 넓은 시각과 포용력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 “북한 주민이 (우리가 바라는 통일을) 원해야 통일이 이뤄진다.”
통일을 얘기할 때 북한에 사는 우리의 반쪽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고려한 적이 별로 없다. 우리 생각이 통일 생각이고, 북한 주민들 생각은 우리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간주하는 습관과 안이함이 우리 사회엔 익숙하게 확산돼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이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통일 구상과 미래상에 공감하고 지지해 주지 않으면 통일은 한 마디로 불가능하다. 통일하려는 다른 한 쪽의 생각이 우리와 다르면 통일이 제대로 될 리 없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북한 주민의 통일 생각은 무엇인지, 우리의 통일 생각을 북한주민들에게 전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여기에 통일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다. “통일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지금 상태의 통일 상상력으로는 통일 이루기 어렵다. 통일에 대한 동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통일의 미래상을 상상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통일 효과의 경제적 측면만 강조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국민 소득이 놀랄 정도로 증가할 것이며,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갖춰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모든 것이 최상의 상태에서 정상적으로 진행될 때 나타날 수 있는 쉽지 않은 전망이다.
통일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북한주민과 상생 노력을 어떻게 하느냐에 통일 성취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통일을 이루자마자 통합에 실패하면서 다시 분열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상정할 수 있다. 겉으로는 통일이 되었지만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내적 분열의 심화가 진행되는 상상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사회문화적 통합을 이루지 못하면 정치적 통일, 경제적 통일의 꼴을 갖추었다 해도 그건 땅의 통일, 제도의 통일만 이룬 것이지, 마음의 통일, 사람의 통일을 이룬 것은 아니다. 그만큼 사회문화적인 통합은 어려운 과제이다. 서로 다른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가진 채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온 사람들이 금방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이질성을 가진 채 살아간다는 것은 불편하고 갈등이 표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불편함을 참아내면서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통합의 참모습이다. ‘동질성 회복’만 강조하지 말고 ‘이질성의 공존’도 함께 고려하면서 통일의 미래상을 그려나가는 통일 친화적인 사고와 사회 수용력을 길러야 한다.
이와 함께 통일이 되면 일어날 수 있는 상상을 충분히 해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맞는 매뉴얼과 예비훈련을 해두어야 한다. 통일되면 군복무 연한은 어느 정도로 해야 ‘통일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는지, 통일되면 어떤 비즈니스가 떠오를 것인지, 북한체제의 흔적을 어떤 방식으로 지워내면서 또 유지해 나갈지를 동서독, 베트남, 예멘 사례 등을 참고하면서 우리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통일의 경제적 효과만 붕붕 떠다니지 사회문화적 과제와 관련된 상상은 매우 부족한 편이다. 이제부터 이 점을 보완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대북 인도적 지원도 필요하다’
종종 대북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대답은 간단하다. “그렇다.”이다. 지원하면 군부 식량으로 전환되고, 간부들만 배부르게 된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사실 그런 현상도 북한 내부에서는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애써 모아 보낸 밀가루와 쌀이 북한 군대의 식량으로 전용되는 일도 일어나고 있고, 분배의 투명성을 그렇게 강조하고 모니터링에 주력하지만,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돌아가지 않고 일부 간부들이 착복하는 경우도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인도적으로 필요한 지원은 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원한 것이 군대로 빼돌려지면 군대가 ‘인민’들이 것을 빼앗지 않기 때문이다. 또 간부들이 배불러지면 ‘인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은 질 나쁜 식량이나 부식물이 인민들 손에 돌아오기 때문이다.
북한주민 가운데 1/3은 아무런 대책 없이 매일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하루에 한 끼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영양 결핍이 가져오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2010 세계인구현황보고서(유엔인구기금(UNFPA)·보건복지부·인구보건복지협회(PPFK)’에 따르면 영아 사망률이 우리보다 8배 정도 높은 1천 명 당 40명을 넘고 있으며, 산모 사망률도 우리보다 3∽4배 높은 630명 당 1명꼴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아기를 가진 산모들이 요오드 부족 현상으로 태어날 아이들의 뇌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안타까운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임신 중에 미역, 김, 다시마 한 조각 먹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식생활로 인해 내륙지방에 사는 산모들이 낳은 아이들이 IQ 80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보도가 오래 전부터 나오고 있으며, 북한 군인들도 요드 결핍으로 인해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 뉴스에 실리고 있다.
유진벨 재단에 따르면 최근 북한사회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결핵으로 인한 북한주민들 고통도 심상치 않다. 약 100만명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결핵 환자들이 일반 결핵약에 내성을 보임으로써 최근 들어 이른바 ‘다제내성 결핵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일반 결핵약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이다. 6개월 정도 치료가 아닌 내성 환자용 결핵약을 2년 정도 복용해야 하는 환자들이 급격히 늘고 있을 뿐 아니라 완치율도 50% 미만을 보이고 있어 결핵으로 인한 사망률도 증가하고 있다.
전쟁 중이라도 적국의 환자는 치료해주고 영유아 등 취약계층을 돌보아준다 것이 바로 인도적 정신이라고 한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바로 이런 정신에 입각해서 실행하여 온 실천이었다. 그동안 대북지원 공과를 놓고 남남갈등 구조가 형성된 나머지, 모든 대북지원은 북한을 도와주는 결과를 낳는 잘못된 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꼭 필요한 인도적 지원도 함께 비판을 받는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북한 당국의 책임도 크다. 인도적 지원을 빌미로 대량의 식량 및 비료 등의 지원을 유도하고, 이를 원래 용도와 다르게 전용한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남북협력기금이 마치 북한을 위해 쓰이는 돈으로 생각하고, 당연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공짜로 받는 것이라 후속관리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 지원한 설비와 공장들이 얼마 가지 않고 무용지물이 되는 사례도 적지 않게 발생했다.
이와 같은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안을 대북 인도적 지원의 실천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적대적 공존 속에서도 꼭 필요한 대북 인도적 지원의 명분과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인도적 지원은 지속적으로 비판 대상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서독이 동독을 지원할 때 활용했던 기준과 원칙을 원용해 볼 수 있다.
서독 정부는 첫째, 동독 정부가 지원해 달라고 공식 요청을 할 경우에만 지원을 해 주었다. 둘째, 반드시 작은 것이라도 지원에 대한 대가를 요청했다. 셋째, 동독 사회와 주민들이 서독이 지원한 사실을 공유하도록 노력했다. 이것이 서독 정부가 동독을 지원할 때 활용했던 기준과 원칙이다.
우리도 이런 사례를 원용하여, 앞으로 북한 당국이 인도적 지원을 요청할 경우 지원을 검토한 후 실행하고, 작은 것이라도 지원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고, 북한 간부들과 주민들이 우리가 지원한 사실을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 나가면 좋겠다. 문제는 세 번째 기준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이다.
분배의 투명성 기준을 제대로 적용하기가 무척 어려운 북한체제를 상대로 우리가 지원할 사실을 제대로 알리려면 우선 우리 신문과 방송을 통해 오늘은 어느 단체가 북한 어디로 무엇을 얼마나 지원해 주었는가를 공식적으로 밝히고, 이를 우리 국민들이 잘 알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 단체와 정부가 중복 지원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평양의 지도층도 북한 땅에 어떤 물품과 식량이 얼마만큼 지원 받는지를 알게 됨으로서, 지방 수준에서 은밀하게 처리되던 대북 지원물품에 대한 착복을 막을 수 있고, 배달 사고도 방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실행 기준을 지키게 되면, 지원된 물품이 분배의 투명성 원칙에 따라 제대로 분배되는가를 확인하던 힘든 실천은 하지 않아도 된다. 북한 내부에서 우리의 지원 사실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인도적 지원의 목표는 충분히 충족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의 분배 문제는 북한체제 기준에 맞게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만 보아도 된다. 현지 방문을 통한 분배의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무엇을 어디에 얼마만큼 주었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북한 당국 및 주민들이 알 수 있게끔 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향후 인도적 지원부터 이 방안을 원용, 실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방식은 기존 지원 방식을 보완 개선하는 방안의 의미를 가진다. 이를 통해 중앙에서 모르게 지방 간부들이 지원 품목을 착복하거나 빼돌리는 행위를 조기에 차단하고, 중간간부들끼리 협착해서 나눠먹는 관행을 차단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들도 대북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지속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본다.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주민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도적 지원은 명분과 실리를 찾는 고민 속에서 지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어려울 때 도와주지 않고 뭘 했어요?” 또한 같이 함께 할 사람들이 정말로 함께 살게 될 때, 우리보다 너무 처지지 않게끔 최소한 의 생존을 위한 도움은 도움의 의미와 방안을 성찰하면서 끊지 말고 계속되어야 한다. 이것이 인도적 지원이 통일로 가는 길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공존을 위한 실천과제’
이제부터 시작하는 남북교류협력은 단순히 교류협력을 위한 교류협력이 아니라 남북한 사회구성원이 다시 만나는 것을 상정하고 어떤 교류협력을 해 나가는 것이 도움이 되는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요컨대, 이제부터 생각하며 추진하는 교류협력은 ‘통일’(統一)을 ‘통이’(通異)의 관점에서 생각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즉, 통일은 동질성 회복과 함께 이질성 공존이라는 시각에서 시작해야 ‘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생각하면서 교류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통일은 ‘현상 유지’가 아니가 ‘현상 변경’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흔히 통일을 얘기하고 상상할 때, 지금의 ‘남한’과 ‘북한’이 만나는 것을 상정하는데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발상이고 상상이다. 통일은 지금의 남한이 아닌 훨씬 변화된 남한과 엄청나게 변화를 나타낼 북한의 ‘합침’이다. 둘로 쪼개진 거울을 단순히 합쳐보는 그런 수준의 ‘합침’이 아니라 도저히 서로 합칠 수 없을 것 같은 두 정치공동체 및 사회문화공동체를 합치는 한 번도 해내지 못한 ‘정치공학’이며, ‘통합예술’이다.
통일 상상력과 통일을 감당할 능력이 함께 어우러진 상태에서 서로 다른 것을 참아내며 받아들이는 ‘관용’이 없으면 불가능한 새로운 창조가 바로 남북한 통일이다. 남북 사이의 ‘상극성’을 줄여나가면서 ‘상보성’을 늘여 나가는 것이 바로 통일의 과업이며 통합이 궁극적 목표이다. 따라서 서로 불편하지만 참으면서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켜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차이’가 ‘차별’로 나타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통일교육이 역점을 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핵심가치이며 기조이다. 이미 다문화교육 및 교양을 통해 통일예행연습을 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전체가 ‘통일 친화적’이며 ‘통일 수용적’인 그릇이 될 수 있도록 공감대 형성과 감당능력 배양에 주력해야 한다.
북한주민이 원해야 통일도 이루어지고, 통합도 순항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탈북민 즉,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하는 연습을 통해 통합 매뉴얼도 잘 준비해 주어야 한다. ‘북한이탈주민 정착과정’에 대한 패널 연구를 통해 통합의 로드맵도 사전에 마련해 두어야 한다.
한편 사회문화 통합 준비를 위한 우선과제로서 ‘북한 변화’를 유도하는 다양한 노력과 집중력도 발휘해야 한다. 북한 변화 없이는 통일의 성취 가능성도 없다는 점에서 더욱 이 부문의 준비가 절실하고 시급하다. 북한 주민의 ‘미래 선택권’을 만들어주면서, 이 과정에서 북핵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아울러 통합은 당장은 불편하지만 참으면서 감내하는 속에서 이뤄낼 수 있다는 의식을 확산시키고 정착시키는 또 다른 노력이 병행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통합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의 영역이란 점에서 각 분야의 ‘통합전문인력’을 미리 꾸준히 양성하여 통합상황에 대비하여야 한다. 특히 구체적인 통일 상상력에 기초한 우리 사회의 통합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분단이 안겨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통합전문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 서로 너무도 모른 채 자기 생각에 빠져있는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강대국에 의해 분단된 이후 같은 민족끼리 처절한 전쟁을 치렀다. 서로 반목하면서 체제경쟁에 힘 쏟다보니, 갈라진 두 개의 민족공동체를 하나로 만드는 작업에는 오히려 소홀히 한 적이 많았다. 체제 경쟁에서 이기는 게 우선이지 함께 합친다는 것은 뒷전이었다. 말로만 통일을 외쳐댔을 뿐 실제로 통일을 앞당길 방안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은 많지 않았다. 한 때는 우리 사회에서 통일을 최우선 국익으로 간주하는 발언이 친북적인 발언으로 매도되는 시절도 있었다. 북한도 무력을 통한 공산화통일을 때마다 강조했을 뿐, 서로 합치는 통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는 힘이 너무도 약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체제 수준에서 상대방의 약점을 들춰내는 데 익숙할 뿐, 상대체제의 작동원리나 사회구성원의 삶을 이해하는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보니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져 같은 민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다른 이질성을 띠게 되었다. 동독 지도층이 자만심에 빠져 일찌감치 서독 TV를 보게 하는 조치를 단행(1972년)함으로써 동독 사람들이 통일 이전부터 서독사회와 생활을 사전 경험할 수 있는 계기도 있었으나, 우리는 서로의 방송을 접할 공식적 계기를 아직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브란덴브루크 비망록(양창석 저)’에 따르면 통일 이전에 서독사람들은 “메일 저녁 7시에 동서독은 통일이 되었다.”라고 얘기했다. 그 시간에는 서독 국민과 동독 국민들이 모두 서독 TV를 시청했기 때문이다.
동서독 정부의 정치범 석방을 놓고 거래를 중개하던 동독 교회 역할을 할 만한 중개자도 아직 남북한 사이에는 없다. 통합의 의견과 동력을 제공하던 동독의 노조도 북한 땅에는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 땅을 방문하고 단기적으로 체험한 방문 인원이 120만 명을 넘고, 금강산과 개성을 관광한 숫자도 적지 않지만 ‘북한’을 제대로 읽고 진단하는 전문가도 드물다. 북한에서 살다가 탈출한 ‘북한일탈주민’이 3만 명에 달하는데도 북한 체제를 재구성하는 것이 역부족이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최근 ‘통일’에 부쩍 열을 올리고 있다. 통일의 상대인 북한도 제대로 모르면서 통일만 하면 장밋빛 미래가 온다고 부추기면서 통일논의를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통일이 이뤄지면 어떤 상황이 도래하며,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물과 기름’의 합침 같은 어려운 과제를 소화해 낼 수 있는지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다.
남북한은 현재 상태로는 동질성을 회복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이질성을 극복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완전히 서로 다른 삶과 사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동질성을 회복한다고 할 때, 우리의 기준에 맞춰 회복하게 되면, 북한 사회구성원 2,500만명은 이방인이 되고 만다. 그리고 2등 시민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통일 이후 또 다시 사회 균열은 심화되면서 통일은 왜 했느냐는 근본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통일은 하나로 만드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것(異)이 원활하게 통(通)하는 ‘통이’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부터 서로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보다 큰 그릇으로 만들어야 한다. 통일 친화적, 통일 수용적이란 용어에는 그런 뜻이 담겨야 한다. 그래야만 통일이 가져오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편함과 이질감을 사회가 소화하고 감당해 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북한’을 정확하게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김정은 중심의 북한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북한사회와 주민들의 삶을 직시할 수 있는 감각과 안목을 길러나가야 한다. 아울러 북한주민의 마음을 읽고 그들이 우리를 좋아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속적으로 우리의 마음과 준비를 알려주어야 한다. 북한 주민이 우리를 선택하고 통일을 이루겠다는 결심을 해주어야 통일은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북한주민이 원하지 않으면 우리가 바뇩옮育舅?절대로 이뤄낼 수 없다. 이것이 통일을 생각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명제이다.
그리고 통일의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지금 수준으로선 통일의 동력을 일궈내기가 어렵다. 통일 세대를 길러내는 힘도 너무 미약하다. 통일이 되면 성취할 수 있다는 경제적 통계만 강조하지 말고 실제로 다가올 미래를 사전 체험할 수 있는 근거 있는 상상력을 가상현실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더 발휘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남북한은 서로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기초적 질문에서 벗어나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더 개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다음 단계 준비를 할 수 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는데, 우린 너무 모른 채 무식한 상태에서 통일준비를 하고 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부총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와 제주도 등이 4일 제주한라대 강당에서 연 ‘민족화해 제주포럼’에서 대북 전문가인 김 교수가 발표한 주제발표를 칼럼식으로 바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