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부양 시도” 안정기조 위협 우려/정부조직 감축방안 등 기대 못미쳐9일 정부가 확정한 「경쟁력 10% 높이기」추진 방안은 규제완화와 기업의 부담 경감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제시된 내용가운데 공단 분양가 인하나 각종 부담금·의무고용제 폐지 방침 등은 그동안 기업의 발목을 잡아온 각종 부대비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공공부문의 인건비·경상경비 총액 동결이나 국가공단관리공단 통폐합 방침 등도 정부가 이번 시책을 마련하는 데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부의 제반 대책은 우리경제의 심각한 상황을 고려할때 개선의 차원에 머물렀지 개혁이나 혁신의 모습은 미흡하다는 평가다. 우선 정부가 핵심적인 과제인 과감한 조직 감축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데다, 임금안정을 위한 실질적 대안을 제시치 않고 엉거주춤한 호소에 그친 것은 이번 「경쟁력 높이기」시책의 효과의 한계를 노출한 거나 다름없는 결과라는 지적이다.
특히 기업의 금융비용 경감을 내세워 ▲대기업에 상업차관 허용 ▲수출선수금 영수한도 확대 ▲연지급 수입기간 연장등 통화증발이 우려되는 단기적인 시책을 채택한 것은 사실상 「경기부양」시도여서 경제의 안정기조를 흔들어 부작용만 초래할 소지가 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먼저 공공부문의 생산성 높이기 세부 내용을 보면 공공부문의 양축인 정부와 공기업가운데 정작 공기업에만 「희생」을 강요하고 정부쪽 노력은 미흡한 인상이다. 정부가 인력·조직 감축에 나선다며 사무보조원 등 단순기능인력 1만여명을 4년간 줄이겠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내용이다. 공무원 총정원이 무려 90만명에 이르는데 중앙부처 중상위직은 그대로 놔둔채 여비서, 일용기능직 등 일종의 서비스하위직만 감축해 정부조직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발상이 과연 설득력을 가질 지 의문이다.
또 종이·필기구 등 사무용품비를 현금 지급하고 절약된 예산은 해당부서의 운영비로 쓴다는 내용은 국민 세금의 지출로 따지면 절약효과가 전혀 없다.
반면 공기업 부문에선 투자기관의 인건비·경상비 총액을 동결하고 5개 국가산업단지관리공단을 1개로 통폐합하는등 구체적인 내핍 노력이 제시돼 향후 파급영향이 광범위할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안정과 관련, 정부는 대기업의 임금인상 자제를 유도하고 노동관계법은 경쟁국 수준을 감안해 개선한다는 종전의 선언적 구호만 되풀이했다. 특히 정리해고, 근로자파견, 변형근로시간제 등 민감한 과제에 대해선 미온적 입장을 견지해 정부가 말로는 경쟁력 위기를 떠들면서 실제론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치 못했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기업의 금융비용 10% 경감방안은 이번 시책에서 가장 실질적인 내용이 포함된 부분이다. 보험회사의 계약자 대출원칙을 폐지, 가입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기업이나 개인에 자금 대출을 허용한 것이나 수출선수금 한도 확대, 연지급수입기간 연장, 대기업에 외화대출·상업차관 허용 등을 채택함으로써 특히 대기업의 자금난 해소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같은 시책은 국제수지의 걷잡을수없는 악화를 막기위한 미봉책으로 사실상 수출산업에 대한 긴급지원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또 물류시설 확충을 위해 공단주변 도로 건설 등 제한된 범위에서 지방자치단체에 현금차관을 허용키로 결정했고 이번 대책과 별도로 은행 지급준비율을 금명간 2%포인트가량 낮출 방침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시책들은 대부분 통화팽창과 물가압력으로 직결되는 「경기부양」적 성격이 강한 내용들로, 정부가 그동안 강조해온 경제안정 기조를 뒤흔들 소지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경쟁력 10% 높이기 방안을 앞두고 그동안 각계의 기대는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 4일 무역업계 대표들과 간담회에서 『경쟁력 제고를 위해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7일 정책협의회에서 『정부, 공사, 협회 등 공공부문에 대대적인 인력감축이 필요하다』고 건의했었다. 그러나 9일 확정된 경쟁력 높이기 방안은 이같은 기대를 무산시켜 경제난 타개를 위한 정부의 「솔선수범」의지가 아직 미흡함을 드러낸 결과가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유석기>
◎재계 반응/공단분양가 인하 등에 기대감/근로자파견제 등 현안 언급없어 아쉬움
재계는 9일 발표된 정부의 「경쟁력 10% 이상 높이기 방안」에 대해 『경제난 극복을 위한 바람직한 대안』이라며 일제히 환영했다.
전경련,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와 삼성, 현대 등 주요그룹들은 정부의 공단용지 가격인하 등 실질적으로 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치들에 대해 기대감을 나타냈으며 공무원 인원 감축 등 정부의 「솔선수범」조치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재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금리인하 방안이 포함되지 않은 점과 정리해고제, 근로자 파견제 등 현안과 일부 규제완화방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을 들어 부분적으로는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다음은 주요 단체 및 그룹의 반응.
▲전경련=보다 현실적인 시각에 접근한 바람직한 대안을 담고 있으며 특히 공단 분양가 25%인하, 공공부문의 임금동결 등은 기업의 생산비용 절감노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공단개발에 대한 부담금 면제대상에서 수도권을 제외한 것이나 첨단업종의 수도권 공장증설범위를 25%에서 50%로 확대한 것 등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그동안 경쟁력 악화의 주원인으로 지적돼온 금리인하방안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아쉽다.
▲대한상의=정부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구체적인 내용의 정책을 마련해 준데 대해 환영하며 특히 대기업에 대한 상업차관의 도입 허용 등 자금조달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수도권 첨단공장 신·증설한도를 50%로 확대한 조치 등은 기업경영에 큰 활력을 주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금리인하와 임시투자세액 공제제도 등 재계의 요망사항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점은 아쉽다.
▲무역협회=수출선수금 확대와 금리안정, 기초 원자재 관세면제, 의무고용제최소화 등 획기적인 규제완화를 통해 업계의 고비용 해소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무역업계도 기술혁신과 고부가가치화 등 대외경쟁력 강화를 통해 국제수지 적자의 개선에 힘써 나갈 방침이다.
▲기협중앙회=정부의 이번 경쟁력 10% 높이기 추진 방안은 기업활력 회복을 통해 우리경제의 구조적 요인에 의한 체질 약화를 극복하기 위한 지난 9·3대책의 보완책으로 기업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다는데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특히 고비용구조 개선을 위한 금리 인하, 공장등록제 폐지, 공단분양가 인하등은 획기적인 조치로 기업의 경쟁력 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소기업이 최근 극심한 판매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정부발주 공사시 턴키발주방식의 확대와 단체수의계약제도의 축소는 중소기업에게 경영부담을 가중시키는 한 요인이 될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
▲경총=국가적 위기에 처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구체적인 의지가 표명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최근의 경쟁력 약화는 우리경제의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임금에 기인하는 만큼 정부는 임금안정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본다.
▲삼성그룹=정부 발표 내용 중 정부투자기관의 혁신이나 기업금융비용 10% 절감, 공단 분양가 25% 인하 등은 그대로만 실천되면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규제완화를 사후규제로 전환한 것은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현대그룹=공단분양가 25%인하와 금융비용 10% 경감추진 등은 실질적으로 추진된다면 기업경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규제완화는 계획보다는 실천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끝까지 실천하는 정부의 강한 실천의지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LG그룹=그동안 많은 논의를 거쳤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추진이 멈칫했던 조치들이 상당부분 이번 방안에 반영됐다. 이제 기업들도 경쟁력있는 사업에 경영자원을 집중시키고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해 대외경쟁력을 회복해 나가는데 전력을 다해야겠다.<민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