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품질차 없다” 역선전에 정부서도 편들어/소비자에 직접 호소 「최명재식 신문광고」 개시저온처리방식, 즉 파스퇴르방식의 새로운 우유에 대한 기존 유가공업계의 대응은 87년말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게 진행돼 왔다. 우유대리점이나 슈퍼마켓에서 『파스퇴르우유를 받으면 다른 우유를 공급받지 못한다』고 거절하도록 시장의 공급루트를 봉쇄하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봉쇄에도 불구하고 파스퇴르우유가 강남의 아파트촌을 무대로 교두보 형성에 성공하자 이제는 본격적인 공격을 가해왔다. 최회장이 일본의 국제유업심포지엄에 강사로 참석해 있던 88년 2월 중순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한 강남의 아파트촌 일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단이 뿌려졌다.
「요즘 파스퇴르우유라는 것이 나와 소비자들을 현혹시키고 있으나 파스퇴르우유와 기존 우유의 다른 점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후발업체가 우유의 값을 올려받기 위하여 품질이 다른 것처럼 위장 선전하고 있을 뿐이니 소비자들은 이에 속지 말아야 한다. 우유의 품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원하는 분은 다음 전화로 문의하시오.」
이런 내용과 함께 전화번호 하나가 적혀 있었다. 그 전화번호는 식품산업을 관장하는 정부기관의 어느 부서의 번호였다. 전화를 해보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나왔다.
『우유는 모두 소의 젖을 가지고 가공하여 만드는 식품이다. 그러니 결국 같을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
최회장은 위기를 느꼈다. 지금까지 그에게 가해져 오던 보이지 않는 공격을 선발업체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한 일련의 조치로 이해하고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방식으로 그 방어망을 돌파해 온 터였다. 그러나 이번의 사태는 달랐다. 우선 상대는 파스퇴르우유를 마시는 소비자들에게 직접 전단을 뿌려 「새로운 우유의 거짓 선전에 속지 말라」고 부추기고 나섰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 역선전에 정부기관이 편을 들고 나왔다는 점이었다. 단순한 시장방어전이 아니라 「파스퇴르 죽이기」가 목표라는 것을 선언하고 나선 셈이었다.
「잘못하면 여기서 끝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부 소비자들도 이 역선전에 말려들어 파스퇴르우유를 더이상 마시지 않겠다고 사절하는 가정이 늘었다. 회사 간부들과 직원들도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최회장은 낭떠러지에 몰려 있었다. 한 발만 물러서면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그는 생각했다. 기존 업계와 언론, 정부까지 뭉쳐있는 이 거대한 공격망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역시 소비자에게 호소하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많은 소비자들에게 직접 접근하는 방법이 없을까. 여기서 나온 것이 그 유명한 「최명재식 광고」였다. 얼른 보기에 광고의 기본 상식을 모조리 깨부수고 도안의 미적인 요소를 부정하는 듯한 신문광고가 이때 탄생했다. 그는 소비자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 상대인 기존 유업계와 정부기관, 그리고 언론기관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정제하지 않고 투박한 어투 그대로 광고라는 형식을 빌어 뱉어냈다.<이청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