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6일] 와이탕이 조약

뉴질랜드에 친지가 있다면 미뤘던 인사라도 건넬 만한 날이다. ‘와이탕이 데이’ 축제로 기분 좋은 날이기 때문이다. 1840년 2월6일, 영국과 원주민 마오리족 추장 46명이 서명한 ‘와이탕이(Waitangi) 조약’을 기리는 국경일인 이날은 현대 뉴질랜드의 출발점이다. 조약의 내용은 세가지. 주권을 영국에 이양하고 마오리족은 토지와 어업권 등 재산을 소유하되 매도할 경우 영국의 허가를 받으며 영국은 마오리족을 보호하고 영국시민이 누리는 권리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조항도 단 3개뿐인 이 조약은 제국주의 식민 역사상 가장 공정한 조약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조약을 맺은 후 영국은 7개월 동안 남섬과 북섬을 돌며 부족장 500명의 사인을 받아냈다. 조약 자체는 평등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원주민들의 토지를 수탈하려던 ‘뉴질랜드 회사’ 등의 탐욕 탓이다. 마오리족은 두 차례 전쟁을 일으키며 반발했으나 유럽산 질병과 총포 앞에 무릎을 꿇었다. 힘을 얻게 된 식민지 총독도 와이탕이 조약을 공공연하게 무시해버렸다. 원주민은 완전히 쫓겨났다. 세련된 식민지 수탈의 도구였던 와이탕이 조약이 국민적 축제일로 자리잡게 된 데는 가해자의 반성과 참회가 깔려 있다. 백인국가를 포기한 후 뉴질랜드는 원주민 박해를 뉘우치며 1974년 와이탕이 조약일을 공식 휴일인 ‘뉴질랜드 데이’로 정했다. 1996년에는 조약 위반을 공식 사과하고 원주민에게 1억7,000만달러와 2억여평의 토지를 돌려줬다. 뉴질랜드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면 사회적 통합의 상징이자 우리의 개천절과 제헌절을 합친 격인 와이탕이 데이를 더욱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이민이나 시민권 심사시 ‘와이탕이 조약’에 대한 테스트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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