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람들은 종종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푸들`이라고 비꼬아 왔다. 블레어 총리가 부시 대통령의 맹목적 지지자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한 시각으로 사실을 좀더 면밀히 들여다 보면 블레어 총리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미국의 맹목적 지지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최근 블레어 총리는 부시에게 조기 이라크전 개전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 메시지는 부시 대통령이 간과해서는 안될 의미있는 신호다.
블레어 총리는 그동안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부의 무장 해제가 필수적이며, 필요하다면 상응하는 군사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에 대해 가장 지속적인 지지자였다. 동시에 그는 이런 국제사회의 행동은 국제연합(UN)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며, UN 무기사찰단이 외부의 압력에 구애받지 않고 이라크 무기사찰을 마무리할 수 있는 여유를 줘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블레어 총리의 이런 두가지 입장은 상호 보완적이다.
무기사찰을 지속시킴으로써 워싱턴과 런던은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여론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생산해 왔다는 결정적인 증거도 없고,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미국 양안간에 전쟁의 명분에 대한 합의가 채 이뤄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추가 무기사찰을 이유로 전쟁을 미루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중동문제 해결에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블레어를 향해 노동당 내부에서조차 반대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또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UN의 승인 없이 영국과 미국의 독자적인 군사행동에 대해 영국민의 13%만이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레어 영국 총리는 최근 UN의 이라크 무장해제 요구가 관철되지 못할 경우엔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 취할 것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블레어 총리는 무기사찰단이 첫 보고서를 제출키로 돼 있는 오는 27일은 무기사찰이 1차적으로 마감되는 것을 의미할 뿐 군사행동 여부를 결정하는 시한은 아니라고 못박았다.
결국 언제 군사행동을 취할 지는 무기사찰단의 조사가 어느 정도 진척되는 가와 이에 대한 이라크의 협조 여부에 달린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블레어 영국 총리는 강대국이 국제사회에서 져야할 책임과 민주주의적 여론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워싱턴 정가는 블레어 총리의 이 같은 선례를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뉴욕타임스 1월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