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리빙 앤 조이] 정재영, 열정과 순수의 시선

'마이 캡틴 김대출' 주연 정재영<br>이글거리는 눈빛 뒤에 숨어있는 어눌함<br>"주연이면 어떻고 단역이면 어때요"<br>'실미도' 평양 보내달라며 절규 '동막골' 어리숙한 인민군 역할<br>데뷔 후 첫 '원 톱 주연' 영광 배역만 좋으면 까메오도 OK"

영화계 데뷔 후 인터뷰 요청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는 정재영. 얼마 전 다리를 다쳐 목발 신세를 지면서도 유쾌한 표정을 잃지 않는다.



영화배우 정재영(36)은 항상 관객 마음 한 켠에 잔잔한 동정을 불러 일으킨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평양에 보내달라”며 절규하던 특수대원(실미도)도, 시한부 인생을 사는 3류 야구선수 동치성(아는 여자)도,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차가운 총부리를 내려 놓고 마을 사람들과 어우러진 인민군(웰컴 투 동막골)도 모두 한 줄기에 있다. 어딘가 모르게 어수룩해 보이는 순진함. 영화 속 순박한 모습은 영화 밖이라고 다르지 않다. 배우 데뷔 후 처음으로 영화 ‘마이 캡틴 김대출’에서 원 톱 주연을 맡는 영광을 안았지만, 정작 정재영은 그저 담담하기만 하다. “원 톱이 어딨고 투 톱이 어딨어요? 떼로 나오는 역할이면 또 어때요? 역이 좋으면 단역이건 까메오건 무슨 상관인가요.” 20일 개봉하는 영화 ‘마이 캡틴 김대출’에서 정재영은 경주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맹활약(?)하는 도굴꾼으로 출연한다. 문화재를 장물로 빼돌리는 도둑이지만 정작 동네 아이들에게 애써 훔친 금불상을 잃어버린다. 금불상에 손을 댄 동네 왈패소녀 지민(남지현)과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하는 엉뚱한 소년 병오(김수호)를 어르고 달래 불상을 찾으려 하지만 정작 그가 찾은 건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순수한 마음이다. 이런 저런 소동이 에피소드로 펼쳐지더니 영화 후반부에는 잔잔한 감동도 제법 깔린다. 정재영은 “영화에서 묻어나는 아이들의 순수함에 이끌렸다”고 말한다. 영화 속 두 아이는 모두 어려운 집안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간다.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선한 기운이 가장 와 닿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 탓이었을까. 영화 개봉을 앞두고 유난히 기억에 많이 남는 장면으로 정재영은 다소 엉뚱한 장면들을 꼽는다. 엄동설한 한 겨울에 비를 쫄딱 맞으며 힘들게 찍은 장면보다도 아이들과 함께 시시한 농담을 주고 받는 장면이 더 애착이 간다. “영화엔 아이들의 속 깊은 어른스러운 면이 담겨 있어요. 아이들의 그런 순수함이 시나리오를 잃으면서도 가슴에 와 닿았죠.” ‘…김대출’도 그렇지만 전작 ‘나의 결혼 원정기’를 비롯해 그가 출연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는 어딘가 모르게 어수룩하고 순진하면 면을 갖고 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사랑이 고픈 사람”이다. 그가 맡은 역엔 그게 나쁜 사람이건 독종이건 모두 밑바탕엔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기운을 갖고 있다. “취향일 수도, 우연일 수도 있어요.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연민하고 동정하려는 생각이 많은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 누구나 그렇지 않아요? 100% 나쁜 놈이 어딨고 100% 좋은 사람은 또 어딨겠어요.” 지금이야 충무로를 주름잡는 톱 스타지만,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주목받는 연기파 배우’일 뿐이었다. 그런 그를 오늘의 자리에 있게 한 영화는 단연 ‘실미도’와 ‘웰컴 투 동막골’. ‘실미도’가 1,100만 관객을, ‘웰컴 투 동막골’이 800만 관객을 동원했으니 대한민국 사람 두 명 중 한 명은 스크린을 통해 그를 만난 셈이다. 그렇다고 딱히 그 두 영화에만 유별난 애착이 있는 건 아니다. “‘실미도’로 관객에게 얼굴은 알렸지만 실제로 그 영화로 내 이름을 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동막골’도 개봉 전까지 그렇게까지 대박이 터질 줄은 꿈에도 몰랐죠. 그 두 작품도, 나머지 작품도 모두 똑같이 애정을 갖고 열심히 연기에 임했을 뿐이에요.” 그가 말하는 영화론은 ‘조금만 더’다. 어떤 작품이던 영화가 요구하는 캐릭터에 자신을 맞추되, 시나리오보다 ‘조금 더’ 녹아든다. 너무 많이 오버해서도, 시나리오에 써 있는 그대로 기계처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막연히 혼자 상상해 연기하지 않을 뿐”이다. 정재영하면 실과 바늘처럼 떠올려지는 이가 바로 장 진 감독이다. ‘감독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 등 장 진 감독의 초기 영화에 이름을 올리면서 충무로에서 서서히 주가를 올린 그다. 그의 출세작 ‘웰컴 투 동막골’도, 현재 촬영 중인 ‘거룩한 계보’도 모두 장 진 감독이 기획하거나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흔히 충무로에서 말하는 ‘장 진 사단’이라는 말은 그에겐 별로 탐탁치 않다. “단지 감독이 괜찮은 배우에게 기회를 주고 배우는 그 기회를 십 분 활용할 뿐이에요. 서로 마음이 맞고 편하니까 좋은 관계에서 많은 작품을 할 뿐이지, 누가 누굴 키우고 사단을 꾸린다는 건 말이 안 되요. 정으로, 친하다고 수십 억이 들어가는 영화에 그냥 출연시키는 감독이 어딨겠어요?” 배우로 데뷔한 이후에 요즘처럼 인터뷰를 많이 하는 때가 없다는 정재영. 하지만 “이번 주에 개봉하는 한국 영화가 ‘…김대출’ 밖에 없어서…”라는 말로 상한가를 치는 자신의 주가를 두고 웃어 넘긴다. “1년에 할 말을 일 주일 만에 다 하고 있다”는 그는 얼마 전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다음 영화 ‘거룩한 계보’ 촬영 생각에 벌써부터 분주하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우문에 그는 당연한 ‘현답’으로 받아친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밥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멋있어 보이죠? 그래봤자 그냥 오래오래 배우노릇 하고 싶다는 말이에요. 이 말 했다 저 말 했다 말만 바꿔하는 거죠 뭐.”(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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