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그에 대해 「아버지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자 이에 반대해서 개골산에 들어가 죽었다』고 적혀있다. 그 밖에 다른 역사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과연 그뿐일까. 한 나라의 마지막 태자가 국가의 패망을 눈앞에 두고 그렇게 무기력한 여생을 보냈다는 얘긴가.이번주 KBS 1TV 「역사스페셜」은 『마의태자가 강원도 인제에서 신라부흥을 도모했다』고 주장한다. 제작팀은 오랜 현장조사와 문헌연구를 통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15일 오후8시 방송. 다음은 이날 방송내용이다.
◇강원도 인제 김부리에 마의태자가 살았다= 마의태자 유적지비가 있는 이 곳에는 마의태자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마을엔 마의태자에 대한 전설들과 함께 그가 옥새를 숨겼다는 「옥새바위」, 수레를 타고 넘었다는 「수거너머」, 군량미를 모아 저장하던 곳이라고 붙여진 「군량리」 등이 있다. 제작팀은 특히 「다무리」라는 지명에서 그의 신라부흥 의지를 읽어낸다. 「다무리」는 고구려 말로 「다물」, 즉 국토회복이라는 뜻.
◇김부(金富)는 마의태자 김일(金鎰)의 또다른 이름이다= 지난 87년 인제 갑둔리에서는 고려 초기에 주조된 것으로 보이는 5층석탑이 발견됐다. 석탑에 새겨진 명문을 판독해서 나온 김부(金富)라는 인물이 바로 마의태자라는 게 「역사스페셜」의 결론. 김부(金富)는 바로 마의태자 김일(金鎰)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부(富)와 일(鎰)은 글자로만 본다면 무관해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표기가 향찰이었기 때문에 부와 일을 같이 썼다는 설명이다.
◇마의태자의 행로엔 신라부흥 의지가 담겨 있었다= 마의태자는 경주에서 인제로 갈 때 손쉬운 동해안 길을 두고 내륙의 산길로 이어지는 행로를 선택했다. 제작팀은 신라의 주요 도시들인 충주와 원주를 지나면서 지세를 두루 살피고, 산성에 둘러싸여 방어기지로 적합한 인제에 자리를 잡은 마의태자의 마음 속에 신라재건 의지가 불타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문성진기자HNSJ@SED.CO.KR
입력시간 2000/04/14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