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그레이트 체인지 코리아] 샐러리맨서 글로벌 기업인으로… "도전이 곧 행복이죠"

[특별 인터뷰] 윤윤수 휠라그룹 회장<br>휠라 본사 인수 이어 글로벌 스포츠브랜드 디아도라마저 사들여<br>"잘 나가는 기업이라도 혁신 않는 순간 망해"



SetSectionName(); [그레이트 체인지 코리아] 샐러리맨서 글로벌 기업인으로… "도전이 곧 행복이죠" [특별 인터뷰] 윤윤수 휠라그룹 회장휠라 본사 인수 이어 글로벌 스포츠브랜드 디아도라와 라이선스"잘 나가는 기업이라도 혁신 않는 순간 망해" 김지영기자abc@sed.co.kr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ImageView('','GisaImgNum_2','default','260');

그레이트 체인지 코리아 특별인터뷰-윤윤수 휠라 그룹 회장 “내 나이 66세, 그래도 도전이 행복입니다.” 지난 2007년 3월 휠라(FILA) 본사 인수 이후 3년 만에 다시 이탈리아 스포츠브랜드 ‘디아도라’와 라이선스 계약을 한 윤윤수 휠라그룹 회장은 세계로 뻗어가는 그의 행보를 이렇게 설명했다. 3년 전 윤회장이 휠라 본사 인수를 위해 지불한 돈은 3억9,500만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5,000억원이 훌쩍 넘는 액수다. 매출이 3,000억원대에 불과한 휠라코리아가 자사 매출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거액을 지불하며 글로벌 휠라를 인수했을 때만 해도 업계에서는 ‘보아뱀의 저주(매출이 작은 기업이 자신 보다 큰 회사를 인수합병(M&A)한 후 유동성 부족으로 겪게 되는 경영난)’를 걱정했다. 하지만 3년 지난 지금 윤 회장이 경영하는 휠라그룹은 지난해에만 4,000만달러의 로열티 수입을 거뒀고 특히 미국에서는 올해 첫 흑자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같은 수완으로 역시 ‘윤윤수’라는 세간의 평가를 받고 있는 그를 서울 서초동 휠라코리아 본사 회장실에서 마주했다. /대담=우현석 생활산업부장 hnskwoo@sed.co.kr -회장님께서는 15년 전에 연봉 18억원의 사나이로 불리는 샐러리맨의 우상이셨습니다. 전문경영인만으로도 안정적인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는데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면서까지 글로벌 휠라를 인수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절박했습니다. 사람들은 비전과 사명감을 가지고 글로벌 휠라를 인수했다고 치켜세우지만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휠라글로벌의 인수는 ‘실패하면 망한다’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했습니다. 라이선스를 하는 입장에서 글로벌 본사와 지사는 실과 바늘 같은 관계입니다. 지사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본사가 뒤따라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요. 당시 휠라글로벌은 껍데기였습니다. 좋은 자산은 이미 사모펀드가 팔아 치운 상황이었고 ‘휠라’라는 브랜드마저 딴 사람에게 넘어가면 휠라코리아 마저 어려워질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무리하게 인수를 추진한 거지요. -휠라코리아가 글로벌 휠라를 인수한 지 3년이 됐습니다. ‘윤윤수의 휠라’가 된 후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무엇입니까. ▦경영난으로 허덕이던 글로벌 휠라를 탄탄하게 만든 것입니다. 현재 글로벌 휠라는 상황이 호전되고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각 지역에서 1ㆍ4분기 글로벌 비즈니스 리포트를 받았는데 지난해 동기 대비 라틴아메리카는 70%, 중국은 3%, 타이완 28%, 호주가 22%, 남아프리카 6% 성장했습니다. 올해 휠라 코리아의 매출도 지난해보다 14~15%가량 더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글로벌 휠라가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요. ▦라이선스 시스템을 바꾼 것이 가장 컸습니다. 내가 그동안 라이선스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라이선스 업체들의 고통을 잘 압니다. 일반적으로 본사가 라이선스 계약을 원하는 업체들을 많이 쪼고 그들을 부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난 라이선스 업체들 위에 군림하지 않고 휠라 라이선스 업체들을 모시는 입장에서 일했습니다. 라이선스 업체들이 잘 하도록 도와줘 로열티를 더 내게 하는 게 사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거지요. - 늘 성공만 한 것 같은데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는 무엇이었습니까. ▦대학생활이었습니다. 원래 꿈은 의사였어요. 어머니는 나를 낳은 지 채 100일도 되지 않아 장티푸스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고2때 폐암으로 돌아가셨고요. 돌아가시기 직전 아버지가 내 두 손을 잡고 ‘살려달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가슴에 사뭇 쳤어요. 고교졸업 후 재수 끝에 서울대 치대에 합격했지만 치과의사가 아닌 의사가 되고 싶어서 때려 치고 다시 공부했지요. 하지만 의대는 또 떨어지고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외대에 들어가고서도 의대의 꿈을 못 버리고 이후 3번이나 시험을 더 치렀지만 계속 실패했습니다. 결국 졸업도 서른이 돼서야 했지요. 하지만 만약 내가 단번에 의사가 됐다면 지금보다 훨씬 교만했을 거예요. 어려운 시절이 있었기에 참을 줄도 알고 노력할 줄도 알게 된 거지요. 대학 진학은 나의 가장 큰 실패이지만 가장 큰 자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행복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도전이 곧 행복입니다. 내 나이가 올해 66세인데 그래도 난 여전히 도전을 즐깁니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 나, 윤윤수입니다. -최근에 휠라의 글로벌 지주회사인 GLBH코리아를 설립하고 스포츠브랜드 ‘디아도라’의 국내 라이선스를 따낸 것도 새로운 도전입니까. ▦휠라 글로벌을 인수할 때 ‘휠라 하나만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GLBH홀딩스를 세웠습니다. GLBH는 글로벌 리딩 브랜즈 하우스(Globla Leading Brands House)의 준말로 글로벌 패션기업으로 도약을 의미합니다. 이번 디아도라 라이선스 계약도 운이 따랐습니다. 디아도라 측에서 먼저 라이선스 제안이 들어왔어요. 이탈리아는 패션은 잘하는데 이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스킬이 부족하고 난 패션은 모르지만 이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독수리가 먹이를 보면 놓치지 않고 낚아채듯이 내게도 그런 능력 말입니다. 디아도라 측에서 먼저 제안이 들어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디아도라는 글로벌 패션기업으로 가는 첫 단추일 뿐입니다. -최근 3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했던 톰보이가 결국 최종 부도처리됐습니다. 톰보이 이전에도 쌈지가 문을 닫는 등 국내 패션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기업이 문을 닫는 것은 어디에서나 있는 일입니다. 비즈니스도 주기가 있습니다. 보통 25~30년 넘기기가 힘들다고 하지요. 그런 맥락에서 10년 이상 지속하려면 혁신이 필요합니다. 혁신을 안하고 나태해지면 결국 한방에 무너집니다. 항상 주의를 살피며 정신을 차려야지요. 교만하고 자만한 순간 망하는 겁니다. 겸손해지고 소비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국내 패션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힘든 것은 명품과 SPA브랜드에 치여서가 아니라 변신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난 글로벌 브랜드 휠라를 이끌고 있지만 패션전문가가 아니라 리더입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고 상황을 관리하는 것, 그것이 리더가 할 일입니다. ● 윤윤수 휠라 그룹 회장은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 '미다스의 손' 별명 경영의 연금술사, 미다스의 손, 연봉 20억원의 사나이, 기록을 깨는 자, 샐러리맨의 우상. 그를 지칭하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글로벌 패션브랜드 '휠라' 의 수장이 된 윤윤수(66ㆍ사진) 회장. 정작 그를 아는 이들은 그를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나이' 라 부른다. 그의 출근시간은 오전7시30분. 남들보다 두 시간 가까이 일찍 직장에 들어선다. 하지만 퇴근은 오후8시께로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늦다. 남들보다 앞서려면 2~3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출근시간에도 어김없이 투영된다. 30여년 전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시작해서 지난 1991년에 휠라코리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라 대한민국 최고 연봉을 받은 것도, 일개 지사에 불과했던 휠라코리아가 1996년 미국시장에서 신발업계 매출 3위의 자리에 올라선 것도, 이를 바탕으로 2007년에는 몸통인 글로벌 본사를 인수한 것도 모두 이러한 노력의 결과다. 윤 회장이 휠라코리아 지사장이었을 시절, "휠라는 이탈리아에서 탄생했지만 성장은 한국에서 했다" 고 말한 엔리코 프레시 휠라 전 회장의 말은 윤 회장의 능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의 명함에는 한글이름이 없다. 대신 '진 윤(Gene Yoon)' 이라는 영문만 있다. 휠라코리아에서 머물지 않고 글로벌 패션 리딩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담은 것이다. 실제로 그는 한 달에 절반 가까이를 해외에서 보내 항공사 마일리지만도 400만마일을 쌓아놓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이력과 달리 그는 소박하다. 업체들과 미팅을 할 때에도 넥타이를 거의 매지 않고 비즈니스 캐주얼로 대신한다. 또 가방은 고품격 서류가방 대신 휠라 브랜드 배낭을 멘다. 사업상 미팅을 제외하고는 골프도 거의 치지 않는다. 회장실도 글로벌 패션브랜드 수장의 집무실이라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단출하다. 화려한 커튼이나 블라인드도 없고 흰색 페인트로 칠한 벽에 장식품 하나 없다. 바닥에 놓여 있는 몇 개의 난(蘭)이 전부다. 그리고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윤 회장은 "내 자신을 꾸미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며 "회장ㆍ대표라는 직함에 들어 있는 거품보다는 항상 몸을 낮춰 직원들ㆍ업체들ㆍ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나의 경영철학" 이라고 말했다. ◇ 약력 ▦1945년 경기 화성 ▦1964년 서울고등학교 졸업 ▦1966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입학 ▦1973~1975년 해운공사 근무 ▦1975~1981년 J.C.PENNEY 근무 ▦1981~1984년 ㈜화승 이사 ▦1991~현재 휠라코리아㈜ 대표이사 ▦2007년 글로벌 브랜드 '휠라(FLIA)' 인수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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