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국무총리가 청와대의 신임 각료 제청 요청을 공식 거부하고 사표를 제출함에 따라 개각이 다음달로 늦춰지는 등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2기 국정운영에 차질이 예상된다. 또 총리가 전결권을 갖는 공무원 인사를 비롯한 총리 고유업무도 상당 부분 정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총리 고유업무 차질 = 고 총리의 사표제출로 정부 서열상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총리직을 대행하게 된다. 대통령직 대행에 이어 10일 만에 총리직도 대행체제를 맞게 됐다. 노 대통령은 지난 3월12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권한이 정지돼 두달여 동안 고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했으며 1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기각판결로 직무에 복귀했다. 대통령 대행을 맡았던 고 총리가 결과적으로 총리직 대행사태를 불러온 셈이다.
총리 대행체제에서는 총리 고유업무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통상 대행은 업무수행에 한계가 있어 이 부총리가 총리대행을 맡아 적극적으로 총리 권한을 행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 주재 ▦총리가 전결권을 갖는 1~4급 공무원 승진ㆍ전보 등 인사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등 총리가 위원장인 정부 내 대책위원회 개회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에 대한 부서 ▦총리령 발령 ▦외빈 접견 ▦국회 출석 및 당정협의 등이 순조롭게 이뤄질지 의문이다.
◇ 개각 지연 =고 총리의 사퇴는 개각지연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신임 각료의 임명 제청권을 행사할 수 있는 후임 총리가 임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신임 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 17대 국회 개원일이 다음달 7일이므로 개원일을 전후해 노 대통령이 후임 총리후보를 지명하더라도 적어도 15일 정도 소요되는 청문회와 국회 동의절차를 고려할 때 다음달 말쯤에나 개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개각이 더 늦춰질 공산도 있다. 노 대통령은 후임 총리 후보로 한나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긴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를 내정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나라당 등 야당이 강력 반발하고 있는데다 여당인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도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되고 있어 김 전 지사를 총리후보로 지명할 경우 총리인준안이 국회에서 순조롭게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개각시기가 늦춰지면 개각 폭도 다소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은 23일 기자들과 만나 고 총리가 신임각료 제청권을 행사할 경우 통일부ㆍ문화관광부ㆍ보건복지부 등 3개 부처가 개각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이날 “개각이 다음달 말로 늦춰진다면 개각대상을 3곳으로 못박는 것은 신통치 않다”며 개각 폭이 3개 부처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정 수석은 또 “개각에 대비, 국무위원급 20개 전 부처에 대해 지금 언론에서 거론되는 정치인 3명을 포함한 60명의 장관 후보를 압축해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있을 장관급 교체 개각에 이어 큰 범위는 아니지만 부처 차관이나 (다른 기관의) 차관급 인사가 일부 있을 것”이라며 “대상은 좀 오래 한 분들이 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구동본기자 dbko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