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2009 신년 특별인터뷰] <1>조 순 서울대 명예교수

"정부 위기수습 능력 의문… 부실기업은 지원말아야"<br>전세계 보호주의 흐름 강화… 마찰·분쟁 커질것<br>이제라도 수출 의존 줄이고 내수 발판 마련해야<br>4대강 정비사업등 정부 경기부양책 효과 미지수<br>국민들도 잘잘못 따지기 보단 함께 고통 나눠야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이자 한국은행 총재와 경제부총리 등을 지낸 경제관료로서 우리나라 경제사의 큰 획을 그은 조순(81ㆍ사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금의 경제위기를 “사람이 만든 글로벌 지진”이라고 진단하고 “앞으로 몇 년간은 여진으로 인해 매우 어렵고 불확실한 시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경제신문은 2009년 새해를 맞아 경제난국을 극복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경제계의 영향력 있는 주요 인사들과 신년 특별 인터뷰를 기획했다. 그 첫 순서는 명실공히 한국 경제계의 ‘거목’인 조 명예교수다. 충무로의 서울경제신문 본사를 찾은 그는 ‘4대강 살리기’ 등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안목 부재에 일침을 가하는 한편으로 국민들에게 “잘못을 따지기보다는 함께 고통을 나누고 지금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인지를 생각하기 바란다”며 고통분담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나갈 것을 호소했다. -최근 경제상황이 많이 힘듭니다. 내년에는 더 어려워진다는 관측이 많은데 어떻게 보는지요. ▦지금은 한마디로 불확실성이 강한 때입니다. 저는 이번 위기를 ‘사람이 만든 글로벌 지진’이라고 표현하는데 지진이 나면 여진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경제가 앞으로 V자형으로 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경제도 내부적인 문제뿐 아니라 이 같은 대외적 분위기로 몇 년간은 매우 어렵고 불확실한 시기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봅니다. -지금 가장 궁금한 것은 이번 경기하강이 언제쯤 그치고 앞으로 완만하게라도 U턴이 가능할지 여부인데요. ▦지금 추세로 보면 올해는 미국을 포함해 대체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는 2010년에는 경기가 나아지고 경제가 다소 회복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사실 이렇게 큰 지진 뒤에 경제가 쉽게 올라갈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너무 운이 좋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지금은 미국이 금리를 0%로 낮추고 선진국들이 이에 뒤따르면서 전세계에서 엄청난 홍수와도 같은 유동성이 잠겨 있는 상태입니다. 역사상 유례없던 이 같은 상황이 앞으로 어떤 작용을 할지 지금으로서는 매우 불확실합니다. 언제까지 이런 불황이 지속될지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1년에서 1년반 뒤부터는 경제가 점차 나아지기 시작해 위기를 극복하기를 희망해봅니다. -유동성 거품 때문에 발생한 위기를 과잉 유동성으로 막는 형국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지금처럼 구제금융, 즉 잘못하는 회사를 구제해주는 베일아웃(bailout)을 미국과 유럽ㆍ일본 등 세계 각국이 전반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지금은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 시기인데 옛날 방식대로 자금을 지원해 구제해주고 유동성이 넘쳐 흐르도록 공급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정부가 구제금융뿐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진 부분을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습니다. 한 나라가 구제금융을 실행하는 것은 괜찮지만 전세계적으로 이뤄진다면 또 하나의 큰 지진을 야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미국이 단 수개월 만에 4% 수준의 금리를 0%로 낮춘 역동적인 정책 수행에 대해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이것이 과연 옳은 결과를 가져올지는 의문입니다. 지금의 위기는 과거 20년간 쌓여왔던 문제가 터진 결과라고 봐야 합니다. 개방화와 자유화ㆍ민영화ㆍ작은정부라는 미국 주도하의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은 일단 무너진 상태이고 그래서 정부가 경제를 수습하는 일선에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정부가 그렇게 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민간과 정부가 쌍두마차처럼 각자 제 몫을 해야 자유시장이 효력을 발휘하는데 한쪽이 무너진 상황에서 과연 구출하러 온 정부가 그럴 만한 식견과 능력을 갖췄는지가 미지수여서 걱정됩니다. -사실 우리 정부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국내 경제에까지 파괴력을 미칠지는 몰랐던 것 같은데요. 일련의 위기상황에서 정부의 대처능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리 정부뿐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의 정부도 몰랐다고 봐야겠지요. 큰 지진이 일어나자 전세계가 놀라 우왕좌왕하는 상황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정부는 과거 15년간에 걸쳐 활기가 약해진 경제를 인수 받았는데도 처음부터 낙관적인 입장이었습니다. 펀더멘털이 좋다고 믿고 있던 와중에 경제위기가 터진 것이지요. 전세계 정부가 그랬듯이 우리 정부도 어떻게 넓고 긴 안목으로 방향을 설정해야 할지 그 해답을 아직 확실하게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언급도 있었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대비해야 하겠습니까. ▦불확실성이 많아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정부가 전면에 나선 상태이고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부의 책임은 우선 실업을 구제하는 일입니다. 미국의 경우 엄청난 경상적자와 무역적자 해소도 급선무입니다. 이를 해소하지 않고는 달러화 가치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세계는 싫든, 좋든 실질적인 보호무역주의로 흘러갈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주의(내셔널리즘)가 많은 작용을 하면서 국제 간 마찰과 분쟁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앞으로 나타나게 될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앞으로 어려운 시대가 예고되는 셈이네요. ▦우리는 외환위기 이후 한꺼번에 개방이 이뤄졌습니다. 마치 방파제 없는 항구와도 같았지요. 방파제 없는 경제는 안정될 수 없습니다. 특히 한국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경제인데 더 이상 수출 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제는 힘들더라도 내수산업의 발판을 마련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수출 쪽으로 모든 자원이 들어가버린 만큼 지금부터라도 내수기반을 살리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미국 경제가 약화되면서 달러 패권이 어떻게 될지, 세계 통화전쟁의 향방도 궁금한데요. ▦미국이 앞으로 잘하면 달러화의 위상도 유지되겠지만 지금 같은 상태에 머문다면 리더십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경상수지가 악화되면 달러화 가치는 계속 떨어지고 그런 화폐가 기축통화 역할을 해낼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경우 머니게임에 차질이 생겨 국제관계도 덜 부드럽게 될 것입니다. 다만 지금처럼 일극주의로 갈 수는 없더라도 다극주의로 접점을 찾아 국제적인 평화는 유지되리라 봅니다. -지난해 말 정부가 경기추락을 막기 위한 한국판 뉴딜정책으로 4대강 정비사업 등을 발표했는데요. 한국판 뉴딜을 비롯한 정부의 경기부양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정부로서는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일 것입니다.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고용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데 4대강 정비산업이 과연 얼마나 고용에 보탬이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사실 재정정책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효력이 발휘되지 않거든요. 재정만 투입하면 고용이 늘어난다는 것은 반드시 타당한 가정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또 고용증대를 위해 건설사업에 너무 의존할 경우 과잉공급으로 집값을 떨어뜨려 서브프라임 같은 사태를 야기할 수도 있지요. 정부는 지금의 집값 부양이 논리적으로 맞는 정책인지, 4대강 외 지역까지 골고루 살릴 방법은 없는지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정부 정책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이 중요해요. 국민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한다고 경제가 제대로 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내년의 심각한 고용사정과 일자리 창출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정부는 간접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4대강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일자리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큰 기대는 하기 어렵겠습니다. 이제는 각 기업마다 직원들이나 경영자 모두가 이익이 떨어지면 봉급을 덜 받는 식으로 합심해야 합니다. 기업이 존폐 위기에 처했는데 자기 이익만 챙겨서는 안 되지요. 그것이 지난 193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뉴딜정책의 방식이었는데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강한 미국 국민들도 그때는 서로 협력해 고통을 나누는 방향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국민이 정신적으로 쇄신하지 않으면 난국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각자 내 몫만 챙기기에는 어려운 세상이 왔습니다. -지금과 같은 위기시에는 특히 리더십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데요. 현 정부와 경제팀의 리더십을 평가하신다면. ▦리더십에는 ‘나를 따르라’ 식의 독재형 리더십도 있지만 ‘같이 가자’는 식의 설득형ㆍ민주주의형 리더십도 있습니다. 이 중에서 중요한 것은 후자입니다. 리더는 따라오는 사람들과 가까워져야 하고, 그러려면 서로 간의 이해가 성립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 점이 부족합니다. 지도자와 국민이 가까워지고 지도자가 국민을 진정으로 위한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이 피부로 느껴야 해요. 국민이 의심하고 신뢰하지 않는 리더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리더십은 국민의 믿음을 얻는 것이지, 큰 소리를 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에게 당부 또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지금 누구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따지기 시작하면 이 나라는 살아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누구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기여했다고 생각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이 무엇인지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절망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고통이 있으면 참아내고 근검절약해야 합니다. 세상은 노력하는 사람을 알아준다는 사실을 믿고 우리 국민 모두가 스스로를 믿고 운명을 개척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순 명예교수는
한국경제 '큰 산'… 정운찬·박세일등 '조순 학파' 형성 한국 경제의 '큰 산'인 소천(少泉)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갖는 의미는 경제관료로서의 화려한 이력이 아니어도 그에게 배운 제자들의 이름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김승진 한국국제경제학회장(한국외대 교수), 이영선 한림대 총장,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 박세일 서울대 교수, 박원암 홍익대 교수 등 기라성 같은 경제학자들이 그를 은사로 따르며 이른바 '조순학파'의 계보를 형성한 제자들이다. 그뿐 아니다. 지난 1974년에 그가 쓴 '경제학원론'으로 공부한 경제학도들까지 생각한다면 그가 길러낸 제자는 셀 수 없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그가 1967년 캘리포니아 유학생활을 마치고 서울상대 부교수로서 첫 제자로 맞이한 경제학과 66학번 김 회장과 정 전 총장 등은 자타가 공인하는 조 교수의 수제자로 꼽힌다. 조 교수를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표현하는 김 교수는 "선생님은 제일가는 경제학자인 동시에 유학자이자 영문학자"라며 "선생님은 파벌이나 그룹을 형성하는 것은 싫어하시지만 주위에 제자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조순학파'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약 50명에 달하는 이들은 모두 조 교수가 창설한 경제사상연구회를 구성하는 멤버들이기도 하다. 1월 중에는 지난해 팔순을 맞이한 그에 대한 기념작업으로 제자들이 조 교수의 경제학 논문과 에세이ㆍ한시ㆍ붓글씨 등을 엮어 총 7권의 문집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약력> ▦1928년 강원도 강릉 ▦경기고, 서울대 상대 ▦미국 UC버클리 경제학박사 ▦1951~1957년 육사 교관 ▦1967~1988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1988~1990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1992~1993년 한국은행 총재 ▦1995~1997년 초대 서울시 민선시장 ▦1997~1998년 초대 한나라당 총재 ▦2000년 초대 민주국민당 대표 최고위원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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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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