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파이낸셜 포커스] 거꾸로 가는 정책금융

정책금융 늘리면서 감독 후퇴… 부실은 누가 막나

통합산은, 내년 여신 60조로↑… 수은, 올 자금 규모 75조 달해

금감원 검사권 포괄→제한 등 감독망 축소… '경제 발목' 우려



산업은행은 지난해 13년 만에 1조4,0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재계 서열 13위 STX그룹이 심각한 경영난을 맞으며 주채권은행인 산은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이 쇼크가 아직도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STX 부실 대출 혐의로 산은 임직원들이 금융감독원의 제재를 받았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부실 여신을 모두 산은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해도 수년간 민영화를 준비했던 산은의 여신 관리체계가 시중은행에 비해 여전히 촘촘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국내 유일 공적 수출신용기관(ECA)인 수출입은행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지난 10월 모뉴엘 사건이 터진 후 수은은 심각한 홍역을 치르고 있다. 희대의 사기사건을 일으킨 모뉴엘을 '히든 챔피언'으로 선정해 신용대출을 몰아줬고 그 과정에서 담당자들이 뇌물을 받는 등 비리 혐의까지 드러나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우리은행·씨티은행 등 민간은행들이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줄줄이 모뉴엘 여신에서 발을 빼는 와중에도 산은과 수은은 거액의 모뉴엘 여신을 그대로 유지했고 이상 징후도 전혀 감지해내지 못했다.


국책은행 여신관리 체계가 이처럼 방만한데 감독 체계는 도리어 허술해지며 사후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기업 경기 활성화를 위해 내년에도 산은과 수은 등 정책금융의 볼륨을 키울 방침이지만 이들 은행의 부실이 되려 경제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1월 출범하는 통합 산은에 2조원을 출자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산은의 여신 규모(목표액 기준)는 올해 45조원에서 60조원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늘어난 자본금을 기반으로 최대 8배 수준까지 자금 공급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입은행 역시 지난해 정부가 법정 자본금을 15조원까지 늘린 후 꾸준히 현물을 출자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의 올해 자금 공급 규모는 보증을 포함하면 75조원에 달한다.


문제는 이처럼 정책금융의 덩치가 커지고 있지만 깐깐한 감독체계가 구축되지 않고 되려 후퇴한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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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통합산은법 시행령을 보면 그간 금감원이 갖고 있던 산은에 대한 포괄적 검사권은 내년 1월 통합 산은 출범 이후 제한적 검사권으로 변경돼 산은이 금감원의 상시 감시체제에서 벗어난다.

제한적 검사권이란 금감원장이 검사 목적과 범위를 명시해 금융위의 승인을 얻은 후 검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금감원은 사실상 금융위의 위탁 검사만 수행할 수 있다.

수은의 경우 다른 은행들처럼 금감원의 검사는 받고 있으나 금감원 제재권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반쪽짜리 검사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ECA라는 특수성을 반영해 수은에 대한 제재 권한을 금감원에 부여하지 않았다.

검사를 통해 문제가 불거져도 기획재정부에 통보하는 수준 밖에는 내릴 수 있는 조치가 없다. 제재 없는 검사를 받다 보니 수은의 금감원 검사 협조성은 떨어지고 금감원 역시 의욕적으로 검사에 나서지 않는다.

물론 시중은행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정책금융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이들에게 다소 자율성을 줘야 한다는 당국의 취지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국책은행에서 끊임없이 부실 대출 논란이 불거지고 직원들의 비리 혐의까지 드러나는 상황에서 정책금융이라는 이유만으로 감독망을 좁히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중은행의 한 여신 담당 부행장은 "모뉴엘 여신 과정에서 드러난 비리와 여신 체계의 허술함은 민간 은행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일"이라며 "정책금융이 대기업 여신 과정에서 사실상 민간은행들을 이끌어가는 상황을 고려해보면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감독망이 허술해질 경우 대규모 부실 위험도 커지고 당국도 향후 책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책은행들이 비록 시중은행과 다르게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다지만 감사원의 감사는 사후 약방문 성격이 짙다. 금융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힘 있는 정부 부처들이 산하 정책금융기관들을 사실상 비호하면서 이들의 방만 경영에 일조하는 측면도 있다"며 "내년 기업 경기 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더 강한 감독 체계가 구축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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