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이스탄불의 병적 갈등 탁월하게 묘사

검은책<br>오르한 파묵 지음, 민음사 펴냄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해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고향 이스탄불의 음울한 영혼을 탐색해 가는 과정에서 문화 충돌과 교차에 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했다"라고 평했다. 오르한 파묵은 이슬람 문화와 정서를 바탕으로 사랑과 죽음, 행복 등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들은 많이 발표했다. 실종된 아내를 찾는 변호사 갈립의 이야기인 '검은책'은 소재 자체만을 보면 다른 소설에 비해 조금 가볍다. 이스탄불의 변호사 갈립은 아내 뤼야가 갑자기 사라지자 그의 행방을 찾는다. 알고 보니 그녀의 의붓 오빠인 유명한 칼럼니스트 제랄도 함께 종적을 감췄다. 제랄의 실종이 뤼야와 연관이 있다고 본 갈립은 제랄의 칼럼을 읽으며 사라진 제랄의 이름으로 대신 칼럼을 써서 뤼야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둘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스탄불 곳곳에 숨겨진 신화, 전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소설 배경인 1980년대 터키의 대중 문화의 모습도 생생하다. 그는 주특기인 다중적 화자 시점을 교묘하게 이용해 인물들의 내적인 고독감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홀수 장은 3인칭 시점으로 서술돼 갈립의 추적과정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짝수 장은 제랄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칼럼으로 이뤄졌다. 각 에피소드들을 씨줄과 날줄 삼아 교묘하게 엮어놓은 그의 글 솜씨는 역시 압권이다. 평범한 소재가 그의 손끝을 거치면 한편의 거대한 서사 담론의 주제로 바뀐다. 탁월한 이야기꾼이란 애칭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는 "거대하고 풍부한 서사를 통해 두 대륙 사이에 놓인 도시 이스탄불의 병적인 갈등을 포착하려 했다"고 말했다. 1998년 나온 그의 최고 히트작 '내 이름은 빨강' 보다 8년 앞서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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