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유럽 재정 위기가 유럽연합(EU) 등의 총력 저지에도 불구하고 통제선을 넘어 주변국으로 급속히 전염되고 있다. 아일랜드를 지나 포르투갈까지 확대된 위기감은 이제 스페인 국경까지 넘어설 태세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23일(현지시간) 아일랜드의 국가 신용등급을 두 단계 떨어뜨리자 재정 위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시장의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스페인 정부는 이날 재정 적자가 대폭 개선됐다고 발표했지만 시장에서는 되려 스페인 국채 가격이 하락하고 CDS프리미엄은 사상 최고치로 급등하면서 도미노 쓰러지듯 유럽 재정위기가 갈수록 확산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악재엔 예민하나 호재엔 무반응"이라며 "'포르투갈 그 다음은 스페인'이라는 가정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엘레나 살가도 스페인 재무장관은 "스페인의 최근 10개월 재정 적자는 312억6,000만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47%가 줄어들었다"며 "반면 세입은 세수 증가와 경제 안정 덕분에 11% 증가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동안 재정 적자가 오히려 늘어난 이웃국 포르투갈과 비교하면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스페인 증시를 대표하는 IBEX지수는 이날 3.5% 급락, 시장의 불신을 반영을 했다. 이날 낙폭은 영국의 FTSE100지수(-1.75%), 독일 DAX30지수(-1.72%), 프랑스CAC40지수(-2.47%) 등 다른 유럽 증시보다 큰 것이다. 또 스페인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4.897%까지 뛰어오르면서 독일 국채와의 격차가 233베이시스포인트(bp)로 확대됐고 스페인 5년물 국채의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프리미엄은 300bp를 뚫고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아일랜드가 S&P로부터 신용 등급 강등을 당하고 또 다른 위험국인 포르투갈의 재정 및 경제 상황이 구제금융을 피하기에는 너무 취약하다는 분석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스페인에 대한 투자 심리까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아예 포르투갈보다 스페인을 더 우려하는 분위기다. 경제 규모가 작은 아일랜드, 포르투갈과 달리 스페인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4위 경제 대국으로 사실상 유럽 재정 위기의 몸통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은 재정적자 문제의 핵심이 중앙 정부가 아닌 지방 자치 정부여서 통제가 어렵고 투명성이 낮아 시장의 신뢰를 얻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스페인 내부에서는 미구엘 오도네즈 중앙은행 총재까지 직접 나서 재정 적자 감축과 자치 정부 예산의 투명성 제고를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덴마크의 삭소뱅크는 "스페인이 중대한 수준의 지원을 필요로 하게 된다면 4,400억유로 규모의 EU구제금융펀드는 AAA등급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며 "독일과 프랑스가 또다시 돈을 퍼부어야 하는 등 정치적 소용돌이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올초 그리스 사태 이후 유럽 재정 위기 진화에 앞장서 왔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아일랜드 구제 금융으로 재정 위기가 사라진 건 아니라고 인정했다. 메르켈 총리는 "유로존이 예외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며 "하지만 정치가 시장보다 우위에 서 있는 만큼 현 상황을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