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장문희, 원전 '계속 운전-폐로' 여부, 정치 아닌 기술로만 판단해야

[서경이 만난 사람] 장문희 한국원자력학회장

'수명연장·영구처분'이라는 용어가 안전에 대한 불신 불러

에너지 안보 포트폴리오 차원, 원전 비중 30%까지 늘려야

현장에 답 있는데 탁상공론만… 주민설득 등 소통 노력 필요



"원자력발전소를 계속 운전할 것이냐, 폐로할 것이냐 여부는 원자력안전법에 있는 기술적 기준을 만족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로 결정하면 된다고 봅니다. 기술적으로 판단하면 되는 문제를 경제성과 주민 수용성 등을 거론하며 논란과 갈등을 일으킨 것은 사안을 정치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장문희(64·사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지난 10일 대전광역시 둔산동 사무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월성1호기의 계속 운전은 기술적인 기준으로 볼 때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결정"이라고 말했다. 장 학회장은 최근 논란 속에 수명이 연장된 월성 1호기, 폐로냐 두 번째 수명 연장이냐를 두 달 이내 결정해야 하는 고리 1호기에 대한 얘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계속 운전 승인 과정에서 지적됐던 원전 운영의 경제성과 주민 수용성을 둘러싼 논란은 기술적 쟁점을 다루는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다룰 일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장 학회장이 원전 연구에 뛰어든 때는 1976년. 원자력 연구에 반평생을 바친 그의 입장은 확고했다. 기술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영역에 정치적인 요소가 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사회 이슈가 그렇듯이 원전을 둘러싼 문제 역시 정치적 이해관계나 이념적 논쟁이 개입되면서 불필요한 갈등을 증폭시켜왔다는 것이 장 학회장의 지적이다.


장 학회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원자력 안전진단 기관인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서 수십명의 연구진이 안전성 평가를 했고 월성 1호기는 법에 명시된 기술 기준을 모두 통과했기 때문에 계속 운전 승인과 관련된 안전 논란은 의미가 없다"며 "체르노빌 사고 이후 개선된 격납 용기 안전기술인 R-7마저 충족시켰으면 좋겠지만 그 기준이 없다고 월성1호기의 안전문제가 발생하거나 계속 운전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경제성과 주민 수용성 문제를 논의한 것 자체가 정서적이고 관념적인 요소가 들어간 정치적인 문제"라며 "원안위는 순수하게 원전이 계속 운전하는 데 기술적으로 안전 문제가 없느냐를 판단하는 곳이지 주민의 의견과 경제적인 실익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 학회장은 10년간 원전 추가 운전을 승인하는 용어를 '수명 연장'이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원전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에너지 시스템인 원전에 대해 목숨이 다하면 당연히 죽거나 폐기해야 한다는 '수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장 학회장은 "원전을 이루는 백만개가 넘는 기기·부품 중에 원자력 압력용기와 외부에서 보이는 돔 모양의 격납 용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교체할 수 있다"며 "부품을 교체하고 보완해 100% 성능을 낼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운전을 10년간 계속할 수 있도록 계속 운전 승인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원전이라도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폐로하는 것이고 늙은 원전이라도 문제가 없으면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사용 후 핵연료에 사용되는 '영구 처분'이라는 말도 원자력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최종 처분'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 처분이라는 용어에는 처분하더라도 활용 가능하면 다시 임시·중간저장 시설로 옮겨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장 학회장은 "사용 후 핵연료는 임시저장·중간저장을 하는 과정에서 재활용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거나 재처리해 무기를 만들 수도 있다"며 "영구 처분이라는 용어 때문에 활용이 가능함에도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해야 한다는 의미로 국민들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학회장은 100% 안전한 에너지원은 없다며 안전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술은 불안전한 것을 안전하게 바꿔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원전도 기술적으로 위험 요소를 제거했기 때문에 100%는 아니지만, 충분히 안전하다는 얘기다. 장 학회장은 "자연재해와 항공기 충돌, 고의적 운전 오류 등에 대한 대응은 모두 원전 안전 요건에 명시되어 있고 이는 반드시 설계에 반영돼야 한다"며 "전문가의 입장에서 100%라는 말은 할 수 없지만, 원전은 분명하고 충분히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학회장은 앞으로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기술보다 사람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결국 사람이 만들어낸 사고라고 지적했다. 원전 안전에 대한 개념은 설비 안전에 대한 성능과 신뢰도 중요하지만 원전을 관리하는 조직원들에게 안전 문화가 철저하게 의식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학회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쓰나미에 대한 대응을 소홀히 했던 것이 사고의 실제 원인"이라며 "과거 그 지역에 거대 쓰나미가 왔었다는 역사적인 경고를 무시한 채 도쿄 전력이 쓰나미 방호벽을 낮춰서 만든 것이 사고의 본질"이라고 봤다. 그는 다만 "최근 일어난 사이버 테러와 관련해서는 기술적으로 안전하다 말할 수 없다"며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 부분은 계속 보완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원전이 국가 에너지원에서 얼마나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에너지 안보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적절할까. 우리 정부는 2차 에너지 기본계획에서 2035년까지 국내 원전 비중을 현재 29%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원전 비중이 전체 전력원의 78%를 차지하는 프랑스까지는 아니라도 미국(19%)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장 학회장은 "우리의 주력 에너지원은 석탄·가스·원자력 3가지"라며 "예기치 못한 사태로 다른 전력원을 쓸 수 없다고 가정할 때 석탄과 가스, 원자력을 각각 30% 수준으로 가져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석탄과 가스는 에너지 발전 비용에서 원료가 80~90%를 차지하지만 원자력은 5%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면을 고려해도 30% 수준까지 올려야 한다"고 전했다.

신재생에너지의 현실적인 위치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 학회장은 "2035년까지 풍력과 태양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전체의 11%까지 확보하게 돼 있다"며 "현재 신재생에너지의 60%가 풍력과 태양력이 아닌 폐열을 재활용한 발전에서 나오고 있는데 앞으로 기술적인 진보를 고려해도 달성하기 어려운 수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프랑스와 일본이 왜 주력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을 발전시켰는지 이해해야 한다"며 "우리는 석탄·석유·셰일가스가 풍부하지도 않고 풍력 여건이 좋거나 태양이 작열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 정부가 한국형 중소형 원전인 스마트원전 2기를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지만 과대평가는 금물이라고 장 학회장은 강조했다. 정부의 홍보와 달리 아직 스마트원전의 시장 규모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장 학회장은 "스마트원전은 전력 생산 외에 바닷물 담수화, 격리 지역 독립분산 전원 등 활용도는 높지만 아직은 사우디처럼 인구가 분산된 지역에서만 활용 가능한 원자로"라며 "1년에 20기·200기가 발주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산업계에 큰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은 우리의 스마트원전 기술이 앞서 있지만 미국·일본·프랑스 등 원전 선진국가들이 뛰어들면 바로 따라잡을 수 있고 시장은 곧 레드오션으로 바뀔 수 있다"며 "수출한 원전들을 차질없이 완성해 세계시장에서 우리 기술력과 신뢰를 쌓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장 학회장은 특히 "과거 아랍에미리트(UAE)에 대형원전 4기를 수출했을 때 1년에 80기를 수출하겠다고 계획을 짰지만 추가 수주 실적은 전무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장밋빛 전망으로 시장의 기대를 부풀리기보다는 차근차근 점유율을 높여나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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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학회장은 밀양 송전탑 사건처럼 원전을 둘러싼 지역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책임자들이 직접 현장을 찾아 주민들을 만나고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담당 고위 공무원이나 한국전력 간부들처럼 책상 위에서 원전 정책을 짜는 탁상공론으로는 지역 문제를 절대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세월호 사고 당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몇 개월 동안 팽목항에 머무르며 사고를 진두지휘하고 유족들의 아픔을 보듬었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장 학회장은 "최고위층들이 처음부터 갈등지역을 찾아가 정책의 취지를 충분히 설명했으면 문제가 그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주민들이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결과에 대한 편익과 불이익을 공유하는 소통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He is…

△1952년 경북 구미 △1976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졸업 △1984 미국 MIT 원자력공학 박사 △1976년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원 △1984년 경수로 핵연료사업부 선임연구원 △1996년 원자로공학연구부장 △2004년 신형원자로개발단장·원자로시스템개발본부장 △OECD 원자력기구 운영위원 △2014년 한국원자력학회장



46년 동안 국내 원전기술 토대 다져… 美·UAE 등에 지부도

■ 한국원자력학회는

한국원자력학회는 한국 경제가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던 1969년 설립됐다. 지난 46년 동안 원전이 국내 산업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술적 토대를 제공해온 명실공히 국내 대표 원자력학술단체다. 국내 시장에서 원전기술이 뿌리를 내리고 한국형 원자로가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게 된 데는 원자력학회의 기술 지원이 큰 역할을 해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자력학회 회원은 원자력 관련 분야의 학위 소지자, 연구기관 연구원 등 약 4,100명에 달한다. 미국과 캐나다·일본·프랑스 등 12개국, 15개 원자력학회·기관과 협력 협정을 맺고 있을 만큼 국제적인 공신력도 크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국내 원자력 연구진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과 아랍에미리트(UAE),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각각 해외지부를 두고 있다.

연구 성과물도 꾸준한 증가 추세다. 국내 원자력 학술발표회에 발표되는 논문은 지난 2004년 551개에서 지난해 762개로 10년 동안 200건 넘게 늘었다. 학술대회 참가자는 같은 기간 980명에서 1,600명 수준으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원자력학회는 올해 장학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국가 에너지의 근간인 원자력 관련 학문을 지망하는 젊은 인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장 학회장은 "각종 원전 사고와 비리로 젊은이들은 물론 업계도 자신감이 떨어져 있어 문제"라며 "전국 15개 원자력 관련 학과의 우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원자력산업과 관련한 상도 수여해 업계의 사기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원자력학회는 원전 지역주민들의 갈등을 해소하는 등 사회적인 역할에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장 학회장은 "동해안은 원전 시설이 다른 지역보다 많이 몰려 있어 사회적 갈등이 크다"며 "지역 포럼 등을 만들어 주민들과 소통해 갈등을 줄이고 현장 목소리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대담=김정곤 경제부 차장 mckids@sed.co.kr


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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