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일본에는 연구의 자유 없다"

노벨 물리학 수상자 나카무라 일본 연구풍토 비판

"도전보다 연공서열·경력 중시… 분노가 연구성과의 원동력"

세태에 휘둘리지 않고 한 우물… '기술자의 반란 소송'으로 유명


"일본에는 연구의 자유 없다"
노벨 물리학 수상자 나카무라 일본 연구풍토 비판"도전보다 연공서열·경력 중시… 분노가 연구성과의 원동력"세태에 휘둘리지 않고 한 우물… '기술자의 반란 소송'으로 유명

김현진기자 stari@sed.co.kr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인 3명 중 한 명인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 60)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주립대(UC샌타바버라) 교수가 수상 소식을 접한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색 발광다이오드(LED) 개발로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미국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주립대의 나카무라 슈지(60·사진) 교수가 일본의 연구 풍토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 나섰다. 7일(현지시간)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그는 "미국에서는 누구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꿀 수 있지만 일본에는 진정한 자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자신이 지난 2000년부터 교수생활을 하고 있는 미국의 연구 토양과 일본이 다른 점은 연구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카무라 교수는 "미국은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고 그것을 평가해 주지만 일본은 여러 가지 속박이 있다. 연공서열이나 몇 년간 연구한 경력 같은 것이 중시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 가기 전 직장인 니치아화학공업에서의 기억을 회상하며 "회사의 상사들이 나를 볼 때마다 '아직 퇴사하지 않았냐'고 했고 나는 분노에 떨었다"며 "분노가 연구성과의 원동력"이라고 소개했다.


나카무라 교수는 발명의 성과를 회사가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기술자의 반란 소송'을 회사에 제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퇴사 후 청색 LED 개발의 '산실'이던 니치아화학공업을 상대로 200억엔(약 1,980억원)의 발명 대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도쿄지방법원은 2004년 청색 LED 발명가치를 약 600억엔으로 산정해 회사 측에 나카무라 교수가 청구한 금액을 전부 지불하라고 명령했다. 그 후 회사 측의 항소를 거친 후 회사 측이 8억4,000만엔(약 83억3,792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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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회사원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되기까지 나카무라 교수의 '일본 기술'의 저변을 보여준 장인정신과 세태에 휘둘리지 않고 한 우물을 파는 일본인 특유의 연구자세도 주목을 받고 있다. 8일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나카무라 교수는 도쿠시마현 시골의 한 평범한 회사인 니치아화학공업 연구원으로 일하던 1993년 청색 LED의 실용화에 성공했다. 1979년 그가 입사했을 당시 니치아화학공업은 TV 브라운관 등에 쓰이는 형광체를 제조하는 종업원 200명 정도의 회사였다. 입사 초기 10년은 그에게 고난의 연속이었다. 연필 하나를 사는데도 과장 결재가 필요했을 정도로 연구비도 부족했고 연구성과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좋아하는 연구를 마음껏 하고 그만두자'는 특유의 반골 정신으로 1988년 회사 사장과 담판을 짓고 연구 대상을 청색 LED로 바꿨다. 고가의 실험장치도 부품을 조달해 전부 직접 만들었다. 중간에 회사 측에서 연구 중지를 통보했지만 응하지 않고 연구에 매진한 끝에 39세의 나이에 청색 LED 개발의 위업을 일궈냈다. 그는 그 후 다니던 회사에 1999년 연구소가 설립돼 소장으로 임명됐지만 온종일 소장으로 결재 도장을 찍는 일이 싫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뒀다. 결국 그는 20년간 일한 니치아화학공업에서 퇴직금도 없이 퇴사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교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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