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漢久 대우경제연구소 사장근래에는 내년 이후의 경제회복에 관해 낙관적 분위기가 한결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외신에서는 IMF(국제통화기금)나 미국 정부고위층들의 한국경제 칭찬기사가 부쩍 늘었고 일부 외국컨설팅 회사들의 보고서 내용도 좋게 나오기 시작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주가, 이자율, 환율서 좋은 징후가 짙게 나타나고, 심지어는 산업생산이나 도소매판매 등 실물경제지표들도 마이너스 증가율이나마 둔화된다고 성급한 전문가들은 제법 흥분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번의 경제회생 무드는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경제가 회생하든 더 가라앉든 변화의 징후는 다방면에서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게 보통이다. 금융시장이 실물시장보다 먼저 나타나고, 금융시장중에선 외환시장이 국내 자금시장보다, 그보다는 더 먼저 주식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실물시장에선 현재활동과 관계되는 판매가 생산보다 먼저, 이어서 재고 또는 가동률, 수입규모가 변하며, 투자조정, 최종적으로 고용인원의 변모가 보인다.
그러니까 경제회생을 어느 측면에서 정의하느냐에 따라, 지금의 현상이 지속되는 걸 전제로 하더라도 한참 멀었다고 볼 수도 있고 이미 되었다고 결론 내릴 수도 있다. 경기회복 여부를 묻는 언론계의 잦은 설문조사에 응답하기 곤란한 대표적 예는 경기저점이다.
분기별 GDP성장률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전제하더라도 성장률의 마이너스가 줄어드는 시점인지 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서는 시점을 묻고 답하는지 불분명하다.
그런데 더 근본적 질문은 근래의 회복무드가 바뀔 가능성과 관계되는 것이다. 첫째 지금의 외환금융시장 상황개선은 국제금융시장 상황개선에 의존하는 게 매우 크다. 따라서 미래의 국제금융시장이 미국의 헷지펀드문제나 중남미경제위기, EURO출현·엔의 국제화 관련한 통화권확보 경쟁질서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둘째 근래의 국내금융시장 안정이 실물시장에서의 구조조정 부담 감소와 변동성 축소에 얼마나 도움을 줄 것인가의 판단 문제이다. 이는 다시 외화벌이가능성과 내수 진작조치의 효과성과 관련된다. 외화벌이중 수출은 세계 실물경기 전망과 보호무역주의 대두 여부(특히 우리나라의 주력수출시장인 미국, 중국, 유럽)에 달려있는데 내년 전망은 금년보다 못하다는 게 공통적 의견이다.
외화벌이 중 외자도입은 장단기외자를 구별해야 하겠지만 특별히 국내은행이나 기업들의 대외신뢰도가 올라가거나 채산성이 좋아진다는 증거를 빨리 제시하지 못하면 순유입금액이 100억달러를 기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만일 이것이 전제된다면 30대 재벌의 구조조정과 은행의 부실채권정리에 따른 손실보전을 위해 재벌들과 은행들이 증자물량을 쏟아낼 경우 주식시장이 견뎌내지못하고, 엄청난 실물자산을 팔 경우 부동산시장 등이 버티지를 못한다. 또 경비절감으로 대처하면 국내 소비시장과 투자시장 위축은 금년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물론 정부는 적절한 경기부양조치를 취할 것이다. 통화증발과 재정확대가 예상된다. 그러나 규모가 문제이고, 재원조달이 가능한 지가 궁금하며, 그들의 노력이 실물경제에 전달될 수 있는 채널이 건전한 지가 걱정이다. 내년도 정부예산 규모는 금년보다 5∼6% 늘어나지만, 금융부문 구조조정이나 실업자 구제용 예산처럼 이전효과를 갖는 부분을 제외하면 경기확장 효과는 오히려 금년보다 줄어들지 모른다. 또 한국은행은 자금을 방출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현재 조달가능한 다소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 개선될 은행조차 상당부분의 부실채권·자산을 안고 지내야 하는 형편에서, 또 기업들의 부채구조가 개선되거나 채산성개선이 안 이뤄지는 상황에서, 신용보증기금 등의 재원이 바닥을 보이는 형편에서 얼마나 자금순환이 잘 될지 걱정된다.
그밖에도 실업과 구조조정의 고통이 장기화되고 확산되는 과정에서 사회불안 증대, 도덕적 해이, 복지부동 내지 안전제일의 소극적 태도, 과거부조리 노출 확산에 따른 갈등확대 등은 내년도 경기회복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변수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첫째 괜한 낙관론에 휩쓸려 거품제거와 미래먹거리 확보 노력을 소홀히 하면 진짜로 곤란하게 될지 모른다는 자각심을 다지는 것이다. 경기회복 구도를 L자형이냐, U자형이냐, W자형이냐 논의할 게제는 아니다.
둘째 정책당국자는 구조조정 관련해서 몇십년 묵은 문제점을 단숨에 해결하겠다는 과욕을 부리기보다는 무리한 기업구조조정 목표를 완화해서 불필요하게 많은 기업들의 도산과 실업증대, 산업기반 붕괴의 위험을 예방해야 한다.
셋째 금융시장은 우리 경제의 심장에 해당하는 만큼 소수 정예주의로라도 일부은행의 기능을 정상화시켜주고 관치금융의 소지를 법적으로 없애야 한다.
넷째 기업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일부 은행대출의 출자전환은 불가피하지만 그 결과 기업경영이 퇴직금융기관 직원이나 정치권, 행정공무원들의 노후보장직장으로 변하지 않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 내년도 경제운영 철학의 으뜸은 「부수기」보다는 「만들기」이어야 한다. 대기업을 위축시킨다면 그에 상응하게 중소기업을 활성화시켜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하고, 외국자본의 비중을 높이겠다면 그와 관련된 국제 독과점문제와 외환시장·증권시장 불안문제, 국내 대표산업의 고급화 장애문제 해결책도 빨리 제시되어야 불안감이 덜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