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월가 리포트] "부자 증세·금융 규제로 경쟁력 떨어질라" 월가 불안불안

반월가 시위 옹호 블라시오, 차기 뉴욕시장 확실시<br>"두 개의 뉴욕 시대 끝내겠다"… 빈부격차 개선 내세우며 득세<br>금융기관보다 중기 육성 중점… 월가 "정치 희생양 찾기" 반발

빌 드 블라시오 미국 뉴욕시장 민주당 후보가 이달 초 브루클린의 한 유세장에서 지지자를 향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빌 드 블라시오 선거본부 공식 홈페이지


2011년 9월17일 한 무리의 시위대가 뉴욕 맨하튼의 월스트리트로 몰려 들었다. 이른바'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의 시작이었다. 월가의 탐욕과 소득 불평등에 항의하는 이 시위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미 정치권이 금융 규제를 강화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뉴욕시 당국이 불어난 시위대를 막으려 하자 "미 국민들의 절절한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며 제공을 걸고 나선 이가 시민운동가 출신인 빌 드 블라시오 뉴욕시 공익옹호관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 블라시오 공익옹호관은 지난 10일 민주당의 뉴욕 시장 후보로 선출되면서 11월5일 선거에서 차기 시장 자리에 오를 게 확실시되고 있다.


그는 지난 17일에는 월가 시위 2주년을 맞아 "내가 뉴욕시장 후보가 된 것은 월가 시위의 부산물"이라며 "월가 시위의 메시지는 복잡한 듯 보이지만 핵심은 불평등 개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반월가 시위를 적극 옹호하던 인물이 뉴욕시장에 오를 경우 부자 증세, 금융 규제 등에 나설 것으로 보이면서 월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블라시오 후보가 월가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으면서 금융산업의 활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두 개의 뉴욕 시대 끝내겠다"= 최근 미 퀴니피악대의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블라시오 후보 지지율은 66%에 달한다. 공화당 후보인 조셉 로타 전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 회장의 지지율 25%와는 아예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변이 없는 한 마이클 블룸버그 현 시장의 뒤를 이를 게 확실하다는 뜻이다.


두 달전만 하더라도 군소 후보 중의 하나였던 블라시오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민주당의 유력 후보였던 앤서니 위너 전 하원의원이 성추문으로 추락한 가운데 '흑인 아내를 둔 건실한 다문화 가장'이라는 이미지로 인종을 초월해 고른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두 도시 이야기'(tale of two cities)라는 선거 캠페인에서 보듯 뉴욕시의 빈부격차와 소득 불균등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해 이른바'99%'들의 열렬한 환호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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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블라시오 후보는 지난 2011년 변호사 시절 기자회견을 열고 골드만삭스 이사회에 대해 선거 및 로비에 쓴 비용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등 반월가 성향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왔다. 나아가 블라시오 후보는 차기 뉴욕시장이 될 경우 유치원 교육과 방과후 학교 등 공공교육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연소득 50만달러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해 소득세율을 올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또 공공기관의 근로자들에 대해 의료 보험 지원, 세금 감면 등을 통해 연간 3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월가 "경쟁력 떨어질라" 불안감= 무엇보다 월가가 긴장하고 있는 대목은 블라시오 후보가 블룸버그 현 시장과는 달리 금융기관보다는 중소형 기업 육성 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블라시오 후보는 금융기관들이 일자리 창출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과도한 혜택을 받고 있다며 대형 금융기관에 대한 세금우대 조치를 점차 폐지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미 비영리기관인 재정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뉴욕시는 지난 2001년 이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골드만삭스, 메트라이프, 나스닥 등에 대해 연간 30억 달러의 세금 우대조치를 시행 중이다. 블라시오 후보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런던 등과 경쟁하고 있는 금융기관은 근본적으로 여기저기 옮겨가기 쉽다"며 "뉴욕은 물론 미국내 다른 도시의 경제에 특별히 생산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뉴욕시의 소형 기업을 지원하거나 월가 바깥의 기업들의 성장을 돕는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며 "블룸버그 시장의 정책과는 다르지만 현 시대의 역사적 요구에 맞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월가의 금융기업들은 여론의 역풍을 우려해 공개적인 발언은 자제하면서도 '희생양 찾기'라며 반발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뉴욕시 비즈니스리더 모임인 파트너십의 캐시 와일드 회장은 "고소득자의 소득세가 오를 경우 우수 인재를 끌어오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뉴욕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티핑 포인트(갑작스러운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자칫하면 금융기관들의 탈출을 부르면서 글로벌 금융 허브라는 월가의 위상이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보험 회사인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의 로버트 윌룸스타드 전 회장은 "월가의 장점은 글로벌 금융 기업들이 한군데 모여 있다는 점"이라며 "잘못된 정책은 이 같은 모습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몰고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 블라시오 후보가 소득세율을 올리더라도 기업이나 부자들이 각종 수단을 통해 조세 회피에 나서면서 기대만큼 세수 증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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