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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2>ㅇㅇ도 하는 커피숍? ㅇㅇ하러 갔는데 커피도 파네!


‘한 골목 건너 커피숍’이란 표현은 이제 옛말이 됐습니다. ‘커피숍 건너 커피숍 그 옆에 또 커피숍’을 집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니 말입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뿐만 아니라 주택가 곳곳에도 작은 카페 골목이 생겨났습니다. ‘비슷한 음료를 비슷한 가격대에 판매하는 데 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무색할 정도로 수많은 예비 창업자들 역시 커피숍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에게 커피는 이미 가장 대중적인 음료로 자리 잡았습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1~9월 생두와 원두 등 조제품을 제외한 커피 수입 중량이 9만9,372톤이라고 합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커피 수입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수입량이 꾸준히 늘어나는 것만 놓고 보면 시장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신호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아니고 하루에 한잔 마시던 고객이 서너 잔씩 마시게 된 것도 아닙니다. 실수요는 크게 늘지 않았는데 수입량만 늘고 있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궁금증을 해결할 실마리는 바리스타 수업을 들으며 나만의 가게를 꿈꾸고 있는 예비 창업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커피 한잔 값을 원가와 비교했을 때 거의 폭리 수준이라는 언론 보도도 한 몫 했을지 모릅니다. 대부분 ‘내가 하는 건 다르다’는 생각으로 커피숍 창업에 도전하지만 결국 남과 다르지 않은 결과만 남기기 쉽습니다. 개인의 노력 부족이 이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고 단정 짓는 것은 가혹한 일입니다. 그보다는 시장 자체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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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생태학의 대가인 해넌(M. Hannan)과 캐롤(G. Carroll) 교수는 경쟁에 관해 재미있는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경쟁 강도와 사멸률은 U자형 관계를 가진다는 ‘밀도의존이론(density dependence theory)’입니다. 일정 정도까지는 경쟁자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사멸률이 낮아지는 정당화 단계(legitimation)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서로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경쟁(competition) 국면으로 전환됩니다. 차리기만 하면 대박은 아니더라도 중박은 보장되던 ‘커피숍 전성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커피숍은 정당화 단계를 지나 경쟁 국면에 진입한 지 오래입니다.

점주들도 이 같은 고강도 경쟁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커피만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략을 실행할 때 간과하기 쉬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차별점이 부각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경쟁단계에 돌입한 조직이 살아남으려면 고유의 특별한 영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특별함을 강조하더라도 고객이 특별하다고 인식하지 않으면 그저 평범한 가게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바로 소비자의 인식이 시장 내 포지션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고객이 우연히 방문한 커피숍에서 ‘어라, 여기서는 강좌도 들을 수 있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강좌는 부가적인 서비스일 뿐 인식을 바꿀만한 특별한 무언가는 되지 못합니다. 주택가에 파고들만큼 커피숍 시장은 초고밀도 경쟁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도 하는 ‘커피숍’이 아니라 뜨개질 강좌나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온 고객에게 커피 한잔의 여유로움까지 선사하는 곳으로 전략을 바꾸면 어떨까요.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가 경쟁의 판도를 뒤흔들 ‘신의 한 수’가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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