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삼성그룹:3/북잉글랜드의 플랙스비공장(한국기업의 21세기 비전)

◎「순발력」무기 EU중장비 시장 돌풍/특수장비 소량주문도 이윤떠나 성실한 납품/굴삭기 등 「반덤핑 벽」 뚫으며 올 300대 판매/“생산성 제고 살길”… 자체 부품조달·모델개발 총력전삼성중공업 플랙스비공장은 중소기업규모이지만 또 하나의 삼성중공업이다. 영국 북잉글랜드 요크근처 해로게이트시의 시골마을 플랙스비는 15세기중반 요크셔가문과 랭카스터가문이 왕권을 놓고 치렀던 장미전쟁의 격전지로 유명한 곳. 여기에 자리잡은 삼성중공업 플랙스비공장은 직원이 80여명에 불과한 새로운 중소기업이라고 현지법인장인 황성조 상무는 정의했다. 플랙스비공장은 삼성중공업의 첫 해외공장. 굴삭기에 대한 유럽의 반덤핑제소를 회피하면서 삼성중공업이 세계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첫 디딤돌로 설립됐다. 삼성중공업 세계화의 첨병으로 세워진 것이다.그러나 플랙스비공장의 경영전략은 삼성중공업 창원공장과 전혀 다르다. 대조직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철저하게 중소기업형의 장점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지난 8월 플랙스비공장은 아일랜드에 특수형 굴삭기 3대를 납품했다. 습지지역의 노천광에서 작업하기 위해 굴삭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통상 9백㎜인 트랙슈를 1천4백㎜로 늘려달라는 주문였다. 이 회사는 고마쓰, 캐터필러, 히다찌 등 유명회사들에게 이같은 주문을 냈지만 소량의 특수형 장비제작은 이윤이 박하다는 이유로 단기간 제작이 힘들다는 답변만 들었다. 삼성중공업 창원공장 역시 거절했다. 플랙스비공장은 그러나 주문사항에 대해 곧바로 오케이라는 답신을 보냈고 8월에 3대를 납품했다. 플랙스비공장의 순발력에 감탄한 이 회사는 추가로 30대를 발주했으며 앞으로 60대를 더 발주할 예정이다. 플랙스비공장의 생존전략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중소기업형의 순발력을 앞세운 스피드보다 강한 무기는 없다는게 플랙스비공장의 철학이다. 플랙스비공장은 그동안 창원공장이 놓쳤던 틈새시장만 제대로 챙겨도 유럽시장의 10%이상을 차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차있다. 창원공장이 거리문제나 대규모 생산라인 때문에 챙길 수없는 소형 다품종시장만 차곡차곡 늘려나가도 충분히 자립할 수있다는 계산이다. 삼성중공업이 해외공장을 물색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4년초부터. 당시 유럽연합의 반덤핑 조치 조짐이 보이는데다 유럽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현지생산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판단였다. 굴삭기공장을 만드는 중공업으로서는 무엇보다도 교통이 편리한 해안가에 위치해야 하고 전력공급이 충분한 입지를 필요로 했다. 입지선정부터 간여했던 박성우 이사대우는 당시 입지선정과정을 「노총각이 신부후보를 고르는 식」이었다고 술회했다. 독일이나 벨기에는 시장과의 거리, 인력의 질등을 감안할때 예쁜 후보이지만 성깔이 만만치않아 다루기 힘들었고 영국이 미모나 성질 모든 점에서 무난한 후보였다는 설명이다. 때마침 플랙스비의 철골가공공장이 매물로 나왔다. 헐항과 티사이드항의 중간지점에 자리잡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인근에 중공업이 발달, 인력을 구하는데도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지역였다. 매물로 나온 공장도 지은지 4년밖에 안된데다 지하 10m, 지상 10m의 큰 규모여서 중공업공장으로 사용하기 적당했다. 플랙스비공장을 인수하자 인근 요크의 철도차량공장인 ABB사가 감원을 시작해 기능공을 수월하게 구할 수있었다. 황상무는 『당시 ABB사나 지역사람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며 ABB출신 기능공을 20여명이나 쉽게 구하는 행운이 따랐다』고 말했다. 부지 5만7천평, 건평 6천평규모의 플랙스비공장에 삼성중공업이 투자한 금액은 1천4백만파운드(한화 약 1백68억원). 95년초부터 플랙스비공장은 굴삭기 생산을 시작해 9월27일 감격적인 1호기를 생산했다. 이어 10월27일 5호기까지 완성, 첫 고객들에게 굴삭기의 열쇠를 넘겨주면서 화려한 준공식을 가졌다. 가동 첫해인 95년에 36대의 굴삭기를 만든 플랙스비공장은 올해 3백여대를 만들고 내년에는 7백대규모를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또 98년에는 굴삭기에 이어 로더의 생산을 시작하고 99년부터는 리프트 트럭까지 만들어 명실상부한 중장비공장으로 자리잡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황상무는 매출액이 6천만파운드(약 7백20억원)규모에 이르는 98년부터는 흑자를 내면서 자립할 수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우선 생산성이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게 황상무의 평가이다. 당초 창원공장의 60%수준을 계획했던 생산성이 1년도 안돼 80%수준까지 올랐고 조만간 창원공장과 비슷한 수준에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품질수준은 오히려 창원공장보다 낫다는게 황상무의 자랑이다. 지금까지 출고된 제품에 대해 한번도 아프터서비스를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굴삭기의 체크포인트는 무려 7백25개. 그러나 이곳 근로자들은 철저하게 매뉴얼에 적혀있는대로만 작업하기 때문에 고장이 거의 없고 한번 실수한 부분을 다시 반복하는 일은 찾아볼 수없었다고 한다. 생산담당인 존 하크니스씨(95년6월 입사)는 『플랙스비공장이 설립당시 사람들을 선택해 채용할 수있는 운이 뒤따라 어느 회사보다 양질의 인력들로 꽉 차있다』며 근로자들이 한결같이 품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초슬림형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경리, 인사 등 필수적인 부분을 제외한 간접부문을 대부분 외부용역에 맡겨 비용지출을 최소화하고 있다. 현재 플랙스비공장의 부품조달은 금액기준으로 창원 50%, 현지 33%, 일본 17%수준. 황상무는 이같은 비율을 97년말께는 현지 65%, 창원 25%, 일본 10%정도로 역전시켜놓을 계획이다. 창원공장에서 조달하는 부품비율은 절대로 25%를 넘지않도록 하고 최대한 현지에서 값싼 부품을 조달하겠다는 계산이다. 황상무는 또 오는 99년에는 유럽고객용 중장비 설계 및 개발까지 플랙스비공장에서 담당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최대한 원가를 절감하면서 고객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제품개발까지 모두 떠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플랙스비공장의 고민은 역시 해외에 진출한 한국기업 대부분이 느끼는 마케팅의 열세. 싼 값을 무기로 내세우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는데 아직도 저가품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해 고생하고 있기는 플랙스비공장도 마찬가지였다. 황상무는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중소기업형 조직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벼운 몸집으로 철저한 서비스의 차별화를 이룸으로써 제값받고 팔 수있는 틈새시장을 적극적으로 파고들겠다는 얘기다. 최소한 유럽 건설현장에서 작업중인 중장비의 10%이상을 삼성브랜드로 채우겠다는 야심이 깔끔한 시골마을 플랙스비에서 싹트고 있었다.<플랙스비(영국)=이세정> ◎인터뷰/황성조 플랙스비공장 대표이사/“고객요구 사전반영제 최대부각… 멀지않아 유럽시장 10%장악 이룩” 삼성중공업 플랙스비공장 대표이사인 황성조 상무는 『플랙스비공장은 삼성중공업의 돌파구』라고 강조했다. 플랙스비공장의 성패가 삼성중공업의 세계시장 공략에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플랙스비공장은 삼성중공업 본사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별도의 중소기업으로 자리잡아 삼성중공업 세계화의 모델을 제시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고 황상무는 털어놓았다. 지난 95년 4월 부임해 6개월만에 시제품을 만들고 준공식을 갖기까지 많은 운이 뒤따랐다고 겸손해하는 황상무는 이제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고 정상을 향한 험난한 길이 시작되었다고 다짐했다. ­현지 인력의 질은 어느 정도인가. 『기능직은 아주 튼튼하다. 플랙스비공장의 경우 때마침 우수한 기능인력들이 많이 쏟아져나온 시점에 설립되어 양질의 인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있었다. 다만 영국의 제조업이 오랫동안 부진하다보니 고급 기술인력은 많지않은데다 높은 임금을 요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한국에 뒤지지 않으면서 인건비는 낮은 편이다.』 ­현재까지 경영성과를 평가한다면. 『마케팅이 다소 부진하지만 생산성이나 품질면에서는 당초 계획을 훨씬 웃도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이곳 근로자들은 철저하게 표준대로 만들기 때문에 조만간 창원공장보다 품질이 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향후 전망은. 『플랙스비공장이 중소기업체질을 계속 유지, 기민한 순발력을 바탕으로 틈새시장을 착실히 확보해나가면 머지않아 유럽시장의 10%이상을 차지할 수있을 것으로 본다. 스피드보다 강한 무기는 없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계속 고객의 요구사항을 즉각 반영하는 사전 서비스를 플랙스비의 최대 강점으로 부각시킬 계획이다. 아프터서비스(사후관리)보다 사전 서비스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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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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