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가뭄이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다행히 최악의 가뭄상황에 이르기 전에 장맛비가 내려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여전히 대규모 댐과 저수지 수위는 바닥에 머물고 있다. 경기도와 강원도 북부 지역의 저수지는 2년 연속 적은 강우로 저수율이 20% 이하를 기록하고 있다. 강화도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대부분 저수지가 말라버려 모내기를 하지 못한 농경지도 상당하다. 이미 밭작물은 장마가 오기 전에 말라죽는 등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조선 최대의 성군이라는 세종 때도 2년에 한 번씩 닥쳐오는 가뭄은 최대의 스트레스였다. 가뭄은 곧 백성의 굶주림을 의미했다. 당시에도 제언(堤堰)이라는 저수지가 있었으나 규모가 작아 가뭄에는 항상 물이 고갈됐다.
환경 파괴 적고 홍수 피해도 경감
세종은 측우기 발명, 수차(水車) 제작 등 가뭄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당시의 과학기술로 가뭄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수리 시설을 갖춘 농지 개발의 역사를 코지마(古島)라는 일본인 학자는 "토지에 새겨진 역사"라고 했다. 토지에 새겨진 역사의 발전 단계에 따라 같은 가뭄이라도 피해는 다르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풍요의 시대 속에서 잊어버렸지만 쌀 생산에 필요불가결한 농업용수 확보는 국가적 관심사였다.
거의 매년 되풀이되던 우리나라의 가뭄 문제를 획기적으로 줄인 것은 20세기 들어서 등장한 중대규모의 다목적 댐과 농업용 저수지였다. 우리나라에는 저수용량 100만㎥ 이상 5,000만㎥ 미만의 중규모 농업용 저수지가 480개가 있고 이들의 수혜면적은 약 22만㏊다. 일부를 제외하면 중규모 저수지 구역에서는 극심한 가뭄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논에 물이 공급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기후변화로 인해 가뭄 양상이 국지적으로 매우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가뭄취약 지역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뭄을 극복하려면 먼저 수원(水源)인 저수지나 하천에 물이 있어야 하고 이 물을 농지로 공급하는 수로·관수로(管水路) 등의 관개(灌漑)시설이 정비돼야 한다.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농업 분야 사업에서 실시된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은 110개 저수지의 둑을 높여 저수지 용량(容量)을 중규모 이상으로 키우는 사업이었다. 이 사업으로 저수지 용량이 2억4,000만㎥ 증가해 그만큼 저수지에 물을 많이 담을 수 있게 됐다. 이번 가뭄에 저수지 둑 높이기 지구에서 이수(利水)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관개시설 함께 정비하면 효과 커져
충청북도의 경우만 놓고 보더라도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14개 저수지 둑 높이기 지구의 평균저수율은 강우량이 평년 대비 65% 수준에 불과하고 또한 환경용수를 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평년저수율 53%를 상회하고 있다. 이를 볼 때 향후 물 부족이 자주 나타나는 지역을 대상으로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과 같은 중규모 저수지 사업을 추진해나갈 필요가 있다. 중규모 저수지는 규모가 크지 않아 환경에 대한 악영향이 크지가 않다. 또한 중규모 저수지는 홍수조절용량을 갖고 있어 소유역의 홍수를 경감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중규모 저수지는 22개 다목적 댐이 담당하지 못하는 지천 소유역의 가뭄과 홍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가 있다. 비가 적게 와서 발생하는 대가뭄은 숙명적인 것이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물을 담을 수 있는 중규모 저수지가 전국 곳곳에 있고 이 물을 농지까지 공급하는 관개시설이 정비돼 있으면 가뭄에 의한 농작물 피해는 상당히 완화될 수 있다. 토지에 새겨진 역사의 발전을 기대하고 싶은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