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호화로운 전시장 거부… "生을 보여주고 싶었죠"

설치작가 이주요의 '오픈스튜디오'<br>시장안 작업실이 전시공간으로<br>기획자 없이 관객들과 직접 만나<br>"새로운 소통의 길 열고 싶어"

수공제작한 타자기로 벽에 글씨를 적는 이주요의 신작 '생선장수 벽화'는 생업을 위한 생선장수와 작업을 위한 화가의 갈등이라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34-80. 설치작가 이주요 씨는 2년 전 자신의 작업실로 이 곳을 낙점했다. 집세가 합리적이고 시내에 있어 대중교통 이용이 편하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취객이 오가는 어두운 시장 골목에 밤이 깃들자 공포를 느꼈다. 더 큰 문제는 다음날 아침. 두려움 반 작업 반으로 밤을 지샌 뒤 새벽녘 잠이 들 무렵 오전 7시5분이면 어김없이 골목을 쩌렁쩌렁 울리는 생선장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선장수는 마치 오페라 배우 같은 발성으로 '갈치, 고등어~'를 외쳤고 골목길이 만드는 공명에 이씨는 잠은커녕 참아내기도 힘들었다. 몇 주 째 불면의 밤과 낮을 보내 마르고 창백해진 작가는 큰 맘 먹고 생선장수를 찾아가 따졌다. 생선장수는 "에이, 먹고 살아야 하는데"라며 고개를 돌렸고 작가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생선통 얼음을 보며 "나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나는 밤에 일을 한단 말이에요"라며 고개를 떨궜다. 작가는 분명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 그런 작가가 시장 골목에 작업실을 차린 것부터가 잘못이었을까. 그의 경험은 신작 '생선장수 벽화'로 표출됐다. 지난 13일 예약제 '오픈스튜디오'가 열리고 있는 작업실에서 이를 볼 수 있었다. 벽화는 거실 벽에 손이 아닌 타자기로 그려졌다. 철판과 나무, 스폰지와 손으로 깎은 활자로 만들어진 타자기를 건드리면 '골목' '꽥꽥' '생선장수' '시끄러운' '지옥' 등의 단어가 벽에 적힌다. 직접 수공한 조악한 타자기라 어렵게 눌러야 겨우 글자가 '탁'하고 찍히는데, 이 순간은 작가와 생선장수가 '힘들게 대면한' 그 순간을 상징한다. "일반 타자기로도 적을 수 있는 글을 왜 이렇게 힘들게 쓰냐고요? 말을 꺼내기가, 말로 표현하기가 이렇게 힘든 거거든요." 작품에는 원망과 절박함이 공존한다. 바깥 사람들이 보기에 그의 작업실은 한가한 별천지일 수 있다. 그러나 그곳은 낮과 밤이 뒤바뀐 채 생활과 생산, 작업과 생업이 공존하는 곳이다. 국내외 내로라 하는 전시장에서 초청받는 작가가 굳이 작업실을 전시장으로 삼은 것은 "실제 살았던 공간에서 보여줄 수 있는 날(生) 것을 보이고 싶어서"였다. 생의 본질을 고민하는 그는 "시장 골목의 일상 속에서 나는 유령 같은 예술가였고 '작가'라는 존재의 의미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가의 침실 문 앞에는 언덕 같은 경사로가 있어 방문객의 시선을 천장으로 끌어올리고 베란다를 틔워 집 안에서 근경ㆍ원경이 나뉘게끔 장치돼 있다. 방에는 긴 막대 끝에 묶인 크레용과 잠 못 이룬 밤에 이것으로 그린 천장 벽화도 있고 '2년 살 겁니다'라는 다짐도 씌어 있다. 작업실이 곧 전시장인 이 전시는 전시기획자(큐레이터) 없이 작가와 관객이 직접 만난다. 기획자가 관객을 위해 해설해주는 '언어화' 과정이 생략된 것이다. 작가는 이 같은 소통법에 대해 연구 중이나 아직까지는 난해하다. 작가 스스로는 이 작업을 "비정한 물리적 세계의 약한 것들"이라고 정리하는데 느림, 번거로움, 경계, 생존, 망설임 등 제각각 의미를 붙여볼 수 있는 열린 전시다. 이주요는 한진해운 양현재단이 제정한 국제미술상인 '양현 미술상'의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3회 째인 이 상은 이 씨가 첫 한국인 수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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