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IMF와 경제민족주의/서상록 중기연구원장(시론)

언제인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에게 패한 듀카키스는 그 부인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자기부부가 패배의 허탈속에서 알코올중독자가 된 것을 과감히 공개하고 병원에 입원했다. 미국의 언론들은 이 부부를 용기있는 부부라고 격찬하면서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지금 허세와 거품이라는 「샴페인」에 중독된 한국경제란 취한이 버티고 버티다가 드디어 국제통화기금(IMF)이란 병원에 실려갔다. 알코올중독자가 뼈를 깎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중독증세를 고칠 수 없을 때는 냉정하게 자세를 고쳐잡고 병원에 입원하여 의사의 빈틈없는 훈육과 처방을 따라야 한다. 이것이 현명하고 용기있는 자가 택하는 길이다. 우리의 국가경영자들은 훨씬 일찍이 나라살림의 실상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IMF에 노크하는 「듀카키스의 용기」를 실천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뒷북」. 우리 앞에 남은 과제는 채무자로서 IMF프로그램을 충실히 실행에 옮기되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이행하는가 하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 「충실」과 「현명」이라는 두 핵심단어(Key Word)를 의도적으로 나란히 놓고 있다. 아다시피 표면적인 IMF프로그램은 첫째, 외채의존형 거품성장의 지양 둘째, 금융산업을 포함한 산업전반의 냉엄한 구조조정 셋째, 기업과 노동시장에 대한 우승렬패라는 도태법칙의 작동 보장 넷째, 각종 경영·경제 정보의 투명성 실현 다섯째, 세계무역기구(WTO)체제에 맞는 제도와 관행의 정착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우리의 관료들과 이코노미스트들이 일찍부터 입을 모아 외쳐댔던 것들이며 범용의 경제학도들도 그 당위성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교과서적인 훈육이다. 이러한 훈육을 따르고 실천하는 것은 그 모두가 우리 경제에 득이 될 따름이지 결코 실이 될 것이 없다. 사람들에게 올바로 살아가라고 훈육하듯이 경제당로자들에게 올바로 경제를 돌리라는 이 프로그램의 주문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문제는 평범한 진리일수록 더 실천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표면적인 IMF프로그램의 이행에 있어 차라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경고적 교훈은 「진리는 세살 먹은 어린이도 알고 있는데 팔십 먹은 노인도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이 「충실」이라는 키워드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리가 IMF프로그램과 관련하여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들인가. 이제 우리는 IMF프로그램의 이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오늘날의 글로벌한 세계 경제를 흔히 무국경 경제(Boarderless Economy)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경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국경이 존재하는 한 경제민족주의(Econo Nationalism)는 없어지지 않는다. 나아가서 경제민족주의가 존재하는 한 경제패권주의도 상존한다.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WTO체제는 표면에서 보면, 무국경 경제에 있어서의 각종 페어플레이 규칙을 담고 있지만, 이면에는 공통인수의 마당이다. 그리고 이 운동장에서는 경제강국들이 플레이하기가 훨씬 좋다. 우리가 IMF프로그램의 이면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면 바로 이 경제민족주의와 만나게 된다. 항간에서 벌써부터 이번 IMF팀과의 협상 이면에서 미국과 일본이 무엇 무엇을 챙겨 갔느니, IMF야말로 「경제패권주의의 해결사」라느니 하는 말이 떠도는 것도 이러한 경제민족주의의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WTO체제 안에서 지금 세계의 최선진 국가들은 압력으로 국익을 챙겨가는 신중상주의적 수단을 서슴없이 구사하고 있다. IMF프로그램을 통한 우리나라 자동차시장의 개방 및 구조조정과 반도체 산업의 구조조정 방향에 미국 다국적 기업의 이해관계가 투영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는 한 예에 불과하다. IMF도식에 따라 짜고있는 재벌에 대한 구조조정과 금융산업의 구조조정, 중소기업 금융지원 제한 등에 로비력이 강한 선진 다국적기업들의 이해관계가 혼입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선진 다국적기업들은 자신들의 경쟁상대가 되는 한국 카운터파트의 경쟁력이 약화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또 그렇게 되도록 만들기 위하여 모든 전략을 구사한다. 이것이 바로 세계적 다국적 기업들이 구사하는 글로벌전략의 핵심이다. 필자는 IMF가 신중상주의 국가 및 다국적기업의 이해관계를 해결해 주기 위해 어떤 대역을 하고 있다고는 보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IMF가 금융외환 위기에 빠진 국가들을 구해주는 「천사」라고만은 믿지 않는다. 설사 천사라고 하더라도 난경에 빠진 국가들을 무조건 구해주지는 않는다. 자구를 위해 지혜를 동원하여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그러한 국가를 구해준다. 파우스트의 대미에 보면 죽은 파우스트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천사들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애쓰고 노력하는 그러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고. 우리는 IMF프로그램을 실천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WTO체제와 양립하는 경제민족주의를 소화하는 「현명」한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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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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