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아침, 조간신문을 펼쳐 든 손을 한동안 놓을 수 없었다. 부인을 먼저 떠나보낸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슬피 흐느끼는 사진이 신문 1면에 실려 있었다. 당대를 풍미했던 노정객의 애잔한 사부곡(思婦曲)에 마음이 절로 숙연해졌다. 하지만 더 애틋한 것은 기사가 전하는 부부지정이었다.
남편은 64년 전 결혼식 때 선물한 반지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어주고 마지막 가는 길을 입맞춤으로 배웅했다. 부인이 운명할 때는 모든 의료진을 물리치고 홀로 병상을 지켰다고 한다. 결혼 당시 건넸다던 프로포즈 문구 '한번, 단 한번, 단 한사람에게'라는 약속을 평생 지키며 살아온 것이다. 정치인으로서의 평가는 역사가 내릴 테지만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살아온 그의 인생은 그 누구에게도 떳떳했을 것이다.
지난해 말 아내와 함께 관람했던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어두운 밤 화장실에 간 할머니가 무섭다고 하자 아흔이 훌쩍 넘은 할아버지가 문 앞에서 노래를 불러줬다. 할아버지가 세상과 작별하고 마지막 가는 길에는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옷가지를 불에 태웠다. 떠나는 길 가볍게 가라고. 우리 부부도 울고, 옆에 있던 20대 관객도 함께 울었다.
이혼율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고 간통을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평생의 반려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끝사랑이다. 이것이 제작비 1억2,000만원의 독립영화에 200만 넘는 관객이 눈물 흘린 이유가 아닌가 싶다.
20~30년간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사람이 반 백년을 함께하는 버팀목은 존중과 배려이다. 시대의 정객(政客)도 평범한 촌로(村老)도 한 사람과 평생을 해로하는 이치는 똑같다. 살아온 인생과 삶의 궤적은 너무나 다르지만 그들은 이 평범한 이치로 불타는 첫사랑보다도 몇 배는 더 깊고 아름다운 끝사랑을 보여줬다.
부부는 인생의 반려(伴侶)라 한다. 남편이 아내를 태양처럼 존중하면 평생의 반려를 얻을 수 있다. 애처가 중에 우스갯소리로 아내의 어원이 '집안의 해(안해)'에서 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많은 한국 남자들은 자신의 부인을 소개할 때 '아내' 대신 '와이프'라고 한다. 남편을 '허즈번드'라고 하는 사람은 좀체 찾아보기 힘든 것에 비교하면 참 이상한 일이다.
아내라는 말 속에 이런 자신만의 의미를 새기고서 앞으로 부인을 칭할 때는 와이프 대신 아내라 얘기해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순우리말이기도 하거니와 어감도 참 좋다.
김 전 총리는 아내의 묘지명에 '내조의 덕을 베풀어준 영세의 반려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고 썼다고 한다. 이렇게 멋진 문장은 아니지만 오늘 밤에는 투박한 말이나마 아내에 대한 사모의 마음을 전해보고자 한다. "사랑하는 아내, 이번주 말 데이트 신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