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바보의 길과 오만의 길

요즘 지인들과 만나 정치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결 같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이명박(대통령 당선인)도 한나라당도 집권하게 되니까 자세가 바뀌는 것 같다”라는 얘기다. 그럴 때면 “(대통합민주)신당은 아직도 반성하는 기색이 안 보인다”는 이야기도 함께 곁들여진다. 이런 대화의 결론은 대체로 “이번 총선에서도 밀어줄 당이 없다”는 푸념으로 끝난다. 대선을 치른 지 불과 40여일.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유권자들의 입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찍은 당을 밀어줘야지’라는 말이 나와야 옳다. 하지만 저잣거리의 민심은 다시 부동표로 돌아서려는 분위기다.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월31일 김부겸 신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이 당선인에게 던진 통렬한 비판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김 의원은 노 대통령이 2002년 민주당 경선 돌풍과 정몽준 당시 국민통합21 대표와의 대선후보 단일화, 2004년 탄핵 역풍의 ‘행운’을 거치면서 엄청난 자기 확신을 갖게 됐고 그로 인해 국민으로부터 ‘경원’의 대상이 된 비극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미 이 당선인에게서도 엄청난 자기 확신의 기세를 느낀다”고 충고했다. 김 의원이 말한 ‘엄청난 자기 확신’이란 권력자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완곡한 표현일 것이다. 지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측은 집행기구인양 설 익은 정책을 쏟아내며 월권을 행사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총선 출마만 하면 당선이 기정사실화 된 양, 신당은 국민들로부터 견제 야당임을 인정 받은 양 당내 계파끼리 공천지분 다툼을 벌이고 있다. 차기 집권세력이 벌써부터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한다면 국민들이 여대야소 정국을 만들어주겠는가. 야당이 대선 참배의 교훈을 잊고 밥그릇 싸움만 한다면 집권당 견제의 명분을 유권자들이 믿겠는가.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바보의 정치다. 자신은 손해를 보더라도 대의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정치다. 2002년 대선에서 국민은 ‘바보 노무현’을 선택했으며 지금은 변해버린 ‘자기 확신의 노무현’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총선이 채 70일도 남지 않았다. 정치인이라면 지금 바보의 길을 걸을 것인가 오만의 길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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