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안용찬 애경산업 CEO

“무리한 물량 공세로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제품군 별로 1~2등 브랜드를 하나씩은 갖추는 것이 목표입니다” “커피 맛은 잘 모르지만 이 맛은 괜찮은 것 같다”며 향긋한 원두커피 한 잔을 권해 온 애경산업의 안용찬 사장은 “모든 제품을 키우기 보다는 회사의 이미지를 이끌어가는 `빅 브랜드`육성에 주력하겠다”고 올해 경영전략의 화두로 던졌다. 각 업계마다 회사를 앞세우기 보다는 브랜드를 전면에 노출시켜 고객을 사로잡는 `브랜드 마케팅`이 유행하고 있지만, 중가 브랜드의 이미지가 뿌리깊은 애경산업으로서도 강력한 1등 브랜드를 통해 회사 전체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일이 여느 업체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 특히 올해는 애경그룹 창립 50주년을 한 해 앞둔 중요한 시점에서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가치를 제공한다”는 안 사장의 의지는 유독 남다르다. 주력분야인 생활용품에서 국내 2위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애경산업으로선 업계 1위 등극을 꿈꿔 볼 만도 하다. 하지만 안 사장은 “전체 규모에서 1위인 LG생활건강에 앞설 생각은 없다”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욕심을 내다 보면 회사도 쉬운 길로 빠지게 된다”는 것이 안 사장의 지론. 품목 수가 2배 가량 되는 1위 업체에 규모 면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지만, 대신 “애경산업이 진출한 각 분야에서는 1등을 노린다”는 것이 그의 경쟁 전략이다. 대표적인 치약제품 `2080`, 분말세제 시장의 선두를 달리는 `스파크` 등에 더해, 장차 커다란 시장을 형성할만한 제품을 회사의 핵심 역량으로 육성한다는 얘기다. 특히 지난해 출시된 고급 샴푸 `케라시스`, `비타덴트` 치약 등으로 대표되는 프리미엄 시장은 회사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도 힘을 기울이는 분야다. 손익관리 측면은 물론이지만, 그보다도 “프리미엄 시장에 뛰어들어야 연구 분야에서 최고 기술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강화된다”는 점이 안 사장이 프리미엄 시장을 중시하는 큰 이유다. 외국 업체들의 다국적 브랜드가 시장을 파고드는 상황에서 “매출과 이익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쟁사들과 싸워 이기려는 자극과 압력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 애경산업이 비교적 보수적인 중가 이미지가 강한 회사라는 점도 프리미엄 시장 진출 이유다. 성공한 프리미엄 브랜드는 회사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최고의 방편이 되기 때문. 한편으로 생활용품 업체로서의 탄탄한 위상은 지난 2~3년간 고전을 겪은 화장품 부문을 지탱하는데도 큰 힘이 됐다. 화장품업계의 전반적인 부진에도 불구, “애경은 생활용품이라는 기댈 언덕이 있어 상대적으로 좋은 상황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 오히려 “지난 2~3년간 주저앉음으로써 유통 재고관리의 중요성을 깨닫는 중요한 기회를 가졌다”고 안 사장은 설명한다. 지난 어려움을 계기로 애경산업은 화장품 규격을 3분의 1로 줄이고, 브랜드와 제품 종류도 상당폭 정리할 계획이다. 현재 진행중인 외부 컨설팅 업체와의 작업을 거쳐 앞으로 1~2년 이내에 브랜드 조정에 돌입할 것이라고 안 사장은 밝혔다. 화장품 부문 사정이 급속도로 호전될 경우 생활용품 분야에 의지할 필요 없이 별도 사업으로 독립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안 사장은 덧붙였다. 특히 시판 화장품과 달리 방문판매(방판) 사업은 고수익을 기대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 올 봄에는 프랑스 제품, 내년에는 대학과의 합동 프로젝트를 통한 한방 제품을 내놓아 본격적인 고급화 전략에 나서, 오는 2005년 말에는 연 매출 500억원, 순익 100억원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안 사장이 특히 신경쓰는 것이 바로 `사람 관리`다. 판매요원의 역할에 따라 시장이 좌우되는 만큼, 안 사장은 `강한 판매 조직 만들기`를 사업 육성의 관건으로 보고 있다. “판매요원에 대한 동기 부여와 사회적 욕구 충족을 위한 교육 및 승진 기회 등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할 정도로 `사람`에 거는 안 사장의 기대는 크다. 안 사장이 소비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 “역차별만은 하지 말아달라”는 점이다. 자국 제품에게 절대 유리한 입지를 부여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외국 제품에겐 웬만한 일은 눈감아 주면서도 국내 제품은 등한시 하는 상황이 아쉽기만 하다. 눈을 가린 상태에서 제품질을 평가하는 `블라인드 테스트(blind test)`에서는 외국 제품에 결코 뒤지지 않는 호평을 얻는 국산 제품들이 외국 브랜드 이름에 밀리는 현실도 안타깝기만 하다. “한국인의 체질에 맞는 한국 제품에 좀더 애정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안 사장이 내비친 유일한 하소연이다. ■경영철학과 스타일 안용찬 사장은 그럴듯하게 내세우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경영철학을 묻자 안 사장은 “애경산업이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좋은 제품이 많은 회사`로 기억되는 것이 바람이다”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중견기업 CEO라면 으레 외우고 있음직한 거창한 경영신념은 나오지 않았다. 그보다는 한 명 한 명 소비자들의 인식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자유로움을 강조하는 그의 경영 스타일은 사내 곳곳에서 베어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실시되고 있는 복장 자율화도 그 한 예. 인터뷰 자리에 나타난 안 사장 자신도 넥타이를 메지 않은 캐주얼한 셔츠와 자켓 차림. 애경산업에서 양복에 넥타이 차림은 보기 힘들어졌다. 출퇴근 시간도 자유로워졌다. 지난해 10월부터 탄력근무제도를 도입, 아침 출근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한 것도 안 사장의 자유주의 경영의 일례다. 일찍 출근해도 눈치를 보느라 퇴근시간이 늦어지는 `이름 뿐인` 탄력근무제가 아닌, 명실상부한 탄력근무제다. 전직원이 한 자리에 모여 CEO의 `한 말씀`을 경청하는 형식적인 종무식도 사라졌다. 지난해 말 애경산업은 각 부서별로 케잌 한 판을 둘러싸고 부원들간 한 해를 돌이키며 담소를 나누는 것으로 종무식을 대신했다. 대신 접시에 포크 한 개를 달랑 든 CEO가 불현듯 나타나면서 이야기를 거드는 풍경이 각 부서마다 엿보였다는 것. 이 같은 분위기는 노동조합과의 관계에서도 이어진다. 안 사장이 노조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서로가 말하고 싶을 대 대화하는 것”. 솔직하고 소탈한 그의 성품은 형식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경영방식으로 애경산업 구석구석까지 표출되고 있다. ◇약력 ▲59년생 ▲83년 연세대 상경대학 경영학과 졸업 ▲85년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졸업 ▲87년 애경산업 브랜드부 ▲87년 애경화학 총무부 이사 ▲90년 애경유화 상무 ▲92년 애경유화 전무 ▲95년 애경산업 대표이사 사장 취임 ▲현 애경산업 대표이사 대한화장품 공업협회 감사 전경련 산업디자인 특별위원회 위원 서울상공회의소 상임의원 <신경립기자 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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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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