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도입을 과장급 이상으로 확대하는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 추진 방향'을 발표하면서 민간 부문에서도 연봉제 전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근무 기간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호봉제를 없애면 그만큼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의 75% 이상은 사무직을 중심으로 이미 연봉제를 시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대부분은 성과와 무관한 정기상여금을 일률적으로 지급하고 있어 사실상 '무늬만 연봉제'에 가까운 실정이다. 아울러 생산직 부문의 호봉제 폐지도 시급한 과제이지만 강성노조의 반대로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면적인 연봉제 전환은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셈이다.
◇연봉제 기업 70%가 정기상여금 지급=2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13년 기준 전체 사업장의 연봉제 실시 비율은 33.4%에 불과했다. 반면 100인 이상 기업은 66.2%, 300인 이상 대기업은 75.5%나 됐다.
실제로 삼성·현대차·LG·SK 등은 전체 또는 일정 직급 이상 사무직군에 대해 연봉제를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들의 70.5%(2008년 기준)가 성과와 상관없는 기본급 성격의 정기상여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성과 중심 연봉제의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변동상여금(실적에 따라 차등 지급)이 본래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앞으로 정년 60세와 맞물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되는 요소다.
현재 변동상여금 제도를 도입한 기업들 중에서도 많은 경우 실적 평가에서 최하 등급을 받아도 일정 수준의 상여금을 보장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실적에 따른 변동상여금 폭이 100만~400만원일 경우 100만원의 변동상여금은 여타 기본급·정기상여금 등과 함께 통상임금에 포함되게 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평가 시스템을 5등급으로 구분해 업적급을 지급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기는 힘들지만 최하등급을 받아도 일정 수준 이상의 업적급이 보장되는 건 맞다"고 전했다.
◇'생산직 연봉제'는 노조 반대에 '산 넘어 산'=사무직과 달리 국내 대기업의 생산직은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낮은 노동생산성은 이 같은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에서 연유한다는 지적이 많다. 3월 말까지 관련 위원회를 통해 노조와 함께 임금체계 개편 논의를 이어가기로 한 현대차가 중장기 과제로 '호봉제 폐지'를 설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른 시일 안에 노사합의를 통해 연봉제가 도입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강성노조의 반대가 워낙 심한 탓이다.
일단 사무직처럼 '무늬만 연봉제' 형태의 임금체계라도 갖춘다면 장기적으로 인건비 부담을 줄여나갈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할 수 있지만 노사 간 입장 차이 때문에 이마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판중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본부장은 "통상임금 리스크와 정년 60세 시대 등을 감안하면 호봉제 폐지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며 "다음달 기업들에 배포하는 임금협상 대응 지침을 통해서도 이 같은 내용을 강조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