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통제와 소유로부터 자유를…"

비자카드 성공일군 질서-무질서 결합 '카오딕' 강조"변화가 두렵다고? 왜 두려운가? 변화하지않고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무엇이 우주의 본성을 더 즐겁게 하겠는가?." 로마시대의 황제이자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시대적 고뇌의 단상이다. 그리고 1968년 미국.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색을 흠모하던 디 혹이라는 이름의 청년은 시대의 부조리를 되뇌이고 있었다. "왜 조직은 정치적이든, 상업적이든, 사회적이든 상관없이 관리능력을 잃어가고 있는가? 왜 개인은 자신이 참여하는 조직들과 점점 갈등을 빚고 소외되어 가는가? 왜 사회와 생물권은 점점 혼란스러워지는가?." 디 혹은 자신의 사색을 실천으로 옮겼다. 1970년 비자 인터내셔널의 창업이다. 그 후 30년, 비자카드는 지구촌 2만2,000곳 이상의 금융 기관에서 발행되고, 200곳이 넘는 국가 및 영토에서 1,500만 곳의 가맹점에서 통용되는 세계 최고의 신용카드가 됐다. 디 혹이 일군 비자카드의 성공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철학의 실천이었다. 17세기 이후 400여년동안 세계를 이끌어 왔던 산업주의의 수직적, 기계적, 선형적, 경쟁적 질서체계를 자연 조화적이고 수평적이며 상호 협력적 질서로 뒤바꿔 놓음으로써 조직의 효율성을 혁신적으로 개선한 미래 조직의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디 혹과 비자 인터내셔널의 성공에는 '카오딕'이라는 새로운 질서개념이 중심에 있다. 카오딕(chaordic)은 무질서를 뜻하는 카오스(chaos)와 질서를 뜻하는 오더(order)의 합성어. 그러니까 무질서와 질서의 결합이며 혼란과 안정의 조화이다. 카오딕은 비자인터내셔널에 그대로 적용됐다. 비자는 어떤 의미에서 정부이며, 영리단체이며, 비영리단체이며, 컨설팅업체이며, 프랜차이즈 기업이며, 교육기관이며, 사회기관이며, 상업기관이며, 정치적 동맹의 성격을 띤다. 이 조직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법적 논리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언어와 인종, 문화와 관습을 초월할 수 있었으며 어떠한 정치ㆍ경제ㆍ사회ㆍ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나 조직에게도 강력한 친화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 결과 1970년 처음 모습을 드러낸 지 10년 만에 시장 점유율이 최저에서 최고로 급성장했으며, 금융 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익성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조직의 유연성은 개인에게 신용 대출의 이자와 가맹점의 수수료를 반 이상 낮추는 등 경쟁력을 가져다 주었다. 이로써 발생된 수입 중 아주 적은 비용을 덜어 상당한 금액의 지출을 분할하는 새로운 개념의 관계의 정립이 가능해졌으며, 수만 개의 새로운 사업과 기업이 태동됐고, 멤버들간의 네트워크가 크게 확장되었다. 비자의 성공 요체는 통제와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조직운용에 있다. 기술이나 사람을 통제하거나 소유할 이유가 없으므로 수천 개의 외부 조직과 연결되는 테크닉과 창조성은 조직의 필요와 기회에 따라 언제든지 자유롭게 발전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 경제체제에서 가장 큰 단일 구매력으로 성장한 비자카드는 500명 안팎의 직원이 전세계 시스템을 조정함은 물론, 상품 및 시스템 개발과 홍보를 도맡고 있다. 회사는 고객과 협력업체에게 언제든지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지만, 멤버들은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며, 회사도 수 억만 명의 구성 요소에 대해 잘 모른다. 투명성과 익명성의 조화, 통제와 자율 질서의 시너지가 카오딕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비자인터내셔널의 성공이 값진 이유는 계량적 성과보다도 새로운 미래의 성장시스템을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디 혹은 세계 굴지의 금융기업을 개척했음에도 손꼽히는 재벌의 반열에 올라있지 않다. 그는 돈보다는 자신의 철학 '카오딕'의 실천에 매진하고 있다. 비영리단체인 카오딕 얼라이언스, 의료보험의 변화를 촉구하는 우주데이터인프라선도기구 등이 경쟁과 협동의 조화를 꾀하는 21세기 철학 '카오딕'을 실천하는 디 혹의 새로운 현장들이다. 문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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