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요초대석] 전철환 공적자금 관리위원장

대담 김희중 경제부장 jjkim@sed.co.kr “우리경제가 현재의 성장률을 지속한다면 현재 25년을 잡고 있는 공적자금 상환기간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공적자금이 마치 정부돈을 퍼주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으나, 공적자금은 금융을 정상화시켜 우리 경제에 활력을 되찾게 하는 데 있습니다. 오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을 새로 맡은 전철환 한국은행 고문은 공적자금상환에 대해 이같이 말하고, 공적자금에 대한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전 위원장은 조흥은행 매각이 현 정부에서 이뤄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제3자에 대한 평가 등 일정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현 정부에서 마무리짓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예상했다. 개혁적인 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 전 위원장은 새 정부의 개혁방향에 대해 “단절적인 개혁보다는 진화적 발전을 추구하는게 바람직하다”며 “개혁에 대해 기득권층이 반발하는 것보다는 변화에 대해 순응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소 부담스럽다는 공적자금관리위원장 자리를 맡으셨습니다. ▲아마도 제가 민간위원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고 우리 사회가 연장자를 앞세우다 보니 위원장으로 선출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회의 때 사회자 역할을 할 뿐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8명 가운데 1명일 뿐입니다. 공적자금이 국민 부담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앞으로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결국은 예상대로 신한지주가 조흥은행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됐습니다. ▲공자위 전체회의에서 표결을 통해 신한지주를 선정했습니다. 인수가격은 물론 인수 후 경영계획이 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단 매각가격에 논란이 없도록 제3자에 조흥은행에 대한 가치 평가를 의뢰하고 이를 협상과정에 반영하도록 했습니다. 두 은행간 합병이 대응하게 이뤄질 것, `조흥`브랜드를 계속 활용할 것 등도 함께 요구했습니다. -본계약이 다음 달 25일 대통령 취임식까지 이뤄질 수 있겠습니까. ▲(웃으며)그것은 장담할 수 없지요.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와 신한지주 양측간의 협상에 달려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양해각서(MOU)가 체결되면 중요한 결정은 모두 끝나게 됩니다.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만나 공자위의 독립성을 위해 조직을 총리실 산하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요.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감독기구를 대체하는 기구를 만든다는 것은 정부기구만 늘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공적자금 관리가 도저히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게다가 공적자금 투입 등 중대한 의사결정을 이미 다 했고 회수체제로 전환했습니다.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기간을 25년으로 잡았습니다. 예상대로 잘 되겠습니까. ▲이미 투입된 공적자금을 예상보다 더 빨리 회수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경제상황이 뒷받침해줘야겠지요. 기업과 금융업계의 수익성이 개선되면 공적자금 상환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봅니다. 현재로서는 새로운 부실이 누적돼 금융중개기능이 다시 마비되거나 갑자기 위험한 상황까지 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공적자금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공적자금에 대해 국민들이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우선 공적자금 절대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또 공적자금의 투입 이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다 회수속도도 빠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적자금 투입과 회수는 일반 국민들이 충분히 이해하기 힘든 전문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물론 언론계와 학계의 노력이 더욱 필요합니다. -화제를 경제로 바꾸겠습니다. 올해 세계경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이라크전쟁, 북핵문제 등 어두운 소식이 많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낙관적인 상황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더구나 외생적 상황은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중국경제가 괜찮다고 하지만 석유수급문제가 심각해지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라고 세계적인 불확실성 속에서 독야청청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새 정부는 잠재성장률을 7%로 끌어올리겠다고 주장합니다. 주요 기관들은 올해 우리 경제가 5%대의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세계경제가 어렵지만 5%대의 성장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첫째 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경제체질이 개선됐고 삼성 등 대기업들이 지난해 큰 폭의 흑자를 내서 현금보유량을 늘렸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보유한 현금으로 설비투자에 나설 여력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내수중심의 기업들입니다. 가계부실로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12%(250만명)가 벼랑 끝에 몰린 만큼 개인워크아웃 등을 통해 소비수요가 감소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당선자가 말하는 잠재성장률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5년 혹은 10년 뒤까지 우리나라가 자동차, 선박, 철강으로만 버티기는 힘듭니다.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동북아허브국가로 탈바꿈 해야 하는 것도 절박한 문제입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 틀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아직 인수위는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다음 달 취임식까지 틀을 짜서 발표하면 새 정부가 공약으로 내건 `빈부격차감소` `저소득층 경제활동유도` 등에 대한 정책이 나올 겁니다. 시장경제체제 안에서 빈부격차를 줄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장경제 자체가 효율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이죠.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하위계층의 소득수준을 끌어올리는 한편 저소득층의 원활한 경제활동을 위해 교육, 직업훈련, 주거환경개선 등 실효성있는 정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새 정부가 `가진 자들의 재산을 빼앗는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정당하게 쌓은 부에 대해 탓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불공정거래, 탈세 등을 통해 편법으로 부자가 됐다면 일반 대중들의 `불편한 정서`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새 정부가 이 같은 정서를 등에 업고 부유층을 압박하진 않을 겁니다. 예를 들어 상속증여세 포괄주의의 경우 포괄주의가 아니면 오히려 상속이나 증여를 정확하게 할 수 없습니다. 항목별로 열거하다 보니 오히려 더 법을 개정할 때마다 거센 저항에 부딪혀야 합니다. 해당되는 사람들이 볼 때 당연히 `신세(新稅)는 악세(惡稅)`입니다. 더 많은 세금은 정당성 여부를 떠나 거부감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새 정부의 개혁정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개혁도 크게 보면 `정상으로의 회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새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개혁을 강조하다 흐지부지되는 적이 많았는데요. ▲개혁이란 말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정치ㆍ경제ㆍ사회는 끊임없이 변합니다. 이 가운데 `진화적 발전`은 연속적인 변화이고 `혁신적 발전`은 단절적인 변화입니다. 진화적 발전이라면 굳이 `개혁`이란 말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후퇴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기득권층의 입장에서는 새로 등장한 인물이 그의 철학을 실천하려는 과정을 바라보며 불안함과 불편함을 느낄 수 도 있겠지요. -금리는 떨어지고 채권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갑니다. 올해 기업의 투자가 되살아 날 지도 불확실합니다. 올해 우리 경제는 괜찮겠습니까. ▲일본처럼 실질적으로 네거티브 금리(마이너스 금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그렇게 되진 않을 겁니다. 우리 금융시장은 이제 일본이 아닌 미국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주식시장은 완전히 미국 월가와 같이 움직이지 않습니까. 현재 금융자산이 축적된 반면 실물투자가 활발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여기에다 주가마저 떨어지면서 채권의 인기가 높아질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한국은행 전망에 따르면 하반기에는 경기가 나아질 전망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빠르면 2ㆍ4분기부터도 가능합니다. 외생적 요소만 걷히면 우리나라 경제는 올해 뚜렷한 회복세를 보일 겁니다. ■ 내가 본 전철환 공적자금관리위원장 - 문학모 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피사체가 너무 크면 카메라는 무용지물이다. 전철환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은 한그루 거목과 같아 필자의 좁은 카메라 앵글로는 그의 참모습을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없음을 느낀다. 전 위원장의 모습은 왜 이처럼 크게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전 위원장이 필자와 같은 보통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뒤따를 수 없는 바르고 큰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라. 많은 사람들이 현세적 명리와 영달만을 좇는 현실에서 그는 학자로, 교육자로, 한국은행 총재로서 지조와 소신을 지키는 선비정신의 길을 한눈 팔지 않고 걸어왔다. 첫째 전 위원장은 `경제학은 어떻게 해야 나라경제를 제대로 세우고 백성들을 이롭게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학문에 정진해 온 경제학자다. 탁월한 통찰력과 논리적 현실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경제의 성장과 위기극복방안, 경제민주화 과제 등을 찾기 위해 고민해 온 그의 태도에서 우리는 구도자적 학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둘째 전 위원장은 가슴이 따뜻한 휴머니스트다.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은 그가 교육에 일생을 바치도록 한 원동력이 돼왔고 제자 기르는 일을 저서 남기는 일과 함께 인생의 가장 큰 보람으로 삼는 바탕이 되었다고 믿는다. 제자들이나 부하직원들에게 아낌없이 애정을 쏟는 전 위원장의 모습에서 우리는 고매한 참 스승의 모습을 본다. 셋째 정의실현과 민주주의 기본정신을 지키기 위한 전 위원장의 투철한 사명감과 정열에서 우리는 바르게 행동하는 지성의 모습을 찾는다. 암울했던 군사정부 시절 심한 고초를 치르기도 했던 전 위원장은 바른 길이 아니면 가지 않고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늘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넓은 포용력과 열린 가슴을 갖고 있다. 그의 이런 모습은 한 가족을 이끌어가는 큰 형의 모습이다. 지금까지 전 위원장을 선배라기보다는 큰 스승으로 생각해 왔던 필자로서는 앞으로도 전 위원장이 우리 사회의 앞길을 오래오래 밝혀주는 큰 등불이 되어줄 것으로 믿는다. ■발자취 전철환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은 한국은행 총재로서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는데 기여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98년3월 한국은행 총재로 취임한 후 4년간 봉직하면서 `물가안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뿐만 아니라 외환보유고 확충 등을 통해 우리 경제의 체질을 튼튼하게 만들었다. 전 위원장은 38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전주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행정과(12회)에 합격한 후 13년간 경제기획원, 교통부, 중화학공업기획단, 무임소장관실 등을 거치며 경제관료로도 일했다. 이 기간중 영국 맨체스터대학에 유학, 경제학 석사학위를 땄다. 76년 충남대교수로 부임하면서 관가를 떠나 경제학자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83년과 89년 두 번에 걸쳐 금융통화운영위원을 지냈고 95년에는 한국경제발전학회장을 맡아 한국경제의 분배문제를 개선하는 방법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구축했다. 경실련 고문을 맡으며 현실 참여적인 활동도 활발하게 이어갔다. 98년 한은 총재로 취임한 후 고금리 및 신용경색 문제를 소신 있게 차근차근 해결해 나갔다. 최저 40억 달러 수준에 불과했던 외환보유고를 1,000억 달러 수준까지 쌓았고 살인적인 금리와 물가도 다시 안정적인 수준으로 돌려놓았다. 4년 임기를 채운 그는 한국은행 임직원으로부터 행운의 열쇠를, 출입기자들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한국은행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그는 처음 공적자금관리위원장 제안을 받았을 때 몇 달간 정중히 거절했으나 정부의 거듭된 부탁에 중임을 다시 맡았다. 한은 총재로 재직하면서 휴일에는 직접 프라이드를 몰고 다녀 `프라이드 총재`라고 불릴 만큼 서민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또 강의하듯 논리정연하게 이야기를 풀어내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푸근한 느낌을 준다. 그의 좌우명은 `노동신성(勞動神聖)`. 바로 일을 하지 않으면 먹을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정리=이연선기자 bluedas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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