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경험에서 얻은 지식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먹구름이 짙으면 비가 오고 닭이 울면 날이 밝아온다는 통념도 일종의 경험칙이다. 하지만 현실이 반드시 경험한 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인 경우도 많다. 먹구름이 칠흑 같은데 비 한방울 안 내리고, 해가 쨍쨍한데 돌연 비바람이 몰아칠 수 있다. 오랜 관찰을 통해 터득한 원리나 법칙에도 오류와 함정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월가의 허상을 파헤친 베스트셀러 ‘블랙 스완(검은 백조)’에 재미있는 비유가 나온다. 주인은 천일 동안 칠면조에게 매일 먹이를 갖다 준다. 칠면조는 먹이를 받아먹을 때마다 주인이 자신에게 선의를 베푼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친절한 먹이주기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믿음은 한층 더 견고해진다. 하지만 추수감사절을 앞둔 날 친절하기 그지없던 주인의 손에 칠면조는 죽임을 당한다. 과거 경험으로는 결코 자각하거나 예측할 수 없었던 극단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니 경험에서 얻은 지식에 의지해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일인가. ‘블랙 스완’의 저자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섬뜩한 질문이다. 첨단 금융공학 기법을 과신한 미국 월가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발(發) 금융위기에 속수무책이었다는 사실은 그런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누구나 쉽게 돈을 빌려 쓸 수 있는 저금리 상황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잉태했다는 데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정보기술(IT)버블 붕괴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동안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은 놀라운 속도로 팽창했다. 미국 내 전체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2001년 7%대에서 2006년엔 20%대로 세배나 커졌다. 그동안 월가의 금융회사와 소비자들은 집값 상승과 값싼 이자의 혜택이 마냥 지속될 것이라는 경험칙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기준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선 순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이자가 급등하고 연체율이 오르고 집값은 폭락했다. 마치 추수감사절 전날의 칠면조처럼 사람들은 걷잡을 수 없는 위기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최근 국내에서도 저금리에 따른 주택담보대출의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변동금리형 대출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우리 시장은 금리변화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시장참여자들이 경험칙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