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리셋 에너지정책] 1부. 전력 밑그림 다시 짜라 <4> 땜질식 수요정책

빗나간 수요예측이 화 불러… 수급·관리체계부터 뜯어고쳐야<br>전력난 불거지면 부랴부랴 쥐어짜기… 요금제는 손 안대 수요관리 실패거듭<br>독립위원회 등으로 에너지조직 전환… 통계·수요예측기능 전문성 확보해야

원전 가동 중단으로 올해 여름은 예년에 비해 전력난이 더욱 심할 것으로 예상된 가운데 지난 3일 정홍원(오른쪽 세 번째) 국무총리가 서울 삼성동 전력거래소에 설치된 긴급전력수급대책상황실을 방문해 관련 대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서울경제DB


우리나라 발전기 4,422대가 생산할 수 있는 전력량은 약 8,300만kW다. 위조 부품 파동으로 가동이 중단된 원자력발전소 2기의 전력량은 총 200만kW. 원전 2기의 가동중단이 상당한 손실이기는 하지만 평소 전력예비율이 충분하다면 초유의 전력난까지 이어질 상황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이달 들어 거의 매일같이 전력경보가 발령되고 있다. 예비전력은 정부가 모든 대책을 쏟아부어도 고작 300만~500만kW 수준을 유지하는 데 그친다. 전력 피크 때도 예비율이 10%는 넘어야 되는데 5%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렇게까지 된 근본적인 원인은 고질적인 수요정책 실패에 있다. 우리나라 전력 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수요예측부터 관리까지 이어지는 전력수요정책은 너무 허술하다.


◇잘못된 수요예측에 수조원 낭비=효율적인 전력수급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수요예측이다. 중장기 전력수요가 정확하게 예측돼야 기저설비를 충분히 포함시켜 발전원 구성을 미리미리 할 수 있다.

정부가 예측한 수요보다 실제 전력사용량이 많아지면 정부는 건설 기간이 짧은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를 지어 오차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전력공급 비용이 늘어난다. 원자력이나 석탄화력 같은 기저설비보다 LNG발전의 단가가 높기 때문이다

전력당국은 그러나 중장기 전력 수요예측에 일관되게 실패해왔다. 전력당국이 수립했던 5차 장기전력수급계획(2000년)의 경우 장기예측에 해당하는 2007~2009년의 오차가 평균 10.4%에 달한다. 2000년 초부터 수요예측이 잘못돼 있다 보니 적절한 설비투자가 이뤄지지 못해 10여년 후 전력대란이 불거진 것이다.

잘못된 수요예측은 전력난과 동시에 발전비용 낭비로 이어진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오는 2020년에 최대 전력 실적치가 예측치보다 15% 증가할 경우 연간 발전비용은 무려 1조2,16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소 전력정책연구실장은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전력 수요예측이 잘못됐다는 각계의 지적을 수년 동안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구시대적 수요관리, 속타는 기업들=정부의 수요정책은 예측 부문에서만 잘못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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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과 겨울, 전력난이 불거질 때마다 나오는 정부 수요관리대책은 그저 쥐어짜기 식 절전대책일 뿐이다. 올여름에 도입된 대기업 강제절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무리 위기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정부가 민간기업에 절전 목표치를 부여하고 위반하면 페널티를 주는 후진적 행정이 버젓이 시행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수요관리대책에 국민과 기업들이 동참할 수 있는 적절한 유인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력을 줄이면 기업에 보조금을 퍼주는 주간예고와 같은 수요관리대책은 매년 국회 등에서 특혜 시비에 휘말리고 있어 지속 가능한 방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요금제를 통해 수요관리를 하는 것이지만 정부가 최근 내놓은 선택형 최대피크요금제(CPP)는 아직까지 기업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 겨울 계약전력 3,000kW 미만 수용가를 대상으로 최초 도입된 CPP는 총 4만여곳의 수용가 중 참여한 곳이 800곳에 불과했다. 정부가 위기상황에서 너무 급작스레 새로운 요금제를 도입한데다 충분한 홍보와 설명도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요계획 역량 강화…수요관리 다양화 필요=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에너지경제연구원과 한국전력거래소가 별도로 각각 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을 지원하고 가스공사에서는 장기천연가스수립계획을 만들고 있다.

이러다 보니 각종 에너지 통계 및 에너지원별 수요예측 기능은 분산되고 통합적이고 정확한 수급계획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공무원 사회의 잦은 인사이동으로 전력수급의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는 정부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전력거래소 등의 계획수립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동시에 정부의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수일 KDI 연구위원은 "순환보직으로 인해 전문성 결여가 생길 수밖에 없는 정부 부처보다는 독립성 있는 위원회 형태로 에너지 조직을 전환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정부가 고효율기기 보급, 스마트그리드 확산, 요금제 다양화 등 여러 수요관리대책을 서둘러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는 현재 주택용 전기의 경우 구형 계량기가 설치돼 있어 시간대별 다양한 요금제 도입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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