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이 3일 “증거가 있는 불법 대선자금은 모두 수사하겠다”는 수사 원칙을 천명하고 나선 것은 이번 기회에 선거자금과 관련된 부패를 뿌리뽑겠다는 검찰의 강력한 의지 표명으로 풀이된다. 그 동안 부패 척결과 경제파장 사이에 고민을 하던 검찰이 이날 부패고리 차단으로 선회한 것은 불법 선거자금을 뿌리뽑지 않고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은 물론 수사과정에서 비자금을 일부러 추적하지는 않기로 하는 등 경제파장을 최소화 하기로 했다.
◇불법 자금 모두 수사한다=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각 당과 각 당 대선후보와 관련된 불법 대선자금의 규모와 사용처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각 정당 관계자는 물론이고 대통령 측근의 비리에 대해서도 엄정 수사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안 검사장은 “SK 수사를 하면서 그 외 기업의 불법자금도 부분적으로 포착돼 그 동안 고민을 해왔다”며 “수사확대로 인해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형평성을 감안해 전체 수사가 불가피했다”고 수사확대 배경을 설명했다.
이 때문에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재계의 기대와는 달리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검찰이 부장검사 1명과 검사 2∼3명을 추가로 보강, 현재 중수 1, 2과를 중심으로 한 현 수사팀을 일선 수사검사만 14∼15명에 달하는 대규모 수사팀으로 확대 편성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안 검사장은 “정당간 형평성을 감안해 수사를 하다 보면 수사가 다소 길어질 수도 있다”고 말해 장기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수사 순서와 관련해서는 안 검사장은 “정당을 우선 수사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며 대선자금 공여자인 기업을 먼저 수사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혀 조만간 관련 기업 임직원들을 소환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기업수사 어디까지 하나= 그 동안 수사확대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검찰이 `제한적 전면수사`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최근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고 그간 위축됐던 내수시장도 내년부터 풀린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다 정경유착의 근절이 결국 기업에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기업에 무작정 칼날을 들이대기에는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충격이 커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일단은 불법 대선자금의 단서가 어느 정도 드러난 SKㆍ삼성ㆍLGㆍ현대차ㆍ롯데 등 5대 그룹과 두산, 풍산 등 일부 기업들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검찰은 이르면 이번 주부터 이들 기업의 자금담당 임원들을 소환,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기업의 비자금 부분에 대해 일부러 `사정의 칼`을 들이대지는 않기로 한 것도 경제적 파장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비자금 수사를 위해서는 계좌추적과 압수수색 등이 불가피해 이럴 경우 기업활동을 상당히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검찰은 이런 점을 감안해 기업 관계자들을 소환하거나 압수수색을 하더라도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는 등 기업활동에 위축이 없도록 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해당 기업의 자발적인 수사 협조를 위해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해 자진신고를 할 경우는 법이 허용된 한도 내에서 처벌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몇몇 기업에 국한된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단서가 포착되면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언제든 수사를 한다는 방침이어서 그 끝을 쉽사리 단정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오철수기자 cso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