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힘모아 다시 뛰자] 자기반성ㆍ상호존중이 상생 첫걸음

2004년 한국의 새해 아침은 가파른 8부 능선에서 시작한다. 오르지 못하면 떨어지는 수 밖에 없는 길이다. 한해동안 미끄러져서 더 이상 밀릴 곳도 없다. 똑 바로 판단하고 온 몸의 근육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전진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비록 밀려났다고 하지만 고지가 바로 저기다. 이보다 더 어려운 때도 견뎌냈던 힘도 있다. 한국은 여전히 희망적이다. 단 절대조건이 있다.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노사, 가계와 기업이 합심하지 못하면 탈출이 불가능한 미궁(迷宮)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적어도 4월까지는 정치권의 불신과 반목 구조가 더욱 증폭될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총선까지 앞으로 100일. 지난 한해처럼 지낼 경우 미래는 기약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덮을 것은 덮고, 서로의 허물을 용서해주며 함께 공존하는 분위기`도 이제는 기대하기 어렵다. 여야의 공방 속에 너무나 많은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이상 털 것은 털고 가자는 견해도 적지 않다. 문제는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깊어질 수 있다는 점. 심화할게 뻔한 정쟁으로 화합 가능성 조차 물건너 갈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우리가 싸움으로 일관하는 동안 전세계는 뛰고 있다. 미국이 8%대의 분기성장률을 기록하며 회복세에 들어섰고 일본은 10년 불황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전세계의 달러가 모이는 중국은 단순히 노동력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우리를 추월하다 못해 압도하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요 회사들이 미국, 일본이 아니라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경제가 천년 이상 그랬던 것처럼 중국에 예속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전철환 전 한국은행 총재는 “중국의 성장을 자양분으로 이용하려면 우리경제의 수준도 한 단계 높아져야 한다”며 “기술개발, 노사관계 안정 등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만주의 광활한 땅을 빼았겼던 고구려 멸망기와 일제에게 병합 당한 조선의 역사에는 당파 싸움과 동족끼리의 경쟁심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경제전쟁으로 대변되는 21세기 경쟁에서 지금과 같은 퇴보가 계속된다면 패배와 예속은 불 보듯이 뻔하다. 책임은 모두의 공유물이다. 16대 대통령 선거는 2002년12월19일 끝났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은 여전히 대선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시의 경쟁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 개표부정시비를 비롯해 야당은 대통령을 인정한 적이 거의 없다.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배타적, 도덕적 우월감을 감추지 않은 채 깜짝쇼로 일관해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이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내 눈의 들보(나무 기둥)은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띠끌 만 탓하는 정쟁을 발전적으로 변화시키는 전제는 철저한 자기반성에 있다. 반성은 상대방에 대한 인정에서 나온다. 최근 주목을 끌었던 협력과 통합 사례는 모두 상대방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됐다. 삼성전자가 협력업체를 위해 1조원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청업체를 일방적으로 대하기 보다 수평적으로 인정하고 지원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다. 보다 고차원적인 협력의 결과물이 기대된다. 고용증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노사협력 모델로 주목받는 유한킴벌리의 교대근무제 역시 노사가 서로를 신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경북대 김영호 교수는 “교대근무제가 전반적으로 도입될 경우 200만명 가량의 신규 고용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경쟁국의 도약과 협력 성공 사례가 말해주는 결론은 분명하다.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서로 존중하라`는 것이다. 상대를 인정하면 싸움도 발전적일 수 있다. 정치권의 특별한 각성이 요구된다. 노동과 기업부문도 마찬가지다. 후진국일수록 어느 한 부분이 안돌아가면 전체가 타격 받지만 선진국은 그렇지 않다. 설명 정치가 실망스럽라도 견실한 노동부문이 존재하고 기업가 정신이 살아있는 한 경제는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 정치 혼란과 사회 갈등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건실해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 반성할 필요가 있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노사안정”이라며 “노사가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외국인 투자가 늘고 동북아 경제중심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반성은 상호존중은 반목과 갈등을 상생 구조로 만드는 첫걸음이다. 한국의 구성원 모두는 같은 배를 탄 동지들이다. <권홍우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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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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