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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국내 개봉했던 영화 '로봇'의 주요인물로 나오는 바시가란 박사는 인간의 형상을 한 휴머노이드 로봇 '치티'를 개발한다. 인간을 뛰어넘는 힘과 능력을 겸비했지만 군용으로는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자 박사는 고심 끝에 감정 인식 프로그램을 로봇에 이식한다. 그러나 실제 인간처럼 삶의 희로애락을 알게 된 치티는 절실하게 사랑을 갈구하며 박사의 약혼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이 작품에서 보듯 로봇을 소재로 다룬 대다수 SF영화나 소설에는 사람과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할 뿐 아니라 감정까지 지닌 '휴머노이드 로봇'이 주로 등장하지만 현재 로봇산업의 수준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단계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로봇 시장은 진화의 주기에 따라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 우선 단순·반복 작업에 사용되는 자동화 로봇이 1세대라면 청소용 로봇과 장난감 로봇, 고가의 군사용·연구개발(R&D)용 로봇이 2세대에 해당한다. 마지막 3세대가 바로 대중문화에서 흔히 보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라고 할 수 있으며 지금의 세계 로봇 시장은 2세대를 지나 3세대의 초입에 들어선 상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역할의 측면에서 보면 격리된 채 단순한 도구로 이용된 기존 로봇에서 인간과 함께 일하며 생활을 보조해주는 개념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로봇시장 9년 새 12배 급증=한국로봇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기준으로 세계 로봇 시장 규모는 133억달러(약 14조1,778억원, 생산액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조업용 로봇과 가사를 돕는 서비스용 로봇이 각각 87억달러, 46억달러 규모다. 2002년 당시 34억5,200만달러에서 불과 10년 만에 4배가량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 셈이다.
조은정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실 연구원은 "오는 2015년까지 세계 시장에서 서비스용 로봇이 222억달러 규모로 성장하면서 전체 시장 규모는 2020년께 1,700억달러 수준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국내 시장의 성장세는 이보다 더 무섭다. 2003년만 해도 1,680억원 수준밖에 되지 않았으나 2012년에는 2조1,327억원으로 12배 이상 급증했다. 제조업용 로봇은 같은 기간 1,190억원에서 1조6,184억원으로 규모가 늘었으며 서비스용 역시 245억원에서 3,314억원으로 크게 확대됐다.
산업용 로봇 시장의 경우 한국은 전세계에서 2011년 기준 15.4%의 매출 점유율을 기록, 세계 시장 1위인 일본(16.8%)을 턱밑까지 바짝 추격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독일 등은 각각 13.6%, 12.4%, 11.8%의 점유율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업체들은 기존 사업영역을 넓혀가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산업용 로봇의 핵심 기술인 로봇보디 설계와 제어기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개발, 센서시스템 응용기술 등을 확보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선박과 해양설비 생산자동화에 필요한 로봇과 자동화장치 약 20종, 106대를 독자 개발해 조선소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1997년에 개발해 현재 현장에서 활용 중인 '단디' 로봇을 개량한 '단디-2' 용접로봇을 이르면 내년 중순부터 사업장에 적용할 계획"이라며 "해양 물량 증가로 인한 대형화의 필요성이 생겨나는 추세에 발 빠르게 대응하려는 취지"라고 소개했다.
정부 역시 로봇 시장이 세계적으로 초기 단계라는 점, 향후 무궁무진한 성장성이 예측된다는 점 등 때문에 국가 차원의 지원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2009~2013년 '1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에 따라 1조3,000억원가량을 투자한 정부는 올해 안에 2014~2018년 2차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지원규모를 대폭 늘릴 방침이다.
◇대기업이 적극 나서야=이 같은 기업들의 활약과 정부 지원에 힘입어 한국은 전세계 로봇 시장에서 빠르게 규모를 확대해가며 성장을 이끌고 있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만만찮다.
우선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편중현상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로봇산업협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기업규모 분포는 중소기업(341개사)이 92.6%로 압도적인 비중을 나타내고 있다. 중견기업(15개사)이 4.1%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기업은 12개사로 3.3%에 불과한 실정이다. 조 연구원은 "조선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현대중공업의 경우 로봇 매출액 비중은 1% 수준밖에 안 된다"며 "자국 시장을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일본·미국·유럽 등은 각 기업의 매출액 비중이 30% 수준에 이른다"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선도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들은 자사의 산업용 로봇을 주로 한국 중소기업이 아닌 해외 업체로부터 수입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국내 로봇 시장의 성장세가 주춤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국 로봇 시장 규모는 2003년 이후 2011년까지는 단 한 번도 내리막길을 걷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의 해외 업체 의존도가 심해지면서 시장규모가 2011년 2조1,464억원에서 2012년 2조1,327억원으로 처음 떨어졌다. 조 연구원은 "한국 대기업들은 대부분 국내 중소기업보다 기술력이 나은 독일이나 일본 업체의 제품을 선호한다"며 "중소기업의 기술력 강화와 대기업의 로봇 산업 진입을 함께 유도하는 국가적 차원의 지원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필요성 점점 커져=앞으로 로봇 시장에서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인간의 생활에 보다 밀접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싸움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 사회는 가사와 실버케어 인력 등의 보조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서비스 로봇에 대한 수요가 점점 커질 것으로 점쳐진다.
또 원전이나 폐기물 현장 등 사람이 기피하는 위험 작업장에 투입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형 산업용 로봇'의 실용화를 놓고 벌이는 글로벌 업체 간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령화 추세에 따라 집안일을 돕거나 간병을 하는 일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쓰이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