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신 금융패권 막 오른 글로벌 허브 경쟁] <5> 350년 저력의 금융권력 뉴욕

월가 "잃어버린 5년 되찾자" 발빠른 구조조정으로 경쟁력 회복

살찐 고양이 규탄 받고 규제로 수익 줄었지만 세계최대 경제·달러 바탕

사업 재조정·M&A 가속… 3대 IB 글로벌 점유율 금융위기 전 수준으로


지난해 12월 초 미국 뉴욕 맨해튼 남단에 위치한 콘래드호텔. 골드만삭스 초청으로 수백명의 월가 거물들이 고급 리무진을 타고 몰려들었다.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연설을 듣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클린턴 전 장관은 "민주·공화 양당의 은행권 때리기는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경제 살리기를 위해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대형은행·헤지펀드 최고경영자(CEO)들의 얼굴에도 모처럼 미소가 흘렀다. 이 장면은 역설적으로 정치권과 정부 규제에 대한 월가의 위기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잃어버린 5년' 보낸 '살찐 고양이들'=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 국면에 들어간 지난 2010년 9월. 미 방송 CBS 시사 프로그램인 '60분'을 지켜본 월가 CEO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더 이상 미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은행 시스템을 구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월가 은행가들은 '배부른 자본가(fat cat)'"라고 경멸했기 때문이다.


이후 오바마 행정부와 미 정치권은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 등 국민적 공분을 등에 업고 금융규제 및 자본건전성 강화, 부실 모기지 판매나 원자재 가격 조작에 대한 천문학적 벌금, 금융범죄자 처벌 등 월가에 메스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JP모건 한 곳이 주택담보대출증권(MBS)펀드 부실판매, 파생상품 손실에 대한 감독소홀 등으로 물어낸 벌금과 배상금만도 240억달러에 이른다.

규제강화의 여파로 월가의 수익성도 쭈그러들고 있다. 대형 투자은행(IB)들의 주요 수입원인 채권·상품·외환 등 FICC 부문 매출은 지난해 4·4분기 평균 11%가량 줄면서 4분기 연속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자기자본 투자를 제한한 볼커룰이 오는 2015년 7월부터 시행되면 '고위험-고수익' 투자가 생명인 월가의 역동성에 치명상을 입힐 것으로 전망된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 따르면 글로벌 은행들의 주당 수익은 2017년까지 6~9% 수준에 그치며 10% 중반에 달하던 2008년 이전에 비해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또 반월가 성향의 빌 더블라지오 신임 뉴욕 시장이 공약대로 고소득자 소득세율을 올릴 경우 우수인력 이탈로 금융도시 뉴욕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티핑포인트(급변시점)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하이·선전·모나코·몰타·카타르 등 신흥국 역내 금융허브들이 맹추격하는 가운데 월가 투자은행들은 그야말로 '잃어버린 5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350년 역사' 월가의 저력=월가의 금융권력에도 미세하게나마 금이 가고 있다. 영국계 리서치 기관인 Z/Yen그룹이 지난해 9월 발표한 글로벌금융센터지수(GFCI)에 따르면 런던과 미국은 여전히 1·2위 글로벌 금융센터의 자리를 지켰지만 평가지수는 지난해 3월에 비해 각각 13포인트·8포인트 하락했다.

관련기사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월가 모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실물경제와 유리된 채 원자재·주식·채권 등의 트레이딩에 초점을 맞추면서 거대한 금융 버블을 만들어왔다는 것"이라며 "상하이 등 다른 금융허브가 미래 실물경제에 자금공급 채널을 만든다면 월가에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위기요인에도 월가의 위상은 아직 굳건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세계 최대인 미 경제와 기축통화인 달러를 등에 업고 있는데다 런던과의 시너지 효과, 전문인력, 시장투명성과 법적 안정성 등은 아직 상하이·싱가포르 등 다른 지역 금융허브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자산이다.

실제 지난해 12월 금융컨설팅 업체인 키네틱파트너스가 CEO 등 전세계 금융권 종사자 300명을 대상으로 '5년 뒤 세계 1위 글로벌금융센터'를 묻는 질문에 뉴욕은 40%의 표를 얻으며 여전히 1위를 지켰다. 전 뉴욕 부시장인 로버트 리베르 아일랜드캐피털그룹 사장은 "5년 전 글로벌 금융수도 후보로 떠오르던 두바이의 파산 사례를 보라"며 "앞으로도 아시아 도시가 뉴욕에 필적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부 규제강화가 월가 경쟁력을 오히려 더 높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포브스는 최근 "은행권은 현재 기존의 돈 벌기에서 주주나 소비자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라고 강요당하고 있다"면서도 "이는 투자가를 돌아오게 만들어 은행에도 좋은 것"이라고 전했다.

월가 역시 지난 350년의 역사를 지탱해온 특유의 기동성과 '탐욕의 문화'를 무기 삼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JP모건체이스·골드만삭스·씨티 등 미 3대 IB의 경우 감원, 사업 재조정, 인수합병(M&A) 등 구조조정을 거치며 세계시장 점유율이 33%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반면 같은 기간 유럽 IB의 점유율은 20%나 줄었다.

색스 교수도 "월가는 세계 최대의 자본시장으로 수많은 전문가 등이 있어 여전히 글로벌 금융시장의 요구를 맞출 수 있다"며 "개혁과 자정 노력만 뒷받침된다면 세계 1위의 금융센터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가의 수성작업 역시 현재진행형이라는 얘기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