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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엔 오직 두 명의 배우만 존재한다. 이들이 풀어내는 삶과 죽음, 더 나아가 세대의 화합 이야기는 그 자체로 무대와 객석을 압도한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오로지 두 사람의 호흡으로 빚어내는 2인 극 연극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과 '레드'가 잇따라 관객을 만난다.
두 작품 모두 중견 배우의 오랜만의 연극 복귀작이다. '스승과 제자'라는 설정을 통해 현재 우리사회에 절실한 세대의 소통과 화합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도 닮았다. 주인공이 모두 실존 인물이란 것도 관심을 끈다.
"마음은 평화로운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는 쓰고 있는 거야?" 노교수의 질문에 무대 위 배우도, 객석의 관객도 선뜻 '네'라고 답할 수 없다. 루게릭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는 노교수 모리와 16년 만에 그 스승을 찾아온 제자 미치의 인생수업을 그린 실화 바탕의 연극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그렇게 묵직한 숙제를 던진 뒤 관객과 천천히 그 답을 찾아 나선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라', '추억을 만들어라'… 뻔한 가르침에 설득력을 불어넣는 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모리다. "내가 뭘 제일 끔찍하게 생각하는 줄 아나. 머지않아 누군가가 내 엉덩이를 닦아줘야 한다는 거야." 죽음 앞에 담담한 듯 농담을 던지다가도 어린아이처럼 흐느끼는 모리의 모습에서 관객은 진정성을 발견한다.
수업이 거듭될수록 스승의 몸은 지팡이에서 휠체어로, 침대로 옮겨간다. 그리고 일과 돈, 명성에 치여 살던 미치도 인생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곱씹으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간다. 모리의 죽음이 단순한 육신의 소멸이 아닌 다음 세대의 변화를 불어오는 순환인 셈이다. 40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 배우 노주현은 "극 중 모리가 미치에게 '죽음은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며 "나 역시 작품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리 교수의 인생수업은 19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 사제간 따뜻한 대화로 잔잔하게 흘러가는 작품이라면, 연극 '레드'는 그 이름처럼 강렬한, 두 남자의 불꽃 튀는 대립과 갈등이 매력이다. 실존 인물인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대표 화가 마크 로스코와 가상의 인물인 로스코의 조수 '켄'은 다양한 미술 작품과 예술에 대한 견해로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현란한 수사와 함께 철학, 예술, 종교, 미술, 음악을 넘나드는 대화가 쏟아지지만, 이 모든 건 궁극적으로 생명과 죽음, 젊음과 노년,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충돌을 드러내는 장치다. 피카소의 '입체파'를 몰아낸 마크 로스코의 추상표현주의가 앤디워홀의 팝아트에 의해 위기를 맞듯, 이전 세대와 앞으로 올 세대의 충돌이 로스코와 켄의 대립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로스코 역으로 2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정보석은 "2011년 레드 초연을 보고 이 작품이 주는 강렬함에 먼저 출연 의사를 밝혔을 정도"라며 "온전히 두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꾸려 나가야 해서 부담도 되지만 충분히 고민하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침 국내에선 마크 로스코 전(展)이 열리고 있다. 연극 '레드'는 5월 3~31일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