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재계 최고위층 인사 다수가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거액의 자금을 빼돌리고 역외탈세를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이번 폭로는 이러한 중국 엘리트층의 아킬레스건을 사실로 확인한 것이다.
중국 사회의 특성상 이번 폭로에 대한 공개적인 처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건 규모와 연루자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증폭된다면 중국 정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부패척결을 외치는 시진핑 국가주석도 자신의 매형이 연루된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개혁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훼손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ICIJ에 따르면 당장 덩샤오핑-후진타오-시진핑 등 전현직 주석 3명과 총리 2명 등 최고지도자 5명의 친인척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중 시 주석의 큰 누나 남편인 덩자구이는 시 주석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있던 지난 2008년 당시 대표적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차려놓고 재산을 은닉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부동산과 자원개발로 우리 돈으로 수천억원대의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차린 원 전 총리의 아들인 원윈쑹은 아시아 최대 위성회사인 차이나새콤 회장이며 사위인 류춘향은 중국은행감독위원회 고위간부다. 원 전 총리 일가는 2012년 뉴욕타임스(NYT) 등이 3조원대 재산형성 사실을 밝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밖에 후 전 주석의 사촌이자 홍콩 소재 철강회사 대표인 후이스, 리펑 전 총리의 딸 리샤오린 중국동력국제개발유한공사 사장, 덩샤오핑의 사위이자 금속 분야 전문가로 전국인민대표회의 위원을 지낸 우지안창이 각지의 조세회피처에 유령회사를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가들도 거액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났다. 중국 최대 부자로 정보기술(IT) 기업인 텐센트그룹을 창업한 마화텅 회장, 여성 최대 갑부인 양후이옌 비구이위안그룹 후계자는 물론 중국의 대표적 부동산개발 기업인 소호차이나를 이끄는 장신 회장도 페이퍼컴퍼니를 차렸다고 ICIJ는 전했다. ICIJ에 따르면 중국 최대 부자 중 16명이 유령회사를 통해 자금을 은닉했다. 이 중 상하이 부동산개발 업자인 저우젱이는 이미 부패혐의로 징역을 살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번에 폭로된 인사 중 대다수가 부동산 및 자원개발 등 관료와 연계된 부정부패가 만연한 분야에서 자산을 축적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ICIJ에 따르면 이번 조사로 조세회피처에 설립된 중국계(중국 본토+홍콩) 유령회사는 2만2,000여곳이며 대만계 회사 1만6,000여 개를 합치면 3만8,000개가 넘는다. ICIJ는 아직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밝힌 만큼 최종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중국에서 빼돌린 자금은 조사기관별로 1조달러에서 최대 4조달러(약 4경2,69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돼 파장을 더욱 키우는 동시에 여론의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 조사단체 글로벌파이낸셜인테그리티(GFI)는 2002~2011년 중국에서 조세회피처로 흘러나간 불법자금이 1조달러에 달하며 이 중 4,000억달러(약 4,269조원)가 외국인직접투자(FDI)로 위장해 다시 국내로 유입됐다고 지적했다. 이는 러시아(약 8,800억달러)와 멕시코(약 4,600억달러)를 압도하는 세계 최대 규모다.
이번 사건은 중국 내에서 국민들의 허탈감과 지도층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클라크 가스카이오네 GFI 대변인은 "ICIJ의 폭로는 불평등과 부패라는 중국의 최대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면서 "지도층의 부정부패와 이를 통해 형성된 자금의 은닉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중산층과 빈곤층의 박탈감과 분노를 급증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번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은 시진핑 정권의 부패척결 의지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중국 사회의 아킬레스건을 극복하고 안정을 달성할 수 있을지의 향방을 가늠케 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