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원(37) CJ E&M 중국 공연사업팀 부장은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던 지난 2006년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건넨 말 한마디를 잊지 못한다. 당시 입사한 CJ그룹 계열사 경력 및 신입직원들을 한데 모아 담소를 나누던 이 회장은 공연사업 파트에서 일하게 됐다는 최 부장을 격려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열심히 일하게. 우리 회사는 뮤지컬 '맘마미아'나 '캣츠' 같은 (라이선스) 작품만 하려고 공연사업을 하는 게 아니야. '김종욱 찾기'처럼 우리 손으로 만든 작품이 해외에 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이 사업을 하는 거라네." 창작 뮤지컬 '김종욱 찾기'의 중국 진출은 어쩌면 이때부터 예견됐던 것일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영화ㆍ방송ㆍ공연ㆍ음악 등 문화 콘텐츠 각 분야에서 글로벌 전략을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는 곳은 CJ E&M이다. 문화 콘텐츠 시장에서는 'CJ를 통하는 문'과 'CJ를 통하지 않는 문'으로 나눌 정도로 CJ E&M은 문화 콘텐츠 산업에서는 삼성전자 못지않은 절대 권력을 갖고 있다. 다양성이 존중 받아야 하는 문화 시장에서 절대 권력자로 자리매김한 CJ E&M에 대한 평가는 '문화 시장 확대에 기여한다'는 긍정론과 '독과점 체제가 공고해진다'는 비판론이 엇갈리지만 분명한 사실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삼성전자 또한 과점 업체라는 점이다.
글로벌 콘텐츠 시장이라는 '거대한 링' 위에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챔피언을 키우기 위해서는 문화 산업에 기여하는 대기업에 대한 전향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자국민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화 산업은 다른 분야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시장을 개척하는 데 엄청난 물적ㆍ인적 자산이 투입되기 마련. 자본력과 인적 네트워크, 마케팅 노하우 등이 오랜 시간 축적된 대기업들이 문화 콘텐츠 산업에서 개척자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내에서 문화 콘텐츠 산업을 통해 해외 시장 개척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CJ E&M이다. 중국을 포함해 아시아ㆍ유럽ㆍ남미 지역으로 영역을 확대해온 CJ E&M에 올해 들어 가시적인 성과가 속속 전해지고 있다. 지난 4월 중국에서 개봉한 영화 '이별 계약'은 티켓 판매로 약 350억원을 벌었는데 이는 제작비 3,000만위안(약 54억원)의 6배를 웃돈다. CJ E&M과 중국 국영 영화 배급사인 차이나필름그룹(CFG)이 함께 자금을 투자하고 마케팅 조사와 기획ㆍ제작을 담당했다. 합작 방식으로 현지시장과 연결고리를 만든 전략이 주효했던 것.
공연 부문에서는 국내 창작 뮤지컬 최초로 '김종욱 찾기'가 상하이에 중국어 버전인 '??자오츄리엔(첫사랑 찾기)'이라는 제목으로 성공리에 개막했다. 4월에는 일본 도쿄 롯폰기에 '아뮤즈 뮤지컬 시어터'를 개관, '카페인' '풍월주' '김종욱 찾기' 등 한국 뮤지컬을 잇따라 올렸다. 최근에는 CJ E&M이 공동제작에 참여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킨키부츠(Kinky Boots, 특이한 취향의 부츠)'가 제67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뮤지컬 부문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을 석권했다.
대중문화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K팝 분야에서도 CJ E&M은 적극적인 시장 개척에 나서는 한편 양질의 콘텐츠를 갖고 있는 중소기업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K팝 글로벌화'라는 목표를 내걸고 2011년 출범한 글로벌 콘서트 브랜드 'M-Live'가 대표적. 대기업이 보유한 마케팅ㆍ공연기획ㆍ대관 등 인프라를 중소 기획사에 지원함으로써 역량 있는 아티스트들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CJ E&M과 함께 한국 최초로 남미 시장에 진출하게 된 큐브엔터테인먼트의 홍승성 대표는 "해외 공연을 계획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현지 정보의 부족"이라며 "전세계에 걸쳐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CJ E&M의 정보력과 현지 네트워크는 K팝 글로벌화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화 콘텐츠 산업 기반 조성에 역량을 쏟고 있는 KT그룹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KT그룹은 콘텐츠 생태계 발전을 위해 올해 초 1,000억원 규모의 펀드 조성에 나섰다. 향후 3년간 600억원은 투자펀드로, 400억원은 동반성장 대출형 펀드로 운용할 방침이다. KT그룹은 자금지원뿐 아니라 그룹 내 보유한 인프라와 플랫폼을 최대한 지원하기로 했다. 우선 400만 가입자를 확보한 올레TV를 활용해 콘텐츠 경쟁력만 있다면 누구나 올레TV 시청자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경쟁력 있는 콘텐츠의 경우 KT가 운영 중인 유스트림(ustream), 숨피(Soompi), 지니(Genie) 등 글로벌 사이트를 통해 해외 시장에 진출하도록 돕고 있다.
중국ㆍ인도ㆍ인도네시아 등 아시아는 유럽과 미국이 주춤하는 사이에 빠른 속도로 부상하고 있는 시장이다. 이들 지역에서 한류가 선호되고 있는 만큼 우리가 웰터급 정도의 문화 산업 플레이어만 보유하고 있다면 문화 산업 수출은 물론 나아가 다른 제조ㆍ서비스 부문의 수출에도 날개를 달아주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