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설비 하청업체를 운영하는 A사장은 어느날 원청인 부산도시가스 H과장으로부터 '자녀 유학비가 모자라니 돈을 마련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알고 보니 이 같은 부탁은 다른 2곳의 설비업체 사장들도 받았다. 금액이 2,000여만원에 달했지만 이들은 하는 수 없이 돈을 갹출해 H과장에게 전달했다. 부산도시가스 직원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 영세 하청업체들에게 사실상 금품 상납을 강요한 것이다. 부산지방검찰청 강력부(박성진 부장검사)는 설비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부산도시가스 직원 18명을 지난 14일 기소하고, 이 가운데 수법이 노골적이고 금품 수수금액이 큰 H 과장과 K 대리 등 4명은 구속기소했다고 17일 밝혔다. 검찰 조사 결과 가스 설비업체로부터 금품을 뜯어낸 부산도시가스 임직원들의 행위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상습적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자녀유학비는 물론 차량구입비가 부족하다거나 '아내가 출산했는데 병원비를 대 달라'라는 등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술값 대납은 물론이고 휴대폰 교체비용도 업체들에게 떠 넘겼다. 부산도시가스는 모 재벌그룹의 자회사로 부산에 도시가스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면서 시설공사에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설비업체들은 부산도시가스의 눈밖에 나면 생계가 막막해지기 일쑤다. 실제 설비업체들은 도시가스 공급희망지역의 수요자를 모집한 뒤 부산도시가스의 서류심사를 거쳐 수요자들에게 돈을 받고 시설공사를 하는데, 모든 시설공사를 부산도시가스가 감독하도록 돼 있다. 서류심사가 보류되거나 공사감독 과정에서 트집이 잡히면 정상적인 공사가 힘들기 때문에 설비업체들은 부산도시가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이런 구조 속에서 비리가 싹텄다. 지난 2006년 3월부터 2009년 6월까지 이들 직원들이 받은 돈은 확인된 것만 모두 2억6,000여만 원이 넘는다. 검찰조사결과 A 대리는 자동차 구입대금으로 한 설비업체에서 1,000만원을 받은 뒤 등록비용이 필요하자 다른 설비업체 사장에게 연락해 200만 원을 추가로 받기도 했다. 게다가 이들은 자신의 계좌로 버젓이 송금을 받는가 하면, 업체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돈을 받기도 하는 등 금품 수수를 아주 당연시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적발된 직원의 숫자가 18명이나 되는데다 직급이 팀장부터 대리까지 다양하고, 담당업무도 영업팀과 공무팀, 안전공급팀 등 설비공사 전 과정에 걸쳐 있어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부산도시가스의 사례를 전국 검찰에 전파해 유사사건 수사에 적극 활용하도록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