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파이낸셜 포커스] KB 위기 속 직원들의 감동스토리

유학 앞두고 "사태 진정되면 퇴사"

"힘들 때 도와야" 출산휴가도 미뤄

금융가"KB의 힘 보여줘"


경기도 소재 국민은행의 출장소장 김호성(57·가명)씨. 그는 조만간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는 '노년 은행원'이다. 여느 은행원들 같으면 말 그대로 평온한 마지막 직장생활을 즐길 법한데 그의 입술이 최근 갑작스럽게 부르트기 시작했다. 정년을 앞둔 김씨에게 들이닥친 유례없는 연장·주말 근무와 과격한 고객들의 민원제기 등으로 피로가 누적돼 일어난 반응이었다.

밀려드는 카드 재발급·해지 요청 민원을 접수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초췌해져 있었지만 그는 파견 나온 본사 직원의 위로에 오히려 "이런 기회에 나도 끝까지 일을 하는 모습을 보이며 떳떳한 상사이자 가장의 모습으로 임금피크제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도쿄지점 비자금 사건부터 국민주택기금채권 위조·횡령 사건,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BCC)은행 부실, 주택 보증부대출 부당이자 수취, 국민카드 정보 유출, KT ENS 협력업체 외담대 사건 연루까지….

KB금융그룹에는 지난해 말부터 한 금융회사에서 일어났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임영록 회장이나 이건호 국민은행장 모두 최고경영자(CEO)라기보다는 '사고 대책반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연이어 터지는 사고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외 이미지 또한 한없이 추락했다.

하지만 나쁜 일만 계속되라는 법은 없는 것 같다. 이 와중에도 KB 곳곳에는 임직원들이 단결하고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상처 속에서 새살이 보이는 것처럼.


이런 일은 비단 오랜 시간 KB에서 일한 사람들에게서만 보인 것이 아니다. 한 영업점 직원은 유학을 가기 위해 일찌감치 사표를 내고 수리만을 기다렸다. 그 와중에 카드정보 유출 사태가 터졌고 이 은행원은 주변에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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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은행원은 "사표 수리 여부를 떠나 사퇴가 진정될 때까지 돕다가 퇴사하겠다"면서 지점에서 동료 직원들을 위로하며 2주간 쏟아지는 민원인들을 상대해 동료들의 마음을 짠하게 했다.

몰려드는 고객들을 차질 없이 대응하기 위해 창구에 있는 직원들이 점심을 거르는 일을 당연시했다. 이 행장도 정보 유출 이후 지점들을 방문하면서 창구 직원이 한 입 먹다 그대로 남긴 샌드위치를 바라보며 가슴 아파했던 자신 또한 며칠간 점심을 걸렀을 정도다.

여성 은행원들의 희생과 인내는 국민은행 직원들의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해줬다.

임신 중이던 한 직원은 고생하는 직원들을 놔두고 출산 휴가원을 제출할 수 없어 쏟아지는 업무를 처리하다 유산까지 하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하지만 해당 직원은 "내 문제지 회사의 문제가 아니다. 힘들 때 도와야 한다"면서 오히려 조직과 동료 직원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 듣는 이를 숙연하게 했다. 출산 휴가를 다녀와 아직 대기 발령이었던 여직원들도 직전에 일했던 점포를 군말 없이 방문해 밀린 일손을 돕기도 했다.

국민은행의 서로 간의 다독임은 온라인에서도 이어졌다.

인터넷 노조 게시판에는 본사 직원의 파견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글이 줄지어 올라왔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국민은행의 한 임원은 "옆에서 지켜보면서 해당 직원들을 포상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면서 "이 사태를 계기로 국민은행 직원들도 하나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한편으로는 위안이 됐다"고 말했다. 대형 시중은행의 한 고참 간부는 "지난 수년 동안 KB금융에 엄청난 사고들이 연이어 터지고 그룹 전반에 CEO 리스크가 불거져왔지만 그래도 상위 은행의 자리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일선에서 묵묵히 일한 은행원들의 힘이었을 것"이라고 KB의 저력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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