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증시는 기관화장세, 특히 투신장세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투신사의 비중이 커졌다.투신은 주식형 수익증권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자금을 바탕으로 시장의 주도권을 잡은 상태며, 이에따라 투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투신은 시장의 안전판으로서 비중있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투신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시장을 떠받치는 관치주가(官治株價)의 홍위병이 아니라 수익률 제고를 위해 주식 사냥에 나서는 철저한 고객의 자산운용 위탁자가 됐다.
시장의 헤게모니를 쥐게 된 것은 저금리시대의 정착, 투자기법의 복잡다기화 등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투신의 경쟁력이 개인투자자의 직접투자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투신의 김명달(金明達) 주식투자부장은『시장 변동성이 커진 최근의 장세에서 개인투자자들은 투신에 완패했으며, 이같은 결과는 직접투자의 간접투자 전환을 통한 수익증권 수탁고 증가로 연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때문인지 요즘들어 각 증권사가 발행하는 정보지 역시「투신이 선호하는 종목을 주시하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현재 투신의 수익증권 수탁고는 250조원. 이같은 규모는 지난 97년말의 70조원에 비해 무려 257% 이상 늘어난 것이며, 특히 개인금융자산 700조원의 3분의 1을 넘는 수준이다. 여기에 기존 펀드가입자의 만기후 재가입, 그리고 쥐꼬리만한 이자소득에 불만이 많은 잠재투자층의 신규가입까지 감안하면 투신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주가는 기업의 실적 및 내재가치외에 정보, 루머 등 플러스 알파 요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데, 기관화장세가 이뤄지면 이같은 투기적 재료의 효용성은 줄어들고 대신 자기자본이익율, 주가수익률등 기업의 재무재표에 근거한 합리적 투자가 가능해 진다. 또한 기관투자가의 투자패턴은 장기투자가 특징이기 때문에 시장이 안정적으로 운용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투신이 주도하는 기관화장세는 당초 기대와는 다소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투신이 치고 빠지는 단타매매에 주력하는가 하면, 실적 및 내재가치주의 발굴보다는 특정 핵심우량주 매집에 나서 주가의 양극화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또한 수익률 물타기 등 과거의 고질적인 병폐도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최근 재벌계열사 투신권의 자금 독식 현상은 새로운 형태의 경제력 집중문제를 야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직접 제2금융권 소유·지배구조에 직접 관심을 표명하기에 이르고 있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재벌기업의 투신자금 독과점은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를 심화시켜 희소한 금융자원의 배분체계에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재벌기업의 투신자금 싹쓸이는 금융기관을 갖고 있지 않은 다른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성장을 제한하는 불공정거래 및 경제력 집중의 요인이 되며, 특히 계열사가 발행한 주식·채권·기업어음 등을 우선 매입하는 등 펀드가 특정 그룹의 사금고(私金庫)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투신자금의 사금고화를 막기위해 펀드당 주식보유 한도 하향조정과 같은 총량 규제강화, 사외이사 확대 등의 대책을 마련중이다.
한편 현대투신운용의 강창희(姜敞熙) 대표는『당장 펀드의 동일계열 주식보유 한도를 축소하면 투신사의 운용 폭이 줄어든다』면서『특히 시가총액 비중이 높은 계열사를 갖고 있는 투신사는 계열사 주식의 주가상승이 예상돼도 편입에 제한을 받음은 물론 때로는 우량주식을 처분해야 한다』고 주장, 총량규제강화 방침에 다소 반발하고 있다. 그는 이어『이는 곧바로 투자자의 손실로 이어지며, 특히 투신사 운용력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규제에 앞서 투신권 스스로의 운용철학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외부로부터의 간섭이 싫다면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신은 무엇보다도 운용철학을 정립해 고객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수익률만을 앞세워 시장을 교란시키는 매매패턴을 지양하고 특히 계열사를 위한 편법자금지원의 오해를 사지 않도록 자산운용의 윤리를 확립해야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신탁재산과 고유재산 사이의 방화벽(FIRE WALL) 설치, 사외이사제 도입, 수익률 물타기 근절 등 자산운용의 투명성도 확보해야 하는 것도 묵은숙제이다.
지금 해외의 유수한 투신사들이 한국시장 상륙에 속속 나서고 있다. 만일 공사채형 펀드의 제시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장기채권을 단기펀드에 무리하게 편입하는 관행을 수술하지 않거나 계열사를 위한 주가관리 등의 불공정거래가 개선되지 않으면 이웃 일본보다 훨씬 쉽게 외국운용사에게 시장을 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구영 기자 GYCH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