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책을 빌리는 사람과 책을 빌려주는 사람의 두 부류가 있다지만 국민을 바라보는 눈에도 두 부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모든 국민이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다른 하나는 국민이란 틈만 나면 언제나 이득을 취하기에 골몰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국민을 바라보는 두 시각은 결국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다만 재물 늘리기에 골몰하는 국민을 증오하느냐 아니면 포용하느냐의 문제만 남게 된다.
증세논리 고집 부동산정책 실패
역대 정권 가운데 참여정부만큼 부동산대책에 심혈을 기울였으면서도 무참하게 실패한 정부도 없는 것 같다. 이제 부동산 폭등은 서울 강남이나 버블세븐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3년 동안 잠잠하던 경기도 구리시의 아파트값이 석달 만에 30%나 올랐다면 그 동안 일부 지역의 집값 급등 현상이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일시적인 가수요라기보다는 실수요라고 판단해야 하며 정부가 11.15 대책을 통해 공급확대 정책으로 선회한 것도 그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시작부터 증오의 경제학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정책혼선까지 빚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03년 10.29 대책의 골격을 마련했던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위원장이 “보수세력은 공급확대를 주장하지만 부동산정책의 핵심은 세금”이라고 아직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얼마나 증오로 가득 차 있는가를 증명한다. 과거 우리 사회에는 미실현이득이지만 집값이 높은 좋은 곳에서 사니까 보유세를 더 내야 한다는 통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불로소득을 얻을 가능성이 있으니 그 징벌로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참여정부의 증세 논리만 남았다.
그러나 부동산 폭등의 가장 큰 책임은 누가에게 있는가?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들쑤셔 놓아 37조원의 토지보상비가 나갈 정도라면 부동산시장에 불을 지른 것이나 매한가지다. 국민의 정부 때부터 누적되어온 풍부한 유동성에 금리인상 시기마저 놓쳤다면 부동산이 오르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더욱이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고 실질소득은 도리어 줄어들고 있는 사회라면 어느 누구인들 부동산 재테크를 마다하겠는가. 내년에 수도권 아파트 입주물량이 20%나 줄어 집값이 불안하다는 소식에도 서둘러 집을 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니엘 벨은 사회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정치는 참여를, 경제는 효율성을, 문화는 자기고양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는 소외된 자를 포용하는 등 참여의 폭을 넓히는데 의의가 있고 경제는 효율성을 극대화하는데 의의가 있다. 전적으로 경제 문제인 부동산을 놓고 정치 문제인 소셜 믹스를 들이민다면 이만저만한 모순이 아니다. 수요억제책이 무의미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요억제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난 2003년 10.29 대책과 함께 신도시 건설을 추진했다면 지금쯤 부동산시장은 확실하게 안정을 찾았을 것 아닌가.
갑작스런 공급확대로 또 혼란
11.15 대책을 보면 뒤늦었지만 이제 정부도 공급확대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 같다. 그러나 정책을 갑자기 선회하다 보니 스파게티 볼(Spaghetti Bowl) 효과로 볼 수 있는 정책혼선이 일어나고 있다. 공급차질을 빚을 수 있는 후분양제 논란이나 급격하게 늘어나는 종합부동산세 부과대상자 등은 전형적인 정책혼선의 일종이다. 서울의 평균 아파트값이 5억원을 넘는 마당에 종부세 과세기준을 6억원으로 정해놓고 과세표준마저 해마다 올린다면 갑자기 종부세를 물어야 하는 1주택자가 조세저항의 유혹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따라서 참여정부는 정책전환을 한 지금이야말로 코드를 잊고 모든 부동산 대책을 재점검해 국민의 혼란을 막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