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단체인 역사학연구회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8월 14일 발표)는 조선의 주권을 침해한 사실을 무시했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역사학연구회는 14일 연구회의 위원회 명의로 발표한 ‘전후 70년 총리 담화에 대한 성명’에서 “담화는 일본이 19세기 구미제국의 식민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서 근대화를 이루고 독립을 지켰다고 하면서 조선의 주권을 침해하고 대만을 식민지화한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명은 이어 “(담화가) 일러전쟁부터 20세기를 서술하면서 (러일전쟁이) 식민지 지배 하에 있던 사람들에게 용기를 줬다고 일방적으로 평가하지만, 일러전쟁은 무엇보다 우선 만주 등 중국 동북부와 한반도의 지배권을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으로, 주된 전장도 이들 지역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국주의적 야심을 가지고, 전쟁터가 된 비(非) 당사국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하면서 계속된 전쟁”이라며 “일러전쟁 때 일본은 조선의 중립선언을 무시하고 서울을 제압한 뒤 일한 의정서 등을 강요했다”고 지적했다.
연구회의 성명은 이어 “(담화는) 이러한 사실을 일절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식민지 지배의 책임은 원래 구미(유럽과 미국)에 있다는 인상을 줘 일본 고유의 책임을 희석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2차대전에 이른 경위와 관련, 세계공황 이후 서방 국가들의 경제 블록화로 타격을 받은 일본이 국제적으로 고립되자 힘으로 해결하려 한 것이라는 담화 내용에 대해서도 “일본을 수동적 피해자 위치에 둔 채 자기 변호적으로 역사를 인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성명은 “담화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 채 여성 일반의 전쟁피해 문제를 거론하는 것만으로 끝내고 있다”며 “이런 표현은 ‘위안부’ 문제를 전쟁의 일반적인 문제로 취급해 일본 고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세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또 조선인과 중국인에 대한 강제연행, 포로와 일반 시민 학살 등의 구체적 가해 사례를 언급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명은 “이번 총리 담화의 기조는 독선적인 역사인식을 관철한 것”이라며 “아베 총리, 더 나아가서는 일본 정부의 불량한 식견을 국제사회에 보이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담화 내용이 초·중·고교 등의 교육 현장과 교육 내용에 대한 한층 더한 간섭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또 ‘차세대는 전쟁과 무관하다’는 담화 내용에 대해서도 “가해의 역사를 직시하지 않고 마주해야 할 역사를 모호하게 하면서 피해국·피해자의 관용에 의지한 채 일방적으로 사죄에 막을 내리려 하는 것이야말로 가해국·가해자의 횡포”라고 덧붙였다.
역사학연구회는 ‘역사의 대중화’, ‘역사의 과학적 연구’를 목적으로 1932년 설립됐다. 설립 이듬해부터 월간지 ‘역사학 연구’를 펴내고 각종 연구회를 개최해왔으며, 2000년대 들어 가속한 우익들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반대하는 견해를 밝혀왔다. 이 단체는 지난해 10월 일본군에 의해 강제연행된 군위안부가 존재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고, 올해 5월 아베 정권의 군위안부 문제 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일본내 16개 역사 연구·교육 단체의 성명 발표를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