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컬처프론티어] 김선정 독립 큐레이터 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창의성은 미래의 힘… 작가들의 '꿈터' 만들어주고 싶어"


김우중의 딸… 총수의 부인… 재벌가 여인 고정관념 깨고
새 형식의 왕성한 전시 기획… '한국 미술 구심점'으로 불려
"미술 작품 결과물보다는 작가·관객과 소통 더 중요
한국도 미디어아트센터 필요 亞순회 미술행사 열고 싶어"
그는 언제나 깊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누구를 만나건 드러나는, 몸에 밴 겸양이다. 재벌가의 딸(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외동딸)로 자라 기업 총수의 아내(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부인)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김선정(46ㆍ사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다. 자가용도 없고, 걷고 뛸 일이 많아 편한 운동화를 즐겨 신는다. 그러나 전시를 준비하는 그는 단호하다. 전시 주제와 방향성에 관해서는 특히 더 엄격하고 철저하다.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의 구심점'이라 불릴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그의 이런 면들은 흔히 개인 컬렉션 수집에만 연연하는 '재벌가의 여인'에게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라 더욱 특별하다. ◇예술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삶="특별히 예술을 좋아했던 건 아닌데 미술을 가까이하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있었어요. 어머니(정희자 아트선재센터 관장)가 워낙 전시 보러다니기를 좋아하셔서 자주 같이 다녔죠. 지금은 유명ㆍ원로가 된 작가들도 종종 집에 오셨고요. 예원학교ㆍ서울예고를 나와 이화여대 서양화과에 입학했는데, 작가가 될 재주는 없었던 것 같아요. " 태생적 배경은 김 교수에게 예술적 자양분을 제공해준 동시에 '실력이 배경에 묻히는' 억울함도 안겨줬다. 그래서 그는 더 성실했고 더 악착같이 일했다. 결정적 전환점은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을 만나고부터다. 1991년 미국 미시간주 크랜브룩 미술대학원 졸업 후 백남준의 소개로 뉴욕 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 인턴십을 하게 됐고 그 때 만난 동료 큐레이터와 작가들이 그의 막강한 국내외 '인적 네트워크'의 기반이 됐다. "백남준 선생님은 '여기에 가 봐라' '이 사람을 만나라' 하시면서 참 많은 것들을 소개해 주셨는데 그 때만 해도 '나한테 왜 그러실까' 갸웃했죠. 자신의 개인전을 준비하시던 백 선생님은 어떤 전시가 좋은지, 왜 심포지움이 필요한지를 말씀해 주셨어요. 당시 백남준의 어시스턴트가 지금 세계적 거장이 된 빌 비올라고, 그 시절에 만난 작가가 박이소ㆍ마이클 주 같은 분이었죠. " ◇치열하게 찾아낸 나의 길=1993년 이후 채 10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그는 60개 가까운 전시를 기획했다.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의 전시기획 총괄, 전시기획사 '스페이스 포 컨템포러리아트(사무소)'의 자문을 비롯해 새로운 형식의 예술축제인 '플랫폼'을 신설해 운영 중이며 지난해 미국 LA카운티미술관과 휴스턴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한국 현대미술전, 대림미술관의 '컬렉션 전' 등이 그가 기획한 전시들이다. 한진해운의 양현미술상과 명품브랜드 에르메스의 에르메스미술상의 자문을 맡아 기틀을 잡게 했고 경방, 하이트 등의 기업 아트프로젝트 컨설팅도 했다.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커미셔너, 2010년에는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미디어시티 서울) 전시총감독에 이어 최근에는 내년에 열릴 '광주비엔날레 2012'의 공동예술감독이자 독일 '카셀도큐멘타 13'의 기획팀원으로 선정됐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게다가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들의 엄마다. 일주일에 사흘은 강의를 나가야 해 수업이 화ㆍ수ㆍ목이면 해외 출장은 금ㆍ토ㆍ일로 쪼개 쓴다. "휴가 때 가족여행을 가면 미술관ㆍ박물관도 다니곤 하는데 가족들이 '엄마, 여보 다녀와. 우리는 쉴게'라고 하는 걸 보면 '엄마를 미술에 뺏겼다'는 반발인 것 같기도 해요." ◇어렵지만 이루고 싶은 꿈=그는 늘 새로운 전시를 시도한다. 1995년 아트선재센터 자리에 있던 한옥집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연 '싹'전은 파격이었고 '김선정'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일본식 정원이 있는 한옥이 양옥 건물과 맞닿은 오묘한 공간에 맞춰 작가들이 전시를 준비했는데 장소와 예술의 교류에 대한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미술의 결과물보다는 제작 과정이나 작품과의 교류, 관객과의 소통에 더 큰 관심을 두고 함께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아트에 대한 애착도 크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일반인들에게 미디어아트는 단순한 이미지에 불과했지만 요즘 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많아진 덕분인지 한 전시에 두세번씩 방문해 오랜 시간을 두고 관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김 교수는 뉴욕에 있는 비영리 미디어아트 보존ㆍ배급사인 EAI와 파리 퐁피두센터의 미디어센터를 거론하며 "한국에도 미디어아트 작품을 관리하는 도서관 같은 기관이 있어야 찾아보고 연구할 수 있고 소장을 원하더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가들의 '창조적 요람'을 제공하고 싶은 꿈도 확고하다. "화랑은 판매를 위한 작품을 해야 하는 곳, 대형미술관은 작가들의 활동을 '종합정리'하는 곳이라면 저나 아트선재센터는 작가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창조적이고 실험적 프로젝트를 위해 쓰이고 싶어요. 전시 못지않게 워크샵과 교육에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김 교수는 또 "아시아 현대미술이 서구를 모델로 발전했다면 이제는 아시아인들이 아시아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행사를 마련하고 싶다"면서 "동아시아와 베트남ㆍ인도까지 아울러 젊은 작가나 큐레이터가 서로 만날 수 있는 학교이자 장(場)인 아시아 순회 미술행사를 열어 아시아 미술의 위상을 높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일찍이 40대 미만 젊은 작가에 집중했고 한국 미술계에 활력을 제공했다. "한국작가들 정말 잘하고 있습니다. 구겐하임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는 이우환 선생은 물론이고 내년에 일본 히로시마ㆍ가나자와에서 개인전을 열 서도호 씨, 내년 모리미술관 전시를 앞둔 이불 씨까지. 한국의 복잡한 사회현상과 일제, 분단, 급격한 산업화 등 많은 것들이 작가들의 의식세계에 자양분이 되었죠. 다만 젊은 작가들은 이름을 빨리 알리고 싶은 다급함이 있더라도 좀 더 차분하게 천천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끝으로 김 교수에게 예술을 통한 창조적 경영을 물었다. "여태까지는 우리가 경영을 얘기할 때효율성을 많이 따졌는데 창의성은 효율성과 꼭 일치하지는 않죠. 당장의 효율성이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창의성은 예상치 못한 미래의 성공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이제 허황한 듯 하거나 현실화가 어렵거나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시도해보는 과정이 중요한 때라고 봅니다. '실패 아니면 성공'의 이분법이 아니라 다양성의 측면에서 성공 그 이상으로 넘어서야 하는 시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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