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발상전환 6계명
①공직자 스스로 나서게 신상필벌 강화… ②실패 했더라도 특정기간 지나면 면책
③부처통합해 프로젝트별 대응팀 구성… ④규제 키우는 의원입법 견제장치 마련
⑤중복규제 없게 총량관리시스템 도입… ⑥규제완화→투자 밑그림 함께 그려야
"집권 초기에 규제를 없애겠다고 하지 않은 정권은 없습니다. 하지만 집권 3년차쯤 되면 무너져버리더군요."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김영삼 정부 때부터 시작된 규제와의 싸움이 20년을 넘겼다. 제도적으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꺼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권 초기에만 몰아붙일 뿐 시간이 흐를수록 규제완화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이 식고 그 틈을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이 '입법수단'을 꺼내 비집고 들어오더라는 얘기다.
지난 20여년 동안 각 정부는 규제실명제부터 규제일몰제·규제총량제까지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집권 초에는 "반드시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겠다"고 약속했지만 규제는 늘기만 했다.
집권연차별 규제 추이를 비교해본 결과 집권 3년차가 분기점이었다. 규제를 줄이는 데 가장 강력한 의지를 보였던 김대중 정부는 평균 6.5%의 규제를 없앴다. 집권 첫해에는 규제를 1만372개에서 7,294개로 무려 29.7%나 줄였다. 하지만 집권 3년을 넘어선 뒤 4년차 때는 4.9%, 5년차 때도 4.1% 증가했다. 정권 말로 갈수록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가 식은 결과다. 노무현 정부도 상황은 비슷하다. 집권 2년차에는 1.5% 줄어든 7,707건이었지만 3년차에서는 4.0%, 4년차에서는 0.8%가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3년차 때 9.7%, 4년차 때 8.5%의 증가세를 보였다.
3년차를 기점으로 규제혁파에 실패한 주된 이유로 전문가들은 여섯 가지 정도를 꼽고 있다. 정권과 전문관료 간 타협의 관행이 첫번째다.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정권 후반부로 갈수록 관료에 대한 의존도가 커져 결국 규제혁파 의지부터 식어간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부처 간 칸막이와 함께 규제혁파를 전문가집단이 아닌 공무원이 주도하는 것 역시 문제다. 자기 몸에 직접 칼을 대라는 것과 같은 의미로 실패가 뻔하다는 것이다. 또 전봇대를 뽑는다거나 끝장토론 등 보여주기식의 접근도 문제다. 화려한 언론 플레이만 있을 뿐 내실이 없다는 의미다. 관료가 아닌 의원발의를 통한 규제입법이 증가한 것도 주된 요인이다. 19대 국회 개원 이후 지난해 5월 말까지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안 가운데 81%가 규제 신설·강화를 내용으로 한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심사절차도 없고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한 의원입법이 규제를 양산하는 주요 통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국민의 체감과 괴리가 있는 대기업 중심의 규제개혁, 국회 등과의 공감대 확산 실패 등도 이유가 되고 있다.
공직사회나 전문가들은 규제의 실질적 감소를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제도뿐 아니라 규제완화를 위한 소프트웨어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선 보상체계의 손질과 신상필벌 강화의 선행이다. 공무원 스스로가 신명 나게 규제를 없앨 수 있도록 인사는 물론 연말포상 등의 인센티브 제도를 활성화하는 것과 함께 복지부동하는 공직자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책임을 묻는 식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확실한 포상과 엄격한 문책 등을 통한 충격이 있어야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뜻이 말단 공무원까지 전해지도록 손발이 맞는 문화도 만들어야 한다. 특히 대통령과 일선 공무원 간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서는 감사제도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 집중적으로 규제를 완화할 특정 기간을 정한 뒤 그 기간에 이뤄진 규제혁파에 대해서는 ‘면책’을 하는 방식이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은 감사를 받지 않지만 공직자들은 감사의 대상이 된다. 대통령이 답답해 해도 공직사회가 움직이는 데 한계가 보이는 것은 바로 감사 부담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인허가 규제를 완화했다고 특혜를 줬다는 비판에 직면하다 보면 자연히 몸을 사린다는 것이다.
공무원 중심의 규제완화 역시 한계는 뚜렷하다. 민간 전문가 집단에 ‘힘’을 실어주고 큰 규제혁파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여러 부처가 얽혀 있는 덩어리 규제일수록 그렇게 해야 한다.
규제완화 방식에도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 개별 부처 간 규제혁파가 아니라 프로젝트별로 신속대응팀을 구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입지규제 완화는 기획재정부는 물론 환경부·국토교통부 등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담당자들까지 모두 모여 팀을 꾸리는 식이다. 정부세종청사의 한 관계자는 “투자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덩어리 규제가 풀려야 하는데 지금은 건건이 풀도록 돼 있다. 부처를 병렬화해 팀이 구성돼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현재의 규제개혁위원회 역시 신속대응능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규제를 양산하고 있는 의원입법에 대한 견제장치도 도입해야 할 ‘제도’다.
의원입법에 대해서는 규제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한 곳은 없지만 미국이나 영국·프랑스 등은 정부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듣도록 하는 등 사실상 심사와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의원발의 요건이 까다롭고 개별의원보다는 소속정당을 통해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미국은 의원이 법률을 발의하면 행정기관에 의견을 조회하고 행정기관은 규제영향평가 등을 통해 정부의 공식 의견을 내도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특히 프랑스는 정부가 의원발의 법률안을 수정할 수 있고 정부가 찬성하는 법률만 통과시킬 수 있다.
규제총량 관리 시스템도 새로 만들어야 할 부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규제가 신설·강화돼 새로운 규제비용이 발생할 경우 최소한 이에 상응하는 규제가 철폐되도록 해 중복규제를 없애는 내용이다. 배상근 전경련 본부장은 “영국의 경우 규제총량관리제도를 도입해 2011년 한해에만 5조5,000억원의 규제비용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등록규제의 전면 재검토도 이뤄져야 한다. 낡은 규제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 중복규제 등이 대상이다.
다만 규제완화가 투자로 이어질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면서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규제완화의 핵심은 ‘기업투자’와 ‘고용창출’인데 규제혁파에만 매달릴 경우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무차별적인 규제완화만 양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기업들이 그린벨트를 풀어달라고 아우성을 쳐 풀어주면 곧바로 땅값 폭등으로 이어지고는 했다. 기업으로서는 투자할 요인이 사라지는 것”이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