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노무현과 FTA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시한을 열흘 남짓 남겨 뒀던 지난달 20일. 노무현 대통령은 FTA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농ㆍ어업인들과 머리를 맞댔다. 이들 앞에서 그는 “정치적으로 손해 가는 일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은 노무현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협상을 시작했다”며 이를 ‘특단의 의지’라고 자평했다. 노 대통령 스스로의 평가처럼 한미 FTA는 정치적 우군들에게 ‘배신 행위’나 다름없었다. “진보 진영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누차 목소리를 높였지만 사실 개방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와는 사뭇 다른 철학적 개념이었다. ‘샌드위치 경제’ 속에서 살아날 길은 개방을 통해 시장을 넓히는 것밖에 없다는 신자유주의를 외쳤지만 내심 “이게 내 몸에 맞는 옷인가”라는 자문을 끊임없이 던져봤을 것이다. 민생 경제를 못 살린 것, 이라크 파병과 함께 노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미안해 하는 3가지 중 하나가 한미 FTA라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귀띔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노 대통령은 특유의 뚝심으로 FTA의 문을 열었다. 대통령은 지금 지지자들에 대한 미안함 못지않게 스스로의 표현처럼 ‘자신만이 할 수 있는’하나의 성과물을 향해 노력했다는 자부심에 도취했을지 모른다. 경제 관료들이 풀어내는 협상 대차대조표에 미소를 머금으면서…. 하지만 이런 여유는 ‘서민 대통령’을 표방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너무나 한가롭고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무엇보다 협상 결과에 관계없이 FTA를 둘러싼 국론 분열의 상처는 치유하기 힘들 정도로 깊다. 서울시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한미 FTA의 추진 과정을 보면서 눈을 흘렸다. 그것은 분명 국가의 경쟁력 강화라는 화려한 수식어의 뒷편에 도사린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다. 지금 이 순간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FTA가 국가의 힘을 한 차원 끌어올려줄 것이라는 정권 차원의 대대적 홍보가 아니라 FTA가 만들어낼 사회적 이방인들을 위한 통치권자의 따뜻한 말 한마디다. 곧 나올 대통령의 담화가 어느 때보다 겸손한 문구로 채워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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